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정과 우울 사이

2014.12.30.

by 백경


오랜만에 그녀들을 봤고 오랜만에 그들도 봤다. 성탄 전날 밤은 자주 그러했듯 그들과 함께 보냈다. 부리나케, 허겁지겁, 짧은 시간이었다. 헛헛함과 부러움과 침울이 공존하던 그 밤을 보내고 나는 지금껏 조금 앓고 있다. 어지럼증과 속병이 도졌고 바닥에 겨우 뭉개고 있던 울증도 다시 올라왔다.


간간이 머리통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갈 듯 정신을 못 차리게 빙글빙글 돌거나, 무엇을 넘기든 속이 받아주질 않는다. 어느 하루는 종일 눈물이 났고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금세 아무렇지 않은 듯 일어나야만 했다.


있어도 없는 듯 봐도 못 본 듯 알아도 모르는 듯 그냥 지나쳐주면 좋으련만 마치 내 인내심이라도 시험해보는 양 더없이 불안하고 탁하게 흐르는 시간들. 무거운 이불 같은 한숨을 뱉어내며 겨우 추스려보지만 돌아서면 눈물이 났다. 나도 딱히 이유를 모르겠고 그저 침묵하고 싶은데, 침울의 이유를 묻는 이에게 침묵하지 못하고 내뱉는 뾰족한 말들. 널브러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일어나 다시 나'로 돌아가야 하는 지루한 반복.


먹고 싶지 않은데 몇 끼를 굶은 탓에 하릴없이 먹어대는 몸의 욕구에 새삼 놀라고 이내 부대껴 어찌할 줄 몰랐고, 그다지 보고 싶지 않은 영화를 보며 찔끔거렸고, 억지로라도 웃고 떠들고... 그렇게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온 듯해야만 하는 지난한 되풀이에 점점 지친다.


때로는 포근한 위로가 그립거나 무한히 의지하고 싶은 맘이 솟다가도 이내 죄다 팽개치고 싶기도 하고. 나는 왜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하는가. 아무도 강요한 적 없다고, 모두 내 성격 탓인 듯 몰지 말기를. 종내엔 스스로 위로하고 스스로 의지하고 다시 움켜쥘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을 테지.


머리를 꼿꼿이 하고 또다시 냉정의 가면을 쓰고 무심한 세월 속으로 뛰어들지만 어느 순간 터져버릴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제보단 오늘이 낫고 오늘보단 내일이 더 나을 거다. 그렇게 믿고 싶다. 괜하게 다시 일렁이는 것들을 잦아들게 하느라 애를 먹는 중이다. 끓는 결을 삭이는 데 이젠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잘 낡고 있는 건지 잘못 늙어 가는지 분간이 안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신이나 붙들고 잘 살자. 잡생각은 거두고 마음을 편하게.






몸은 일찌감치 내게 신호를 보냈었는데, 무신경하고 둔한 나는 매번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황폐해진 정신을 수습하는 게 더 급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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