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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화장실 청소할 때, 화장실을 쓰는 이유는 뭘까

by sinn Feb 18. 2025

오월이가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흔히 듣던 것처럼 어디론가 도망가서 숨지도 않았고, 낯설어하면서 보채는 것도 하룻밤이 전부였다. 그래서 '적응이 참 빠르구나'라고 생각했고, 온 지 일주일 정도 됐을 때 이미 적응이 끝났다고도 생각했다. 물론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라고도 생각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오월이가 이번 주에 많이 달라졌고, 이걸 보니 이제야 적응을 한 건가? 싶기도 하다.


먼저 이전에는 거실 자기 자리 한편에 앉아서 꿈쩍도 하지 않았던 오월이는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왔다 갔다 할 때 따라다니는 횟수도 늘었고, 내가 출근한 다음에도 이 방 저 방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온 지 얼마 안 되어 내 침대 방에는 자주 들어갔다가 발을 한번 다친 이후로 잘 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화장실을 포함해 모든 방을 구석구석 다니기도 한다 (건식 화장실이라서 평소에는 물기가 없긴 하다).


이번 주 중에 하루는 퇴근을 할 무렵 급식기 기록을 보는데 밥을 먹지 않은 걸 뒤늦게 보게 되었고, 펫캠 기록을  보니 12시에 방 쪽으로 간 뒤에 아예 움직임이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최대한 빠르게 퇴근해서 보니, 오월이가 약 8시간이나 옷방에 갇혀 있었다. 방 문 뒤쪽으로 들어가서 들쑤시지 않는 이상 방 문이 닫히기 어려운 구조였는데, 아마 안쪽에 있던 공간을 들여다본 모양이었다. 몇 시간 내내 갇혀 있다가 나왔기 때문에 그 방에는 가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다음에도 꾸준히 그 방에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엄마는 자기 방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달라고 했지만 난 사실 그럴 생각이 별로 없었고, 오월이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 중에 하나는 엄마 침대에 올라가서 블라인드를 치는 것이다 (그냥 진짜 계속 건든다). 주로 내가 출근 준비할 때 그렇게 논다. 자기가 졸린데 내가 거실에서 시끄럽게 하면 날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내 방으로 가서 한숨 자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달라진 건, 화장실 청소할 때다. 첫날에 오월이는 날 따라다니다가 내가 화장실을 청소하려고 하자 쑥스러워하며 멀리 가버렸다. 그 뒤로도 뭘 잘하다가도 화장실 청소를 할 때에는 약간의 내외를 했었다. 그러던 오월이가 시간이 지나며, 청소할 때 조금씩 다가오더니 하루는 옆에 앉아 내내 지켜봤다. 그리고 요 며칠은 내가 청소할 때에 화장실 사용을 했다.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제는 내가 멈추고 기다려야 한다. 덕분에 삽을 들고 멀거니 먼 산을 바라보다가, 오월이가 당당히 볼 일을 보고 나가고 난 뒤에야 청소를 재개한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첫날에 멎쩍어했던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그리고 오월이의 철퍼덕 눕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전에는 그래도 자신의 스크래쳐 위에서 주로 누워있었다면 최근에는 아무 데나 바닥에 철퍼덕 누워있고, 두 번 정도였지만 배를 까고 눕는 모습도 보았다. 사진을 못 찍어서 아쉬울 정도였다. 이런 모습을 보니, 이전에 내가 적응했다고 믿었던 순간에는 적응했던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걸 깨달은 지금도 오월이가 완전히 편해졌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오월이도 고양이인지라 그동안의 긴장을 안 보이려고 했던 것 같고, 나는 나대로 '보통 그렇다'는 걸 그대로 믿은 것 같다. 그래도 오월이가 이제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집에 있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즐겁다. 앞으로는 좀 더 편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를 깨물려고 하는 비중도 커져서 그건 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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