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그리고 깨달은 진리

나이 먹어도 다 똑같다...

by 십일월



초등학교 5학년 때, 나는 수업이 끝나면 항상 단짝친구 A의 집으로 향했다. 일터에 나가신 A의 어머니가 해놓은 음식을 데워 먹거나, 전자레인지 위에 수북이 쌓인 과자봉지 중 하나를 골라 지금은 사라진 음악 채널 'V'를 보며 A와 함께 까먹는 게 일상이었다. 그러다 한번, 내가 반에서 잘 나가는 친구 B를 험담했다. 그 친구들이 험담이라고 하니 험담으로 표현한 것뿐, 사실 B와 무슨 일이 있었는데 기분이 나빴다고 말했던 것 같다. 며칠 뒤 B의 친구인 C에게 버디버디로 연락이 왔다. 내가 B의 험담을 하고 다녀 매우 불쾌했다고, 학교에서 보자고 말이다. 나는 장문의 쪽지를 보냈다. 험담을 해서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진심이었고, 그러면 되는 줄 알았다.


학교에 갔다. B는 '수업 끝나고 학교 뒤 공터로 와.'라는 내용이 담긴 쪽지를 내게 건네주었다. 수업이 끝나고 공터로 향했다. 학교에서 잘 나간다는 친구들이 나를 빙 둘러싸고, 그 옆에는 내가 단짝이라고 생각했던 A가 목격자로 있었다. 그리고 나를 둘러싼 아이들은 내게 온갖 모욕적인 말들을 내뱉었다. 나와 말 한마디 나눠본 적 없는 아이들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한 말장난이었지만 그 분위기는 묘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모든 걸 포기한듯한 어린 내가 기억난다. 내 편은 아무도 없구나. 아무튼 내가 험담을 해서 시작된 일이라 생각하고 연신 미안하다고 사과를 했다. C는 내게 말했다.


"정말 미안하다면 무릎 꿇어!"


영화 <우리들> 한 장면


정말 무릎을 꿇으면 내 미안한 마음이 전달될까? 텔레비전에서 무릎을 꿇는 건 정말 수치스러운 일이라 알려준 것 같다. 그런데 또 따지고 보면 또 그럴 것도 없다고, 그리고 그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 나는 머릿속에서 전쟁이 난 것처럼 고민하다가 무릎을 꿇었다. 무릎 꿇은 나를 보며 수군대던 아이들. "뭐야, 진짜 무릎 꿇었어." 당황한 목소리.


순간 든 생각. '아, 안 꿇어도 되는거였구나.' 그 어린 내가 뭘 알았을까. 원하던 데로 상황은 끝났지만 나는 단짝 친구도 잃고, 반에서 외톨이가 되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게 됐다. 외톨이 생활은 6학년까지 계속 됐다. 단짝친구라고 생각했던 A는 잘 나가는 무리에 들어가서 내게 말 한 번 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없는 사람 취급했다. 속되게 말하면 A는 나를 팔아 그들과 친해진 것이다. 32년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두 번 있었는데, 그 한 번이 이때였다. 나는 무너져 버렸고, 항상 '죽음'을 가슴에 안고다녔다. 매일 죽고 싶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 사건으로 잘 나가는 무리와 안면이 트였는지 중학생이 돼서는(학년 전체가 같은 중학교로 진학함) 잘 나가는 무리 친구들과 친해졌다. 또 기쁘게도 반에 마음맞는 친구들도 생겼다. 마음 둘 곳 하나 없던 6학년 때와 달리 친구가 왕 많아졌다! '언젠가 이 친구들도 날 버릴까?'라는 불안함을 마음에 품고 있어서, 오히려 친구들 눈치를 보며 싹싹하게 잘 생활했던 것 같다. 또 절대로 험담은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계기도 되었고.


얼마 가지 않아 A는 친구들을 이간질시켰다는 이유로 왕따가 되었고 나는 A를 빙 둘러싼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친구들은 나에게 "야, 네가 가장 할 말이 많을 거 같은데? 네가 말해봐!". 그래, 이제 내 차례다. 나는 A에게 "야! 너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그때 왜 그랬어!..."라고 말하는데 막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거의 울부짖음? A는 안 울고 내가 울었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고나서 잘 나가는 친구들 무리랑은 놀면 좀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아 반 친구들과 더 어울렸던 것 같다. 나는 우리 학년 모두와 두루두루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되었다. 편안했다. 어딜 가던 친구가 있으니. 마음속 안정은 참 중요한 것이구나.


이후에 한 걸음 뒤에서 그 무리를 지켜본 바로, 그들은 서로 돌려가며 왕따를 시키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고 '사필귀정'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던 것 같다. 왕따를 시켰으니까 왕따를 당하는 게 바른 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결국엔 자신의 자리를 찾게 된다는 말이다.


서른이 넘은 지금도 별반 다를 게 없다. 뒷말을 나누면 탈이 나고, 남에게 상처를 주면 나도 상처 받게 된다.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한 얘기를 우리는 다양한 방식으로 망각한 다음, 또 실수하고, 다른 방면으로 깨닫게 된다. 회사생활, 사랑, 우정으로 말이다. 몸에 체득한 그 괴로움과 고통이 기민하게 나를 옭아맬 때 시련이 끝난다. 사는 건 그런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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