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辨明)-한해 전 봄날

by 문예반장

경칩 지나 달포째, 봄이지만 예년보다 춥고 개구리 울음소리도 아직껏 듣지 못했다. 바깥 한길 저편의 가로등 불빛이 마당을 건너와 안방 머리맡까지 숨어들었다. 머리 위로 이불을 끌어당겨 빛을 가린다. 부러진 커튼 걸이나 진즉 고칠걸. 납작한 물건이 팔꿈치를 짓누른다. 탁자 위 충전기에 꽂혀있어야 할 전화기가 어째서 이곳에? 덮개를 펼친다. 받지 못한 전화 알림 표시가 보인다. 꼭두새벽에 누가 전화를. 입안이 말랐다. 목도 잠겼다. 일어나고 싶은 맘과는 달리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임종 면회일 겁니다.” 사나흘 전 요양원 사무실에서 가족들 모두 와달라는 전화가 왔다. 아흔다섯 엄마의 인생에 아쉬울 게 뭐일까만 그건 살아있는 사람들 얘기일 뿐, 염라대왕 앞 불구덩이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지 않던가. 죽음 문턱에 선 사람은 세상 인연을 등진다는 두려움과 함께 좀 더 살고 싶다는 욕구가 있지 않을까 싶다. 내 생각을 읽기라도 했던지 담당 직원이 쐐기를 박으며 전화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대면이라 여겨야 편해요.”

보름 넘게 미동도 없이 누워 계시다 잠깐 밖으로 나온 엄마는 유리 벽 너머 휠체어 속에 묻힌 채 긴 시간 4~5분 동안 눈길 한 번 주지 못한다. 대여섯 달 내내 그 상태였다. 왜 빨리 돌아가시지도 못하느냐 눈시울을 적시는 두 누이, 보다 못한 형님이 그만하자며 일어선다. 담당 간호사의 말을 빌리면 당장 오늘 저녁일 수 있고 길어봤자 열흘을 넘기기 어렵다니 뭘 어떻게 해보고 자실 틈이 없다. 바깥으로 나와 운전석에 앉는다.

하필 이럴 때 주책없이 허기가 몰려온다. 이래저래 효자 되기는 글렀다. 맘 편치 않아도 끼니 꼬박꼬박 챙겨 먹고 기운을 차리라는 얘기마저 구차하다. 당신이라면 그러고 싶겠어? 하늘 향해 욕이라도 한바탕 내뱉고 싶다. ‘예당’, 카페도 아닌 식당 이름이 이래도 되냐고? 심술보 터진 놀부처럼 들리고 보이는 그 뭐든 거슬린다. 봄꽃 늘어진 담벼락 밑으로 거칠게 차를 댔다.

배고픈 티를 들키기 싫어 천천히 걷다가 일행 뒤로 슬쩍 빠진다. 오래된 한옥 건물, 흙담 따라 늘어선 뒤뜰이 깔끔하다. 쪽마루 귀퉁이 대광주리 안에 솔방울, 조롱박과 감자에다 옥수수까지 수북이 담겼다. 늦가을부터 비바람과 눈보라를 겨우내 받아내며 처마 아래 휑한 마룻바닥에 너부러져 시들고 찌들었을 것이다. 늙은 호박 껍질이 유독 울퉁불퉁하다. 선 굵은 주름이 깊게 파였다. 우리 엄마 얼굴처럼.

새콤달콤함에다 고소함까지 듬뿍한 장어구이가 입안에서 모래알처럼 버석거린다. 배고픈 위장이야 제 알 바 아니라고 철없이 투정하는 내 혓바닥, 못된 성질머리하고는... 툴툴거리지 말고 드셔요. 그렇게 하면 미안함이 덜어지나. 네가 먹지 않아서 엄마 배가 든든해지느냐고! 그래도 편치 않은 걸 어쩌랴. 밖으로 나간다. 바람 한 점이 나뭇가지를 스친다. 새벽녘 우리 집 매화는 꽃봉오리 터뜨리느라 법석이던데 여기 꽃잎은 어쩌자고 벌써 흩날린다니.

평소 자상하던 부모가 돌아가실 때는 자식들을 무지 고생시킨다더라, 봐봐, 아버지를. 그 더운 날 중복을 정확히 맞추셨잖니. 땀 뻘뻘 흘리며 입관하던 날 기억나? 엄마는 길어봤자 4월을 넘기지 않을 거야. 누군가의 너스레에 다들 피식 웃는다. 장례식장은 엄마가 그간 머물렀던 고향 땅 요양병원으로 정했다. 일개 세균 무리가 영장류 인간을 철저하게 제압했던 지난 삼 년, 화장 건수가 밀려 오일장(五日葬)이 보통인 때다. 부고를 내야 하는지조차 곤혹스럽다.

돌아오는 길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하늘은 대책 없이 맑고 머릿속은 낙엽 뒹구는 늦가을 가로수길처럼 어수선하다. 나는 어쩌다 엄마 아들로 태어났는지, 내가 부모 되어 나의 내일 날을 알아보리라던 노래가 절로 난다. 살아 고생 그만하고 이제는 훌훌 떠나시라고 자조인 듯 용감한 척 나지막이 속삭였다. “엄마, 언능 가셔요.” 오래오래 아플 거면서, 두고두고 후회할 거면서.


안방을 빠져나와 거실 소파에 주저앉는다. 새벽 5시, 동트려면 멀었다. 전화 뚜껑을 열고 발신자를 뒤적인다. 꿈? 틀림없이 봤다고 생각한 ‘받지 못한 전화’ 표시가 없다. 때가 왔나? 그래, 엄마였겠다. 근데 왜? 작별 인사를 하시려고? 빨리 돌아가시라는 내 속내를 알아채서 다급해지셨나. 섭섭하셨을까. 형광등을 켜려다가 그만둔다. 불빛 아래 초라하게 드러날 것, 꼬깃꼬깃 접어둔 미안함, 부끄러움, 그런 종류들.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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