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9.
다시 찾아든 통증으로 여러 날 고통스러운 밤을 보낸다. 숨쉬기 운동조차 싫은 적이 많았던 내가 운동을 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통증 완화 때문이다. 좀 덜한 듯싶어 생각 없이 무리하게 쓴 탓도 있지만 다시 신경을 자극한 정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 트레이너는 병원을 가보라는데 가본들 달리 할 게 없다는 걸 알기에 운동으로 조절해 보려고 한다. 병원에서의 고통을 또 경험하고 싶지 않다. 통증을 줄이기 위해 밤마다 공과 함께 몸을 굴리는 내 모습에서 삶의 의지보다는 나약한 인간의 하릴없음과 세월의 속절없음을 본다.
마음이 갈 곳을 잃는 계절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싫어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견디기에 적당한 기온과 뜨겁지 않은 햇살과 적절히 눈을 둘 만한 풍경과, 일렁이는 마음속을 조금은 차분하게 만드는 쓸쓸함, 그런 이유로 가을이 좋다. 마음속 공터에 찬바람이 살짝 덮는 그 무렵이 그나마 제일 낫고, 한껏 깊어진 가을은 내 속과 자꾸 부딪기만 하고 다가올 겨울과 바투 붙어있는 듯만 싶어 가슴속은 더 황량해지고 춥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들의 배경이 거의 가을인 것이 싫고 기억하고픈 어렴풋한 과거 어디쯤엔 항상 낙엽이 굴러다니는 것도 마뜩잖다. 남자들이 주로 가을을 탄다는 그 말도 뻥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단정 지을 만한 건 그 무엇도 없는 듯싶다. 가을의 우수에 덜미가 잡혀 버둥대 보지만 헤어 나오기 쉽지 않다.
'참된 자유란 모든 것을 잃는 것이다'라는 글귀에 마음이 간 적 있다. 들끓는 마음속은 늘 자유를 부르짖지만, 정작 잃고 싶지 않은 많은 것 때문에 나는 섣불리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살면서 잃어도 될 만한 건 없지만, 어쩔 수 없이 죄다 잃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데엔 어설피 반박을 못 하겠다. 나는 자유를 위해 모든 것을 잃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다 잃고 자유를 얻어 내가 하고자 하는 건 무엇인가. 되돌이표 같은 물음들만 연속될 뿐이다.
몇 해 만에 만난 초등 친구는 그 사이 또 조금 늙어 있었다. 내 거울일 테니 나도 그러하겠지만 친구는 나 듣기 좋으라고 '넌 하나도 안 변했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 말을 해주고 싶었는데 끝내 입 밖으로 내놓지는 못했다.
지난주 '이 나이에 배워서 뭘 하게?', 내게 전화를 걸어와 그렇게 말했던 그녀가 난데없이 자신도 뭘 좀 배워야겠는데 뭘 하고 싶은지, 뭘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넋두리한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라 뭐라 답을 건넬 수도 없었다. 작년 수술 때 왜 연락하지 않았냐고, 힘든 일이 있을 땐 누구에게도 쉽사리 얘기하지 않는 너는 나와 너무 많이 닮았다,라고 그녀가 말한다.
그 말에 곰곰 지난날을 떠올려본다. 그랬었다. 아무에게도 현재의 나'를 드러낸 적이 없고 시간이 흘러 과거의 나'만을 남의 얘기하듯 흘리곤 했었다. 지금도 그러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누구나 다 그렇게 사는 게 아니겠나. 그녀도 그렇고.
친구는 얼마 전 안타깝게 영면한 배우를 거론하며 자신의 장례에 과연 누가 올까,를 생각해봤다고 한다. 삶의 끝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오느냐에 따라 잘 살았고 못 살았고, 가 결정된다니 나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완전히 수긍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생각과는 달리 내 삶이 늘 그러했듯 그 끝 또한 혼자이리라, 짐작하며 희망한다. 내 삶의 부재 또한 바람에 실린 과거로 전해지길 바란다.
외롭지 않냐고 묻는다. 뼛속 깊이 사무치게 외로움을 느꼈다면 이러고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 답했다. 함께 웃는다.
흔적이 남는 것을 내켜하지 않으면서 마음속 잔해를 글 속에 가두어 던지고야 마는 이 모순. 오래전 기록들의 행간은 이제 나조차도 분간이 어렵다. 행간의 암호를 기억해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마치 운명인 듯 이끌려 다시 살아내기 위해 시작한 공부는 나'를 드러내야 함을 종용하지만 거기에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는 나는 시간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아직 시험은 끝나지 않았고 낡은 눈과 몸으로 하는 공부는 버겁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