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일어났능가?”
수정이는 잠이 깨면서 몸을 조금씩 움직였다. 그리고 눈을 살짝 떴다. 낯선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방에 싱글 침대가 창문 쪽으로 가로누워 있고, 침대 오른쪽으로 작은 화장대와 3단 서랍장이 있고, 침대 왼쪽으로 옷가지가 걸려 있는 고정식 2단 행거가 있고, 침대 대각선으로 출입문이 있었다.
“어제 뭔 일이 있었는가? 아조 급하게 가게로 들어와서는 숨기달라고 혀서...”
수정이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생각이 났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 정말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안쓰러운 얼굴로 수정을 바라보았다. 수정이의 왜소한 몸과 낡은 옷가지와 팔에 남은 옅은 멍자국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어제 뭔 일이 있었는지 속 시원히 말해 줄 수 있을랑가?”
아주머니는 조심스럽게 수정이에게 물었다. 수정이는 어제 벌어진 끔찍한 기억을 되새기고 싶지 않았다.
내 나이 17세. 아르바이트를 구하는데 필요한 서류가 있다. 만 15세 이상 만 18세 미만의 청소년은 가족관계 증명서와 친권자의 동의서가 필요하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런 서류를 준비할 수가 없었다. 왜냐면 가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가출한 상황에서는 돈이 있어야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나에게 아르바이트가 절실했다. 물론 손쉽게 조건만남과 익명 채팅을 통하면 먹을 것과 잠잘 곳이 해결된다. 그러나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다. 학교에서 조건만남의 위험성을 계속 들어서 너무 위험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난 정말 그러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집에서 가지고 나온 돈도 떨어져 가고 더 이상 찜질방에 신세지기도 미안한 상황이었다. 아르바이트 앱을 통해 적당한 자리가 나서 찾아가면 서류가 없어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그런데 다행히 피자집에서 서류가 없어도 받아주겠다고 했다. 이게 웬 떡이냐는 마음으로 너무 좋았다.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가장 주문이 많은 시간대였다. 피자집 매장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은 전화 주문을 받거나 배달 앱으로 들어오는 주문을 확인하고 피자를 포장하는 일이었다. 첫날은 실수가 좀 있었지만 금방 적응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갔다. 사장님도 친절했고 다른 아르바이트생도 도움을 많이 주었다.
“수정아! 오늘은 월요일이라 주문이 별로 없네. 일찍 접고 정리하자.”
“네! 사장님! 알겠습니다.”
“수정아! 집에 내가 데려다줄게. 내 차 타고 가.”
“정말요? 방향도 다른데 오히려 제가 미안하죠.”
“민수는 먼저 들어가라. 수정이하고 내가 정리할게.”
민수 오빠는 자기 소지품을 챙겨서 나갔다. 나는 피자 만드는 조리기구를 설거지하고 사장님은 매출전표를 정산했다.
“힘들지 않니?”
사장은 내게 다가오더니 자신의 손을 나의 어깨에 얹었다. 나는 움찔했다.
“조금 힘들지만, 다들 도움을 주셔서 할 만해요.”
“내가 너를 조카처럼 생각해서 더 정이 가고 특별하게 생각한다.”
“감사해요. 사장님.”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이지만 자연스럽게 어깨에 얹은 손을 떼어내려고 조리기구를 정리하는 것처럼 움직였다.
“이것 좀 정리하고 들어갈게요. 그리고 이모가 데리러 온다고 문자가 왔어요. 사장님 먼저 들어가세요, 제가 마무리하고 갈게요.”
“이모님이 오신다고?”
사장의 목소리가 날카로와졌다.
“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대답했다. 사장은 순간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너, 지금 거짓말했지? 이모가 온다는 말 거짓말이지?”
“아니에요. 진짜예요.”
내 목소리는 떨렸다.
“너,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너 지금 가출한 상태지. 아르바이트하는데 가족관계 증명서와 친권자 동의서를 내지 못하는 것부터 수상했으니까. 그리고 내가 그런 애들을 몇 번 겪어봤는데 느낌이 오더라구. 흐흐.”
사장은 음흉한 미소를 짓고 끈적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나는 두려웠다. 어떻게 빠져나가지. 오만가지 생각이 났다.
“너~, 내가 경찰에 신고하고 내쫓을 수도 있어. 그런데 내 말만 잘 들으면 너느 여기서 계속 일할 수도 있어. 어때, 내 말 잘 들을래, 내쫓길래, 선택해?”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여기서 쫓겨나면 찜질방에 더는 있을 수 없고, 결국은 나도 조건만남을 해야 하나. 사장 말을 들으면 계속 있을 수 있지만 어떤 요구를 할 지 두려웠다. 더 급한 것은 당장 여기서 벗어나야 했다.
“사장님. 죄송해요. 제가 거짓말했어요.”
그제야 사장의 구겨졌던 얼굴이 풀어지고 자신이 이겼다는 마음이었는지 말투부터 달라졌다.
“그럼, 오늘은 내 차 타고 집에 가~.”
“네, 사장님.”
“대충 정리하고 가자. 차 문 열어 놓을 테니 너 먼저 차에 들어가 있어.”
나는 소지품을 챙겨서 가게를 나왔다. 사장은 아직 가게 안에 있다. 어찌해야 하나. 차에 불빛이 번쩍하더니 차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방망이 치기 시작했다. 다리도 후들거렸다. 차에 타면 난 어떻게 될까? 아마 어디론가 나를 끌고 갈 거야. 지금 도망쳐야 해. 그런데 발이 안 떨어졌다. 이때 가게의 불이 꺼졌다. 그것을 본 순간,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밤 10시 가까운 시간이라 몇몇 상점은 불이 꺼졌고 음식점은 아직도 켜져 있었다. 가까이 전통시장이 보였다. 그곳으로 달렸다. 뒤 따라 나온 사장이 소리치며 나를 따라왔다. 전통시장은 어두컴컴했다. 이곳은 집을 나와 서울로 와서 한 달 가까이 지낸 곳이라 지리는 대충은 알고 있었다. 나는 이리저리 모퉁이를 돌아가면서 달렸다. 그때 바로 눈앞에 저녁을 먹으러 자주 갔던 식당이 보였다. 식당은 아직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갔다. 식당 안에는 주인 아주머니 한 분만 계셨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살려달라고 숨겨달라고 빌었다.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보듬고 식당 안 작은 방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갔다가 다시 식당으로 나가 앉아 있었다. 나는 숨을 죽이고 방구석을 웅크렸다. 휴대폰의 진동이 울렸다. 사장 번호였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나는 정신을 잃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런 호로자식이 있나? 캭 그냥 대그빡을 조사 뻐려야지. 어디 조카뻘 되는 아이를 어떻게 해보려고 혔어? 잘했네. 아조 잘해부렀네. 학생, 워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지만 겁나 잘했네.”
아주머니는 수정이의 어깨를 토닥이며 이렇게 말했다.
“어제 일로 피곤할 테니 어여 더 누워 자드라구. 아침은 장사 준비로 물건도 떼 오고 해야 혀서 난 나갈 테니 편히 쉬드라고.”
아주머니는 작은 가방을 들고나갔다. 수정이는 침대에 다시 누웠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집을 나간 것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다. 그 후, 아빠와 살면서 하루도 편안할 날이 없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이면 집 나간 엄마를 욕했고 어린 나에게 소리쳤다. 엄마가 사라지자 나는 학교에서 불쌍한 아이가 되었다. 입는 옷이 지저분해지고 씻지 못해 냄새가 나기도 했다. 이런 나를 학교 친구들이 멀리하기 시작했고 따돌림의 대상이 되었다. 더 나아가서 학교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내가 유일하게 맞설 수 있는 무기는 공부였다. 나는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미친 듯이 공부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 나는 반 1등은 물론 전교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성적이 나왔다. 그런 나를 선생님들께서는 격려해주시고 칭찬해주시고 도움을 주셨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니었다. 소위 일진이라고 하는 아이들에게 나는 찍힌 아이였다. 지나가면서 밀치기, 침 뱉기, 물건 가져가기 등으로 나를 괴롭혔다. 집에 계신 아빠는 일거리가 있으면 현장으로 가서 며칠씩 집을 비웠고, 일이 없으면 집에서 잠을 자거나 노름판을 전전했다. 아빠는 나에게 아무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럴수록 난 공부에만 집착하였다. 중학교에 올라갔다. 하지만,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 학교가 바뀌었다고 해서 아이들까지 바뀌지 않는다. 몇몇은 다른 중학교로 배정받아 만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나를 알고 있는 아이들과 같은 중학교에서 만났다. 따돌림과 학교폭력은 은밀히 지속되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간 이후 성적이 떨어졌다. 초등학교 때와 달리 배우는 과목도 내용도 많아져서 따라가기가 벅찼다. 그래도 상위권은 유지할 수 있었다. 나도 이제 꿈이라는 것이 생겼다. 대학에 가서 미술을 배워 예쁜 그림을 마음껏 그리고 싶었다. 그때까지 견디는 것이었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집을 나와 독립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등학교에 올라간 후, 나의 꿈은 무참히 깨져버렸다. 학교 공부는 더 어려워졌다. 특히 수학과 영어는 학교 수업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수학의 고난도 문제는 혼자 힘으로 해결하기에는 벅찼다. 영어의 듣기 평가가 늘 발목을 잡았다. 결국 성적은 중위권으로 밀렸다. 미술을 하려면 학원을 다녀야 하는데 아빠는 졸업하고 빨리 취업이나 하라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어디에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나의 처지를 아신 학교 선생님께서는 그런 나를 도와주시려 문제집을 주시고 장학생으로 추천해주셨다. 나를 괴롭히던 일진들은 이제 더 과감하게 행동했다. 돈을 가져와라, 아니면 몸으로 때워라. 툭하면 불러내서 괴롭혔다. 1학년 1학기가 끝났다. 성적은 엉망이었다. 국어 1등급, 수학과 영어는 4등급, 다른 과목은 2~3등급이었다. 아빠에게는 여자가 생겼는지 집에 여자가 머물다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1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아직은 햇볕이 강한 9월 어느 날이었다.
“어? 내 태블릿 어딧 다냐? 아까 체육시간 전까지는 있었는데. 없어져 버렸시야.”
우리 반 미진이가 체육시간이 끝나고 반에 들어와서 자신의 가방을 들여다보더니 소리쳤다. 미진이 친구들이 모여들더니 잘 찾아보라고 하며 함께 주변 뒤지기 시작했다.
“으짜스까. 2학기에는 성적 올린다는 조건으로 인강 들으려고 구입한 건데.....”
미진이는 울먹이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일진 소희가 나서며 말했다.
“이거 누가 훔쳐 갔구먼. 에라, XX 도둑년, 잽히기만 해봐라. 아조 개망신을 시켜줄텐께.”
소희는 나를 째려보았다. 나는 불안했다. 그녀의 이런 행동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다른 반 어떤 애도 도난 문제로 누명을 썼다. 그 애는 억울했지만, 물건값을 변상해주고 나서야 집요한 괴롭힘에서 벗어났다. 아이들 사이에 떠도는 말에 의하면 일진 일당이 꾸민 사건이라는 것이었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는 노랫말처럼 그날 종례 시간에 소희는 오늘 일어난 태블릿 도난 사건을 담임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우리 반에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고?”
“네, 선생님! 오늘 일어난 일이라 오늘 잡지 못하면 해결 못 해요.”
“그래. 이런 경우는 참 난처하구나. 교실에서 도난 사건이 나면 누구를 의심해야 되고...”
“선생님! 가방 검사해요! 사물함도 검사하고....”
소희는 작심한 듯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었다. 마지못해 선생님은 아이들을 칠판 쪽으로 몰아세우고 반장과 부반장과 함께 가방 검사를 시작했다. 나는 소희를 쳐다보았다. 소희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자신감일까.
사물함을 뒤지던 반장이 내 사물함에서 미진이의 태블릿을 꺼냈다. 나는 절대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우리 반 친구들이 나를 보는 눈빛은 제각각이었다.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 어이없어하는 표정, 분노에 찬 표정. 그중에 가장 기분 나쁜 표정은 소희의 표정이었다.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대로 나는 도둑이 될 판이었다. 소희에게 달려가 머리채를 잡아 끌고 나왔다. 그리고 오른손을 들어 뺨을 계속 때렸다. 그대로 당할 소희가 아니었다. 발길질로 나를 가격했다. 황급히 선생님과 반 아이들이 말렸지만 뒤엉킨 소회와 나는 떨어지지 않았다. 겨우 떨어지자, 코에서 흐르는 피를 닦으며 소희가 소리쳤다.
“야이, XX 년아! 너 이제 죽었써야. 각오하드라고.”
“뭐? 이 X년아! 이제 하다못해 내게 도둑 누명을 씌워버렸냐! 그려! 덤벼보랑께!”
옆 반 남자 선생님이 들어오고 학생부 선생님이 오셨다. 나와 소희는 학생상담실로 갔다. 진술서를 쓰고 나니 학생부 선생님은 내일 부모님 모셔오라고 했다. 그날 나는 가출을 결심했다. 집에는 비상금으로 모은 돈 50만 원이 있었다. 그 돈과 몇 가지 옷을 챙겨 집을 나섰다. 그날 밤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터미널에 가서 서울 가는 막차를 타자마자 나는 잠에 빠져들었다.
수정이는 다시 눈을 뜨고 벽에 걸린 시계를 보았다. 4시 24분이었다. 그녀는 우두커니 앉아 이제부터 뭘 해야 할지 멍했다. 남은 돈은 얼마 남지 않았고 아르바이트는 더 하기 어렵고. 그녀는 막막했다. 도로 고향으로 가야 하나. 그러면 또다시 지옥이 시작될 것이다. 그때는 미쳐버리거나, 죽어버릴 것 같았다. 그때 아주머니가 방문을 두드렸다.
“학생, 아직도 자는가?”
“아니오. 이제 깼어요. 들어오셔도 돼요.”
“아니여, 나와서 밥 먹으라고. 아침부터 먹지도 못했을 것인데..... 나와서 한 술 뜨라고.”
“괜찮아요. 입맛이 없어요. 지금도 신세 지고 있는데.....”
“아니여. 밥을 입맛으로 먹나, 그냥 먹는 거지. 먹어야 힘도 나고 생각도 나고 하는 거지. 어여 나와서 밥 묵어.”
수정이는 마지못해 방을 나와서 가게로 나왔다. 한쪽 테이블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아직 저녁 장사를 허려면 당아 멀었어. 손님들은 6시쯤 되야 오니까. 천천히 먹으라고.”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수정이는 차려진 밥상을 보았다. 흰쌀밥에 미역국이 있었고, 반찬으로 김치와 멸치볶음, 계란 프라이, 햄구이가 있었다. 밥을 뜨고 미역국을 입에 넣자, 수정이는 갑자기 울컥했다. 이런 밥상을 받아 본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마 엄마가 집을 나가기 전이었을 것이다. 그러면서 엄마 생각이 났다. 수정이는 밥을 먹다 말고 울기 시작했다.
“워매, 어쩐다냐? 학생 시방 운당가?”
수정이는 숟가락을 놓고 엉엉 울었다. 아주머니는 수정이의 어깨를 감싸 안아주며 등을 쓸었다. 수정이는 지금 이 아주머니가 보고 싶은 엄마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마! 엄마! 보고 싶어요.”
“그래, 그래. 내가 니 엄니다.”
아주머니는 울고 있는 수정이를 꼭 안아주었다. 수정이는 진정이 되었다. 수정이는 괜히 쑥스러워졌다. 눈을 못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학생, 집을 나온 것 같은데. 집이 어디 당가?”
“전라남도 나주여라.”
수정이 입에서 고향 말이 나왔다.
“전라도 나주라고? 나주 으디여?”
수정이가 자기 고향말을 쓰자, 갑자기 아주머니는 눈빛이 빛났다.
“나주 신암이여라.”
“나주 신암이라고? 학생 이름은 머 당가?”
“심수정이여라.”
“뭐시라고? 심수정!”
아주머니는 눈이 휘둥그러지며 수정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입을 막고 몸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울기 시작했다. 수정이는 울고 있는 아주머니를 보며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규모는 작지만 건실한 중소기업에 다녔다. 남편의 성격은 소심하고 착했지만, 술만 먹으면 험한 말과 과격한 행동을 하는 인사불성이 되었다. 남편과는 회사에서 만나 연애를 했고 결혼도 했다. 결혼과 동시에 나는 직장을 그만두고 부업이나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다 임신했고 2007년에 딸을 낳았다.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 났다. 남편은 퇴직금도 건지지 못하고 직장을 잃었다. 다행히 모아둔 자금과 집을 담보로 받은 대출을 가지고 프랜차이즈 가게를 시작했다. 5년간은 장사가 잘 되는가 싶더니 여기저기 비슷한 프랜차이즈 가게가 생기자 매출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게 임대보증금도 올랐다. 매출은 예전만 못했다. 남편이 술을 마시는 날이 잦아졌다. 게다가 프랜차이즈 본사의 경영주가 성관련 비위로 사회적 물의를 빚자 매출은 곤두박질쳤다. 견디다 못해 가게를 폐업했다. 1년 동안 남편은 일용직을 전전하며 생활비를 벌어왔지만 턱도 없었다. 그런와중에 좋은 곳에 투자하면 3개월 안에 원금의 2배를 벌 수 있다는 전직장동료의 제안으로 투자했다가 사기를 당했다. 이때부터 남편은 더 자주 술을 마시고 집에 와서 술주정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잔소리를 했더니 도리어 나에게 폭언과 폭행을 했다. 다음 날 술이 깬 남편은 전날의 일을 사죄했다. 하지만 그런 날이 반복되자, 결국 나는 집을 나가기로 결심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제 초등학교 갓 입학한 딸이었다. 저 어린것을 두고 가야 하나, 같이 가야 하나. 같이 간 들 누가 돌보고 학교는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5년 안에 내가 자리 잡으면 딸을 찾으러 오겠다는 다짐으로 집을 나왔다. 그때가 2016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