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k in time

by 백권필





오늘은 서영이와 만난 지 1,000일 기념 저녁 약속일이다. 나는 그녀에게 청혼할 마음으로 반지를 준비했다. 만나기로 약속한 식당에서 나는 그녀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약속 시간 7시. 그런데 그녀는 오지 않았다. 어찌 된 일인지 연락이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만 갈 뿐 받질 않는다. 평소 10분 정도 늦긴 하지만 연락 없이 나타나지 않았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사고가 생긴 걸까. 다시 그녀에게 전화했다. 신호만 갈 뿐 받질 않는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할지 도통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녀의 부모님 전화번호도 모른다. 그렇지 그녀의 친구 민주씨가 떠올랐다. 민주씨에게 전화했다. 몇 번의 신호가 울리고 민주씨가 전화를 받았다.


“민주씨! 서영이 어디 갔는지 알아요?”

“도준씨 만난다고 했는데..... 아직 안 왔어요?”

“네. 전화도 안 받아요. 연락할 방법이 없어요. 학교에서 출발한다고 전화했거든요.”

“그래요? 그럼, 저도 다른 친구들에게 연락해볼게요. 기다려 보세요. 끊을게요.”


7시 20분. 식당 종업원이 다가와 주문하시겠냐고 물었다. 나는 조금 뒤에 일행이 도착하면 주문하겠다고 말했다. 식당 종업원은 일행이 오면 주문하시라고 말하고 본인 자리로 돌아갔다. 7시 50분. 민주씨에게 연락이 왔다.


“도준씨! 어떡해요. 흑흑. 서영이가.... 서영이가.... 교통사고를 당해 지금 병원에 있대요. 서영이 어, 어,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서 알았어요. 서울대병원인데 응급수술 중이라고 하네요. 흑흑.....”


나는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거짓말이야. 믿을 수 없어.’

그런데 서영이는 약속시간에 오지 않았다. 정말 서영이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인가. 그래 병원에 가서 확인하면 알 수 있겠지. 나는 식당을 나와 택시를 타고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환자 이름을 문의하니 수술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서영이 부모님 같은 분이 계셨고, 다른 가족도 있었다. 민주씨도 보였다. 민주씨가 나를 알아보고 다가왔다. 그리고 서영이 부모님께 나를 소개했다. 서영이 부모님은 나의 손을 잡고 울음을 참으며 몸을 떨고 계셨다. 수술실에 도착한 지 20분이 되었다. 수술실 문이 열리면서 의사가 나왔다.


“죄송합니다. 최선을 다해 수술했으나 특히 머리 부분이 손상을 입었으며 다발성 장기 부전과 과다출혈로 사망하셨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 자리에서 서영이 어머니는 주저앉았고 서영이 아버지는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민주씨도 입을 막고 울었다. 다른 가족들도 울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서영이가 죽다니. 사랑하는 서영이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니. 슬픔보다 허탈함이 밀려왔다. 이윽고 가슴이 먹먹하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서영이의 장례식을 끝나고 일주일이 지났다. 나는 도무지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결국 회사에 일주일간의 휴가를 냈다. 온통 서영이에 대한 생각에 하루가 멍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 노래, 영화, 여행지 등등이 모두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자주 갔던 식당에 가서 음식을 먹고 술을 먹고 노래를 부르러 코인 노래방에 들렀다. 그곳에서 그녀가 좋아했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가수 린의 ‘시간을 거슬러’라는 노래를 선곡하고 부르기 시작했다.



구름에 빛은 흐려지고

창가에 요란히 내리는

빗물 소리만큼 시린 기억들이

내 마음 붙잡고 있는데

갈수록 짙어져 간 그리움에 잠겨

시간을 거슬러 갈 순 없나요.

그때처럼만 그대 날 안아주면

괜찮을 텐데 이젠

젖어 든 빗길을 따라가

함께한 추억을 돌아봐

흐려진 빗물에 떠오른 그대가

내 눈물 속에서 차올라와

갈수록 짙어져 간 그리움에 잠겨

시간을 거슬러 갈 순 없나요.

그때처럼만 그대 날 안아주면

괜찮을 텐데 이젠

흩어져가 나와 있어 주던

그 시간도 그 모습도

다시 그때처럼만 그대를 안아서

시간을 거슬러 갈 순 없나요.

한 번이라도 마지막일지라도

괜찮을 텐데



누가 나를 흔들었다. 눈을 뜨니 한낮이었다.


“아저씨. 여기서 주무시면 안돼요.”


공원 관리인인 듯한 사람이 나를 바라보았다. 어제 술을 먹고 노래방에서 잔 기억이 있었는데 왜 여기에 누워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버스정류장을 찾았다. 여기는 어딜까 하고 둘러보니 서영이와 함께 자주 갔던 한강 공원이었다. 집으로 가는 차에서 나는 꾸벅꾸벅 졸았다. 집에 도착해 우선 샤워해야겠다고 화장실에 들어갔다. 그런데 거울을 보니 웬 아저씨가 보였다. 누구지? 뒤를 돌아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내 얼굴을 만지니 거울 속의 아저씨도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으악’하고 그는 뒤로 물러섰다. 그때였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도준이냐. 오늘은 일찍 들어왔네. 씻고 있냐?”


어머니였다. 마트에 다녀왔는지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하고 문을 잠갔다.


“네. 씻고 있어요.”


어머니가 안방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얼른 밖으로 나왔다. 아파트 공원에 앉아 이게 무슨 일인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졸음이 왔다.


“손님! 일어나세요. 끝났습니다. 이제 집에 가셔야죠.”

“네? 끝났다고요. 여기가 어디죠?”

“코인 노래방입니다.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일어나서 노래방을 나오니 어두컴컴했다. 잠을 깨기 전에는 아파트 공원이었는데 지금은 노래방이라니 혼란스러웠다. 꿈을 꿨나 하며 집으로 갔다.



다음날. 나는 여전히 서영이를 생각하며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니 그녀가 부르던 노래가 생각나 코인 노래방에 갔다. 린의 ‘시간을 거슬러’를 불렀다.


“아저씨! 일어나세요.”


나는 눈을 떴다. 어제에 보았던 그 한강 공원이었다. 그런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그 사람은 서영이였다. 그리고 옆에는 내가 보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서영이는 죽었는데 살아 있다니. 그리고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이지. 난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서영이에게 말을 걸었다.


“서영아. 나야 도준이.”

“누구라고요? 도준이는 제 남친 이름인데.....”

“아저씨! 누구세요? 누군데 제 여친 이름을 어떻게 알고 있어요? 그리고 도준이라고요?”


서영이와 또 다른 나는 나를 알아보는 것 같지 않았다. 난감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나도 혼란스럽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죽은 서영이와 나를 볼 수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아저씨! 더 귀찮게 하면 경찰을 부를 겁니다. 어서 가세요. 얼른!”


할 수 없었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데 어떻게 그들을 이해시킬 수 있겠는가.


“아까는 웬 할머니가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웬 아저씨가 나타나서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네. 서영아! 우리 다른 곳에 가자.”


그들은 자리를 떠나 저쪽으로 갔다. 나는 우두커니 앉아 멀어지는 그들을 바라보았다. 공원 화장실로 가서 거울을 보았다. 어제 본 아저씨의 얼굴이 나타났다. 내 모습이 아닌 아저씨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나를 닮았다. 나의 나이든 얼굴이 아마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 화장실을 나와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정거장 의자에 앉았다. 졸음이 왔다.


“손님! 일어나세요. 끝났습니다. 이제 집에 가셔야죠.”

“주인아저씨! 이게 무슨 일이죠? 어제부터 노래방에서 제가 꿈을 꾸는데 같은 꿈만 꿔요. 그런데 그건 분명 꿈이 아니었어요. 이게 무슨 일이죠? 아저씨는 왜 그런지 알죠?”


노래방 주인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를 일으켜서 자리에 앉게 했다. 그리고 그는 나의 옆자리에 앉았다.


“맞습니다. 어제오늘 당신이 경험한 것은 꿈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시간여행을 한 것입니다.”


노래방 주인은 나에게 이 특별한 시간여행을 설명해주었다. 오직 과거로만 이동하고 미래는 갈 수 없다. 미래는 아직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하는 장소와 시간대로 이동할 수 있지만 비슷하게 이동한다. 예를 들면 3월 4일 오후 2시 신촌역으로 간다면 3월 4일 오후 1시 46분 홍대입구역으로 간다. 과거로 갈 때는 가고자 하는 시간과 장소를 떠올리며 상대방이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면 되고, 현재로 돌아올 때는 시간이 되면 과거에서 졸게 된다. 여행시간은 2시간이며, 늙은 모습으로 변한다. 시간여행을 하면 자신이 가진 미래의 남은 시간 중 4시간이 사라진다. 만일 이동한 과거에서 어떤 행동을 하면 현재가 바뀔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떠오른 생각은 단 하나였다. 서영이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곧바로 나는 노래를 부르려 했다. 그러자 노래방 주인이 말렸다.


“시간여행은 하루 한 번만 가능합니다. 내일 다시 오세요.”


집에 돌아온 나는 어떻게 하면 서영이를 살릴 수 있을지 생각했다. 어떤 시점의 과거로 가서 그녀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현재가 달라질지 생각했다. 처음 떠오른 생각은 서영이가 죽던 날로 가서 만날 시간과 장소를 바꾸는 것이다. 만날 시간과 장소를 변경하면 그녀가 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다음날. 나는 코인 노래방이 열리는 저녁 시간에 찾아갔다. 나는 노래방으로 들어가 린의 ‘시간을 거슬러’를 불렀다. 이동한 과거는 서영이가 죽던 날, 2시간 전으로 그녀의 학교 앞이다. 학교 중앙 현관으로 들어가는데 할머니가 나오고 있었다. 나는 교무실을 두드리고 그녀를 찾았다. 교무실 앞에서 그녀는 나를 만났다.


“누구세요? 도준씨 부탁으로 왔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부탁이죠?”

“네. 저는 도준이의 사촌 형입니다. 도준이에게 일이 생겨 오늘 저녁 약속은 취소되었다고 전해달라고 합니다. 도준이가 직접 연락하지 못한 것은 핸드폰을 분실했기 때문이죠. 만남은 내일로 미룬다고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꼭 오늘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 가지 말아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할게요. 전 이만 수업이 있어서.....”


그녀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이제 남은 일은 과거의 내가 그녀의 전화를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제 과거의 나를 만나러 직장으로 갔다.


“누구시죠? 서영이의 부탁으로 왔다고 들었습니다.”

“네. 서영이의 사촌 오빠입니다. 서영이가 급한 일이 생겨 오늘 약속을 취소하고 내일 만나자고 합니다.”

“네? 그래요. 아~ 안 되는데. 오늘은 중요한 날인데 제가 잠깐 전화해볼게요.”

“지금 수업이라 통화가 안 될 것입니다.”


과거의 나는 전화를 걸더니 고개를 흔들면서 통화를 종료했다. 나는 그에게 전화할 곳이 있으니 휴대폰을 빌려 달라고 했다. 나는 그의 휴대폰을 집어 들고 냅다 뛰었다. 얼마를 달렸을까. 갑자기 졸음이 왔다.



노래방 주인이 나를 깨웠다. 나는 민주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조심스럽게 서영이의 상태를 물었다. 민주씨의 대답을 듣고 나는 절망했다. 여전히 그녀는 죽었다. 다만 죽는 시간과 장소가 달랐을 뿐이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일까. 노래방 주인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나의 말과 행동이 현재 상황을 바꿀 정도까지의 영향력이 없었다고 말했다. 강력한 사건이 있어야 현재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노래방 주인은 넌지시 말했다.


“그녀가 자네와 처음부터 만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싶네.”

“네? 나와 만나지 않아야 한다고요? 그것 말고 다른 것은 없나요?”

“내가 자네와 같은 사례를 많이 봐서 아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인연 자체를 만들지 않아야 관련 죽음도 없을 거네.”


생각해보니 그렇듯 했다. 만남이 없으면 그녀와의 약속도 없을 거니까. 그녀와의 헤어지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녀를 살리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내일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다음날. 나는 서영이와 처음 만나는 시간과 장소로 이동했다. 2018년 3월 10일 토요일 오후 2시 지하철 2호선 봉천역. 나는 여기서 그녀를 만났다. 비록 따뜻한 만남은 아니지만, 그것이 인연이 되어 연인으로 발전했다. 봉천역에서 나는 열차를 놓칠까봐 뛰어 내려가다가 올라오는 그녀와 부딪혔다. 그녀가 들고 있던 가방이 바닥에 떨어졌고 휴대폰도 바닥에 떨어져 액정이 깨졌다. 액정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몇 번의 만남이 있었고 이후 연인으로 발전했다. 나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 내가 먼저 그녀와 부딪히려고 결심하고 나오는 입구 주변에 서 있었다. 그녀가 보였다. 그런데 그녀에게 웬 할머니가 다가가더니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2번 출구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하였다. 할머니는 고맙다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손을 잡고 흔들었다. 이때 뛰어 내려오는 과거의 나가 나타났다. 나는 그녀가 과거의 나와 만나지 못하게 내가 과거의 나와 부딪혔다.


“아저씨! 뭐 하시는 거예요? 잘 보고 다니세요. 바빠 죽겠는데.”

“이런, 미안합니다. 제가 급하다 보니. 정말 미안합니다.”


서영이는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6번 출구로 걸어갔다. 과거의 나는 개찰구를 지나 아래로 내려갔다. 만남은 없었다. 이로써 나와 서영이 인연은 없는 것이다. 긴장이 풀린 것인지 모르지만 올라가는 계단에 앉았다. 이제 졸립다.


“일어나세요. 손님!”


나는 눈을 뜨자마자 민주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난 크게 낙담했다. 서영이 죽음에는 변화가 없었다. 나와 그녀의 인연이 여전히 이어졌다고 봐야 한다. 그럼 어디서 우리는 만났을까. 이제 막을 수가 없는 건가.


“이런 경우는 흔치 않은데. 손님! 혹시 이름이 뭔가요?”

“제 이름이요. 정도준. 정도준입니다.”


노래방 주인은 혹시 하는 얼굴로 자기 사무실로 가더니 편지 봉투 한 장을 가져왔다.


“저는 이 시간여행을 관리하면서 사람들의 편지를 받기도 합니다.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형제에게 보내는 편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등. 그 편지가 모두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편지가 전달되기도 합니다. 이번이 그런 경우가 되겠네요. 정도준씨! 당신에게 전해달라는 편지가 있습니다. 민서영씨가 남기신 것입니다. 민서영씨는 당신이 여기를 오기 전에 먼저 오셔서 여러 차례 시간여행을 한 후 이 편지를 남기셨습니다. 그리고 편지를 받은 분은 다시는 시간여행이 불가능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나는 노래방 주인이 건네주는 편지를 받아들었다. 그리고 집으로 갔다. 편지를 뜯고 읽어가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도준씨!

아마 이 편지를 받을 때쯤 저는 이 세상에 없을 거예요.

당신을 만나서 너무 행복했어요. 나를 바라보는 당신의 눈길에서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항상 느낄 수 있었어요. 언제나 나를 먼저 생각하고 챙겨주는 당신에 비하면 나는 너무 이기적이었어요. 그런 당신이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난 믿을 수 없었어요. 그래요. 당신은 그날, 음주운전 차량에 의해 교통사고를 당해 죽었어요. 도저히 나는 당신을 떠나보낼 수 없었어요. 1년간 나는 멍한 사람이 되었어요. 그러다 당신과 함께 자주 갔던 코인 노래방에 들러 당신이 좋아했던 노래 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을 불렀어요. 그런데 당신과 행복했던 시간으로 시간여행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당신을 살리기 위해 나는 과거로 돌아가 당신을 설득하고 과거의 나를 설득하면서 매일 같이 시간여행을 했어요. 그런데 모두 실패하고 말았어요. 모든 것은 끝이 있더군요. 시간여행도 끝이 있더군요. 우리의 운명을 바꾸기 위한 수많은 시간여행을 하였더니 미래에 남은 내 시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우리의 운명적 만남은 너무 강력해서 끊을 수가 없다고 하네요. 방법은 단 하나, 죽음밖에 없다고 합니다. 서로의 죽음을 바꾸면 현재를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내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은 당신을 위해 쓰려고 합니다. 함께 하고 싶었지만, 하늘이 허락하지 않네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나를 용서해주세요. 부디 나를 잊어주세요.

2023년 12월 31일

민서영



내가 죽었다고. 그런데 내가 지금 살아 있는 것은 서영이가 나 대신 죽었기 때문이라고. 이런 제길. 오~ 우리에게 이런 가혹한 운명이 있다니. 가슴이 답답하고 미어지는 고통이 왔다.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나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을 쳤다. 나는 시간여행에서 들은 말과 본 것들이 떠올랐다.



아까는 웬 할머니가 나타나더니 이번에는 웬 아저씨가 나타나서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네. 서영아! 우리 다른 곳에 가자.”


학교 중앙 현관으로 들어가는데 할머니가 나오고 있었다.


그녀에게 웬 할머니가 다가가더니 말을 걸고 있었다. 그러더니 그녀는 2번 출구를 가리키며 뭐라고 말을 하였다. 할머니는 고맙다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손을 잡고 흔들었다.



시간여행 속의 할머니는 서영이였다. 그녀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그렇게 나에게 온 것이었다. 참았던 눈물이 터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울부짖으며 울었다.



다음날. 잠을 지새운 나는 코인 노래방을 찾아갔다. 하지만 코인 노래방은 사라지고 인형뽑기 가게만 덩그렇게 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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