2016.12.16.
얼굴 바뀐 계절의 행색은 늘 그러하듯 초라하고, 내뿜는 기운은 음산하기만 하다. 간간이 뿌려대는 햇살의 조각들도 그다지 날카롭지 않고 길섶의 초록 풀들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어느 우수에 찬 가을날의, 휘황하던 색색의 잎들도 사라졌고 헐벗은 가지들을 사뭇 힘겹게 이고 있는 남루한 나무들만이 시야에 들어온다. 휘도는 찬바람이 배회하던 낙엽을 희롱하다 바닥으로 내팽개치는 광경은 더없이 싸늘하고 매정하다.
몇 해 거푸 병치레를 하고 보니 내 일상은 더할 나위 없이 무기력해졌다. 후줄근한 마음자리는 좀체 변화될 기미가 없고 이제는 '나'를 들여다보는 것도 지쳤다. 사계절 내내 내가 덮고 있는 솜이불처럼 매 순간 개어 넣지 못한 생각들을 온몸으로 뒤집어쓰고 산 적이 있다. 부질없었다. 그래 본들 마음속 심연엔 쉽사리 발을 떼어놓을 수 없었고, 불식간에 당도했었더라도 나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고 알지 못했다.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단호히 없다,라고 답을 한 건 진심이다. 이제는 그저 내겐 판타지일 뿐인 그 감정을 이미 오래전에 상실했을뿐더러 거기에 따르는 여타의 것들이 죄다 거추장스럽고 성가시다. 혹여 그 늪에 잠시 빠질 수는 있을 터이나 스스로 조작한 환상에서 헤어나고 싶지 않을 뿐, 사랑이 아니다. 단순한 욕망이며 착각이다. 사랑에 늘 따라붙는 고통까지 감내할 만한 용기와 의욕이 내 심장 어디에도 이젠 없다. 나는 원래가 그렇게 생겨먹었다, 안타깝게도.
어쩌면 잃어버린 나'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잃을 것 따위가 없던 나였는지도 모른다. 길 밖으로 걸음을 내딛고 싶었으나 번번이 현실의 나'는 같은 길 위를 맴돌 뿐이다. 창밖 겨울을 보며 거울을 봤다. 자글대는 빗금 친 주름이 만나는 지점, 그곳에 내가 있었다.
며칠을 쉬었다고 그새 조급해졌다. 목표 설정이 목표인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들을 구기고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마음은 자꾸 조바심을 낸다. 봄날을 꿈꾸는 게 맞나 싶게 가슴속엔 또다시 싸늘한 겨울의 기운이 감돈다. 위로가 될 만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일까. 아이가 병원을 간 사이 혼자 있던 나는 괜하게 목이 메어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귓속 저 아래에서 또 소란함이 밀려온다. 귀를 막았다가 속을 오비작거리다가, 손가락이 분주하다. 모든 게 빨리 변했으면 좋겠다. 내가 있어야 할 곳, 그곳이 어디인지. 여전히 안갯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