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골 워홀 일기 03
기대되는 이삿날이었다. 백패커스에서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길이 공사 중이었던 것쯤은 작은 액땜으로 넘길 만큼 날씨가 좋았다. 보도 블록을 뜯어 울퉁불퉁해진 땅 위를 천으로 덮어둬서 캐리어를 끌 수가 없었다. 근처 스타디움에서 스포츠 경기가 있는 날이라 길이 유니폼을 입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신난 얼굴로 걸어가는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혀가며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의 마음이 이런 걸까? 사람이 너무 많아서 나를 위한 깜짝 환송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사가 특별히 더 기대되는 이유는 지금까지 한 번도 이사해 본 적이 없어서기도 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일찍 이룬 아빠 덕분에-굳이 쓰진 않겠지만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다- 태어난 이후로 쭉 한 집에 살았다. 첫 이사를 한국도 아닌 호주에서 혼자 한다니. 걱정보다는 설렘이 더 컸다.
시골의 버스 정류장에서 집까지 차로는 5분 걸어서는 20분 정도 거리였다. 이사 전 집주인 커플에게 부탁해 둬 D가 날 픽업하러 버스 정류장으로 왔다. 버스에서 내려 D의 차를 탈 때까지만 해도 해가 떠있었는데 집에 도착해 옷가지를 대충 정리하니 밤이 되었다. 시골은 브리즈번보다 해가 더 빨리 졌고 일단 해가 지면 온 동네가 조용해졌다. 너무 조용해서 시간이 멈춘 건 아닌가 확인해 본 적도 있었다. 내가 사는 집 주변이 특히 조용하다는 것은 조금 더 나중에 알게 되었다. 방세로 낼 현금은 이미 뽑아왔지만 뭔가 더 사야 할 것 같아서 M의 차를 타고 마트에 갔다. 호주에서는 차가 필수라더니 집주인 커플이 각각 차를 한 대씩 가지고 있었다.
일단 마트에 가긴 갔는데 도대체 뭘 사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됐다. 새 집에 들어가면 필요한 게 뭐가 있는지 생각하며 마트를 빙빙 돌았다. 세면도구는 여행용 패키지가 있으니 조금 더 찾아본 다음에 사고 싶었고, 청소 도구나 휴지 같은 것들은 집에서 제공되었다. 생필품 쇼핑이 처음이라 어떤 게 비싸고 어떤 게 적당한 가격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M의 추천으로 1리터짜리 3 in 1 세제 한 통과 바닐라 향이 나는 쓰레기봉투, 새우맛 컵누들만 겨우 사서 나왔다.
이삿날에는 짜장면을 먹어야 하는 법. 오래된 로망을 실현하기 위해 한국에서 짜파게티를 챙겨 왔었다. 새 집에 이사한 날 짜파게티를 먹겠다는 첫 번째 위시 리스트가 완료됐다. 마트에 다녀오니 다들 잘 준비를 하는지 집이 조용했다. 냄비 째 들고 방에 올라와 혼자 늦은 저녁을 먹었다. 캐리어 안에 젓가락이 있었지만 짐을 뒤집어엎을 기운이 없어서 집에 있는 포크만 사용해 식사를 끝냈다.
집이 해결되었으니 이제 일을 구할 차례였다.
먼저 호주 농장에 대해 조금 쓰자면 농장 일은 크게 아웃사이드 잡인 픽킹과 쉐드 잡인 팩킹 두 가지로 구분된다. 아웃사이드 잡에는 픽킹 외에 띠닝, 프루닝, 위딩 등도 있지만 작물 수확 시즌 전후의 일이라 일이 많지 않고 몸만 힘들어서 인기가 없다. 픽킹은 밭에서 작물을 수확하는 일로 손이 빠르면 시급의 몇 배로 돈을 벌 수 있다. 대신 손이 느리면 잘리기 쉽다. 그쯤 호주에서 워킹 홀리데이로 일하는 예능이 방송되었는데, 출연진이 딸기 농장에서 일하는 걸 보고 친구들이 너도 가면 딸기를 따는 거냐고 물어보곤 했다. 픽킹은 내 관심 밖이었다. 돈을 많이 번다는 건 솔깃했지만 갓 부트캠프를 끝낸, 몇 달 동안 9 to 6로 앉아서 코딩만 하던 사람이 뜨거운 호주 햇빛 아래에서 몇 시간씩 일하는 건 무리였다.
팩킹은 작물을 분류하고 포장하는 포지션으로 보통 실내 쉐드에서 일한다.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팩킹으로 마음을 굳히고 무수한 검색 끝에 찾은 곳이 R팜이었다. 여러 지역에서 픽킹과 팩킹 모두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크고 곧 시즌을 맞아 워커를 많이 뽑을 예정이라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블로그에도 R팜에서 일하는 사람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브리즈번에 도착한 뒤부터 R팜에 꾸준히 지원서를 넣었다. 레쥬메에 거짓말을 해도 확인해 볼 일이 없으니 뭐라도 써서 내라는 말을 믿고 한국의 사과 농장에서 1년간 일했다는 내용을 당당히 써넣었다. 이사할 집이 정해진 뒤로는 주소도 농장이 있는 시골로 바꿔 어플리케이션 폼을 작성했다.
브리즈번에서 이사를 기다리던 어느 날, R팜의 Hiring manager로부터 지금 픽킹과 팩킹 쉐드 둘 다 사람을 구하고 있으니 어떤 포지션에서 일하고 싶은지 알려달라는 메일이 왔다. 쉐드에서 일하고 싶다고 답장을 보냈으니 곧 인터뷰 연락이 올 참이었다. 시골로 이사하고 사흘 뒤 매니저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행운도 함께 찾아왔다. R팜에서 하도 연락이 없어 블로그에서 찾은 다른 농장, S팜의 매니저 개인 번호로 속는 셈 치고 문자를 보냈었다. 정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번호가 바뀌었을지도 모르는 데다 한국에서는 올라온 공고에 지원만 해봤지 다짜고짜 일 있냐고 물어보는 건 처음이었다. 블로그 주인의 영어 이름을 대고 내 친구가 거기서 일하는데 혹시 사람 구하냐고 눈 딱 감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사람을 뽑고 있다고 답장이 왔다.
문제는 두 곳 다 당장 내일 인터뷰에 올 수 있냐고 한 것이다. 그때는 인터뷰를 미룰 수도 있다는 걸 몰랐다. 문자를 두고 머리가 터지도록 고민했다. R팜은 한국에서부터 알아본 곳이라 친밀감이 있었다. 옆 방 하우스 메이트가 일하는 농장이라서 시프트만 맞으면 픽업을 부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을 예상보다 많이 뽑았는지 인터뷰를 끝내고도 부르지 않아 웨이팅 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게다가 이번 시즌은 이상하게 일이 없어서 시프트가 잘 나오지 않는다고도 했다. S팜에 대해 아는 것은 블로그에 올라온 내용뿐이었다. 팩킹 쉐드고 대만 사람이 많다는 것. 아웃사이드 잡 못지 않게 힘들지만 일이 끊기지 않아 시즌 동안 돈은 많이 벌 수 있다는 것.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차였다.
나는 한국 운전면허도 없고 만 23세가 지나지 않아 호주에서 면허를 따려면 1년이 걸렸다. 애초에 차를 살 돈도 없었다. 구글맵에 거리를 찍어보니 R팜은 걸어서 한 시간, S팜은 걸어서 세 시간이 나왔다. 차를 구해보려고 했지만 아는 사람이 없어서 녹록지 않았다. 전화로 예약해서 탄다는 시골 유일 택시 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가 오지 아저씨의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듣고 끊은 뒤 R팜을 선택했다. 둘 중 한 곳이 하루라도 늦게 연락이 왔다면 어떻게든 두 곳에 다 가봤을 텐데. 이 선택을 후회하면 어쩌나 밀려오는 불안감을 애써 무시하고 잠을 청했다. 농장까지 걸어가려면 여섯 시에는 일어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