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 구하기 1
전셋집 계약을 위해 집주인을 만났다. 집주인과 부동산 중개인이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데, 내 귀에 'ㅇㅇ빌'이라는 단어가 들려, 집중해 들어보니 'ㅇㅇ빌'을 팔고, 지금 내가 들어가려고 하는 집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놀라 물었다.
"ㅇㅇ빌을 파셨다고요? 저희 아버지가 ㅇㅇ빌을 사셨었는데요?"
'ㅇㅇ빌'은 예전에 아버지가 은퇴 후 임대사업을 위해 은행에 융자를 반이나 끼고 사셨던 건물이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한평생 "지는 게 이기는 것이다." 말씀하셨던 아버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ㅇㅇ빌에 거주하면서 세입자들에게 월세를 받았다. 하나 제때 월세를 받아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공과금이나 내 학원비, 월세 등 남에게 줘야 하는 돈을 밀려서 내본 적이 없다. 당연한 거라 생각했는데, 당연한 게 아니었나 보다. 월세를 받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사정상 기한을 맞추지 못하는 것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 월세 반년 치를 안 내고 뻐팅기면서 내가 이 건물에서 떨어져 죽으면 어쩔 거냐고 배째는 악귀 같은 사람이 아빠의 피를 말렸다. 또 여러모로 아빠를 괴롭게 하는 세입자들이 많았다. 아빠는 3년 정도 씨름하다가, ㅇㅇ빌을 팔았다. 좋은 추억은 아니었다.
"아직 아버지, ㅇㅇ빌에 계세요? 팔고 갈 때도 걱정을 하긴 했었는데."
"아니요. 파셨어요. 아버지는 월세 받을 성품이 아니시라, 많이 힘들어하셨어요. 지금은 그냥 아파트 들어가서 사셔요."
"하긴 쉽게 말하자면, 너무 물렀지."
?
ㅅㅂ 도신 건가? 나는 화가 빡 났다.
"무른 게 아니고, 그걸 하실 성향이 아니었던 거죠. 아버지가 어디 나가면 얼마나 정직하게..."
나는 마지막엔 말을 더듬었다. 슬프게도 나는 말주변이 별로 없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공인중개사가 말했다.
"성품이 좋으신 분들은 간혹 그런 경우가 있지요. 아버지께선 아버지처럼 성품 좋은 분들이 주위에서 도와주실 테니 더 잘 되실 거고요."
젊은 사람에겐 묘하게 뉘앙스가 달라지는 여느 내 아빠뻘의 공인중개사들과 달리, 나를 손님으로 대하고, 현명하게 상황을 모면한 공인중개사에게 믿음이 가는 순간이었다. 집주인은 아무런 악의는 없다는 듯이 "그런가?" 대꾸했다.
'(부들부들) 우리 아빠는 나만 욕할 수 있어.'
다음 날, 나는 계약한 집을 다시 한번 보기 위해 중개인과 함께 전셋집을 찾았다. 띵동.
"어르신, 집 계약한 분과 집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요."
"계약?"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살던 집이었다. 분명 엊그제 집을 보러 갈 때는 웃으며 반겨주셨는데, 오늘은 달랐다.
"계약은 무슨 계약? 왜 나랑 상의도 안 하고 계약을 해?"
마음이 변하신 거였다. 한두 달 안에 입주할 계획이라고 했고, 할머니도 알겠다고 하셨는데, 막상 집이 하루아침에 빨리 나가자 서운했던 모양이다.(집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 보이긴 함.) 갑자기 내가 계약한 날짜보다 한 달 후인 전세 계약 만료일에 나가겠다고 길길이 뛰셨다.
난 집도 보지 못한 채 다시 부동산으로 돌아갔다. 솔직히 할머니 마음이 이해가 갔다. 한데 그렇게 되면 지금 살고 있는 방의 월세를 한 달 더 내고 살아야 해 난감했다. 나는 불만을 얘기했다.
"이렇게 늦게 들어가는 줄 알았으면, 애초에 계약금을 걸지도 않았을 거고, 다른 매물을 더 볼 수도 있었을 텐데, 이렇게 되면 월세 한 달치도 더 내야 하고 저도 난감합니다."
중개인은 회유했다.
"요즘에 전세는 잘 나가니까, 11월님을 대신할 세입자야 구하면 되니, 일단 다른 매물이 나오면 보여드리겠습니다. 근데 저 집보다 좋은 집이 나올지는... 11월님도 잘 아실 테고요."
맞다... 단번에 마음에 드는 집을 찾는 건 어려운데, 난 단번에 그 집에 매료됐다. 또 기존 세입자의 변덕이니, 나도 중개인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냥 늦게 입주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중개인이 말했다.
"그런데 계약 파기하게 되면 계약금 못 받으세요."
내 귀책사유가 아닌데, 갑자기 저게 뭔 소리지? 나는 조용히 말했다.
"제가 날짜를 변경한 게 아닌데, 왜 제가 계약금 반환을 못 받습니까?"
중개인은 나를 보더니 좋은 매물이 있으면 보여주겠다는 입에 발린 사탕 같은 말을 던지고, 하하 웃으며 그 상황을 넘겼다. 집에 와서 곰곰이 생각보니 중개인을 믿은 내가 너무 싫어졌다.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이 정녕 호구라는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