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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인터뷰 그리고 끝없는 기다림

호주 시골 워홀 일기 04

by 이오
이렇게 끝없는 길을 한참 걸어가다 보면 농장에 도착한다


호주에서 유튜브를 보면 피부암 광고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평소 선크림을 챙겨 바르지 않았지만 뒷목에서 피부암이 시작되는 광고를 본 이후로 외출할 때마다 중무장을 하게 됐다. 선크림을 잔뜩 바르고 모자에 선글라스, 긴팔 바람막이까지 걸친 뒤 방에서 나왔다. 아침 6시. 이른 시각이었지만 집주인 커플과 하우스 메이트들은 전부 출근한 뒤라 집이 조용했다.


R팜으로 가는 길은 두 가지로 하나는 차만 다니는 길이고 하나는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사실 두 번째 길도 인도는 아니고 공사 중인 길인데, 비가 많이 내려서 무너진 길에 보수 공사를 하다가 오랫동안 중단되었다. 차가 없는 사람들은 픽업을 구하거나 그 길로 출퇴근을 했다. 구글맵도 정확히 그 두 가지 경로를 띄워주는데 아무 생각 없이 예상 시간이 짧은 길을 골랐다. 집이 모여있는 동네를 빠져나온 뒤, 돌아가기엔 너무 늦어버렸을 때 알아차렸다. 내가 고른 길은 차도라는 것을. 호주는 한국에 비해 차도가 넓은데 시골인 점까지 더해지니 4차선 도로가 8차선 고속도로처럼 광활해 보였다. 농장으로 가려면 도로를 가로질러야 했다. 길에 사람이라곤 나 하나였다. 그렇겠지. 아무도 차도를 걸어가진 않을 테니까. 간신히 길을 건너고 최대한 갓길 안에 붙어서 한 발은 포장된 도로를 밟고 한 발은 풀밭을 밟으며 걸어가는데 R팜 로고가 붙은 하얀 트럭이 멈춰 섰다. 인터뷰하러 가냐고 묻더니 어차피 가는 길이니 태워주겠다고 했다. 예상치 못한 행운이었다. 출근 중이라는 3인조는 이 길로 걸어 다니면 위험하다고 차가 조금만 옆으로 틀어도 끽! 이니까 집에 갈 때는 농장 뒤쪽으로 이어진 다른 길로 가라고 알려줬다.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서로 통성명도 했지만 나는 그 셋의 이름을, 그 셋은 나의 이름을 끝까지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고 적당히 웃음으로 무마했다.


차를 얻어 탄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 조그만 오피스 입구에는 두 명의 리셉셔니스트가 앉아 있었다. 이름이 적힌 리스트에 체크한 뒤 소파에 앉아 인터뷰 시간을 기다렸다. 이미 도착해 있던 사람 중에는 처음 인스펙션을 갔던 집에서 본 사람이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몇 마디 건네봤지만 어쩐지 경계하는 기색을 보여 옆의 다른 사람들로 대화 상대를 바꿨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전혀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고, 다만 한 권의 책에 감명받아 호주까지 와서 외향적으로 살아 보자고 노력했을 뿐이다. 다음 타깃이 된 둘은 다른 농장에서 일하는 중인데 일이 너무 힘들어서 데이오프-휴일계-를 내고 왔다고 했다. R팜에서 출근 연락이 오면 기존 농장에 일주일 정도 데이오프를 내고 R팜에서 일해본 다음 어디서 일할지 결정할 계획이라고 했다. 좋은 전략이었다. 잠깐 사이에 꽤나 친해져서 같이 앉아 인터뷰 겸 교육을 들었다. 농장에 대한 소개와 작물 종류, 안전 설명까지 길고 긴 영어 듣기 시간이었다. 영문 이름부터 나이, 여권 번호, 비자 타입, tfn 넘버-호주에서 일할 때 필요한 번호-, 집주소, 연금 등등 온갖 내용을 서류에 작성했다. 어디에 뭘 쓰라고 한 건지 찰떡같이 알아듣는 내가 새삼 대견했다. 호주 연금을 아직 가입하지 않았던 나는 연금을 가입하고 폼을 채워서 첫 출근날 서류를 제출하기로 했다.


인덕션을 듣는 동안 친해진 친구들과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다. 농장 뒤쪽 길로 나가니 끝도 없이 밭이 펼쳐졌다.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짙은 초록색의 풀이 빽빽했다. 밭에 덩그러니 서있는 길쭉한 네모 칸을 보고 뭘까 싶었는데 농장 경력직이 이동식 화장실이라고 귀띔해 줬다. 밭에서 일할 때는 화장실이 여의치 않으니 이동식 화장실을 가져다 놓고 쓴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걸어 동네로 돌아왔다. 점심을 먹으며 조금 더 깊은 대화를 나눴다. 다들 다양한 백그라운드가 있었다. 나처럼 휴학하고 호주에 온 사람, 아예 호주에 정착하려고 온 사람,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에 온 사람도 있었다. 인스타그램을 교환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좋아하기도 잠시, 지루한 백수 생활이 시작되었다.



막아뒀지만 다들 걸어 다녔던 길. 지금은 진짜 공사를 했다고 들었다


인터뷰로부터 일주일이 지나도 출근하라는 연락이 오지 않았다. 대부분의 농장은 인터뷰가 따로 없는 대신 인덕션-교육-을 하고 바로 일을 시작하는 데 비해 R팜은 인터뷰를 하고 온라인 인덕션을 마친 뒤 매니저에게 연락을 받아야 출근을 할 수 있었다. HR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내도 시즌이 밀려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는 답장만 돌아왔다. 결국 같이 인터뷰를 했던 사람 중 한 명과 농장에 찾아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R팜에서 일하는 사람 말로는 농장에 찾아가서 일 시켜달라고 조르면 출근을 빨리 시켜준다기에 이번에도 속는 셈 치고, 눈 딱 감고 오피스에 찾아갔다. 아무리 시골이라지만 말이 안 되는 것 아닌가, 무슨 일을 그렇게 처리하나 싶었다. 농장 매니저에게 문자를 보냈을 때처럼 좋은 소식이 돌아오길 기대했지만 이번에는 녹록지 않았다. 매주 문자를 보내고 오피스에 찾아가도 곧 출근할 수 있을 거다, 얼마 전에 비가 내려서 이번 주는 힘들다는 미적지근한 대답만 돌아왔다.


인터뷰에만 희망을 걸어 두기는 부족했다. 차를 구해 농장에 직접 레쥬메를 내는 직컨도 두어 번 다녀왔지만 어딜 가나 이미 일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만 돌아왔다. 한 농장에서는 웨이팅 리스트에 이름과 연락처를 적고 가라고 했는데, 내 윗줄뿐만 아니라 앞장까지도 기다리는 사람이 빽빽했다. 날씨가 됐든 뭐가 됐든 이번 시즌이 예전 같지 않고 뭔가 이상하다는 걸 그제야 실감했다. 하우스메이트가 일하는 농장 매니저의 연락처를 받아 레쥬메를 보냈지만 답이 없었고, 차가 없어서 못 간다고 했던 S팜에도 다시 문자를 보내봤지만 지금은 자리가 없다고 했다. 호주에서, 그것도 호주 시골에서 백수가 될 줄이야.



혼자서도 자주 찾았던 호수


백수 일주차. 마트 할인 전단을 보내주는 어플을 깔고 동네 마트를 돌아다니며 마트 별 특징과 가장 저렴한 마트를 선정했다. 시내에는 IGA, 콜스, 알디, 아시안 마트가 있었다. 저렴한 것으로 치면 알디가 제일이었지만 물건이 적었다. 콜스는 중간 정도 가격에 물건 종류가 가장 많아서 자주 갔다. IGA는 두 마트에 비하면 비싸고 할인도 적게 하지만 주요 소비층이 있었다. 로컬 노인들과 섬나라 사람들. 이 지역은 노동력이 부족해 근처 사모아, 솔로몬 등과 계약해 일손을 채웠다. 농장과 직접 계약해서 일하는 이들은 대개 봉고차를 타고 단체로 다니는데 이유는 모르지만 평일에는 IGA에서만 물건을 사갔다. 나에겐 너무 비싼 마트여서 하프 세일을 하지 않는 한 갈 일이 없었다. 마지막으로 아시안 마트는 작은 천국이었다. 그때그때 들어오는 물건이 달라서 냉동실을 뒤적이는 재미가 있었다. 호주 마트에서 파는 중국식 만두에 질려있을 때쯤 아시안 마트에 한국 야채 왕교자가 들어왔다. 눈에 보이는 족족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고 만둣국을 해 먹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었다.


백수 이주차. 할 일이 너무 없어서 씨리얼에 들어 있는 건과일을 손으로 전부 골라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혼자는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동네에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이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울기 바빴던 호주행 비행기의 옆옆자리 사람으로 백패커스를 옮기던 날 로비에서 우연히 다시 마주쳤다. 언니도 다른 백패커스에서 이사해 체크인을 기다리던 중이었고, 언니가 호주에서 만난 친구들도 마침 세컨 비자를 위해 이 지역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언니들과 내가 하나둘씩 시골로 이사한 끝에 호주 시골에서 한국인 동네 친구가 생겼다. 나이도 살던 곳도 달라서 한국이었다면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 신기한 조합이었다.


백수 삼주차. 매일 아침 언니들과 호수를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대화 주제는 '우리는 언제쯤 출근을 할 수 있는가'. 호주에 노동력이 부족하다 했는데, 시골은 특히 일손이 모자라 몇 개월 이상 일하면 호주에서 더 지낼 수 있는 비자를 주는데, 게다가 찾아본 바에 따르면 지금이 수확 시즌인데 어떻게 나 한 명 뽑는 농장이 없는 건지. 그런 의문과 함께 이번 주 별자리 운세를 확인하고 점심으로 뭘 먹을지 얘기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집에 돌아가 점심을 해 먹은 뒤에는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시골 동네에는 딱히 놀만한 곳이 없었고 겨울이라 4시만 되면 주변이 어두워졌다. 퀸사이즈 침대에 혼자 누워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게임을 몇 판하면 하루가 간신히 끝났다. 그러는 와중에도 매주 방세와 생활비가 나가면서 통장 잔고는 점점 떨어져 갔다. 이대로 한국에 돌아가는 게 맞을지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운명의 장난처럼 또다시 두 곳의 농장에서 연락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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