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피아노

by 십일월

아버지는 4형제의 장손으로 태어났다. 열 세살 되던 해에 (나에겐 할아버지인)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함께 가장이 되었다. 여섯 식솔이 생활하는 단칸방에서 한밤 중에 불을 켜 공부를 하면, 조부의 목각배게가 어린 아버지를 향해 날아왔다. 공부에 소질 있던 아버지는 지역에서 제일가는 명문고에 들어갔지만 자기 공부는 뒤로 한채, 남의 집 가정교사로 들어가 부잣집 중학생 도련님의 비위를 맞추며 돈을 벌었다.


대학교 진학을 포기한 건 오래 전이고, 스무살이 됐을 땐 동생들의 학비를 위해 어머니가 있던 서울로 올라와 악착같이 돈을 벌기 시작했다. 우편배달부, 경찰, 영어통역사, 일용직 노동자 등 안 해본 일이 없었지만 적성에 맞는 일 또한 없었다. 속으론 그저 대학교에 들어가 철학을 논하고, 문학을 얘기하며 낭만을 떠들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돌아돌아 어릴적 여읜 아버지를 따라 철도 기관사가 되었고, 그 무렵 막내 동생은 서울대를 진학했다. 그리고 지하철 청소부였던 큰이모에게 내 엄마를 소개 받아 결혼했다. 아버지는 담배 하나 살 돈과 차비만 겨우 받아 생활했고, 어머니는 오빠와 나를 키우며 노트에 스프링을 끼우는 부업을 했다. 그렇게 8년의 시간이 지나고 단칸방을 탈출해 경기도 외각에 있는 18평의 방 세 개 짜리 작은 아파트에 새로운 터전을 잡았다.


내 기억도 그 아파트에서부터 시작한다. 아파트 옆에 나있는 철길 위로 기차가 다닐 때마다 덜덜 떨리던 우리집. 전동드릴같던 굉음이 어린 나의 심장을 떨리게 했다. 아버지 역시 그 시절에는 왜이리 폭주기관차 같던지, 가부장적이고 엄격했던 아버지의 기분은 곧 집안의 분위기였다. 마냥 폭군같던 아버지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아버지에게도 낭만적인 면모가 있었는데, 피아노가 바로 그 증표이다.


다운로드.jpeg 사진 출처 - INSTAGRAM @qhha.aa


나는 9살부터 피아노를 배웠다. 체르니 100번을 칠 무렵, 네 식구가 살기에 넉넉치 않았던 좁은 집에 피아노가 들어섰다. 당시 피아노 가격은 125만원이었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생각해도 적지 않은 금액이다. 피아노 선생님이 콩쿠르에 나가자고 권했지만 내겐 그저 귀찮은 일로 치부할만큼 큰 애착이 없었는데, 아버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금을 들여 피아노를 구입한 것이다. 딸이 피아노 앞에서 뚱땅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구입한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제와 다시 생각해보니 어쩌면 아버지는 '자기집'에 피아노를 두고 싶었던 마음도 있지 않았을까? 평생을 가난하게 살았던 아버지가 처음 가져보는 사치품이랄까?


내가 늦은 나이에 철학과로 편입했을 때, 아버지는 깜짝 놀라는 동시에 자신의 꿈을 이루어주었다며 눈물을 보였다. 철학도가 꿈이었다고 한다. 표현이 부족하고, 마냥 무뚝뚝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눈물을 봤을 때, 가슴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보드라운 사랑을 품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 시대의 아버지들은 뭘, 왜그렇게 함구하고 있었는지 안타까울 지경이다.)


스물 여덟 살이 되던 해, 나는 독립했다. 아버지는 자리만 차지하는 크고 거대한 피아노를 굳이 왜 이고 가냐고 타박했지만 피아노는 아버지의 삶의 증거이자, 나에 대한 사랑의 표식이었다. 때문에 내가 이만큼이나 피아노를 소중히 여긴다고 아빠에게 으시대고 싶어 지금까지 좁은 자취방에 피아노와 함께 살고 있다.


훗날 아버지가 늙고 죽어 내 곁에 있어줄 수 없다한들 피아노가 있는데, 그 무엇이 두려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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