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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있는 무대 May 13. 2020

책임이 많아질수록 삶은 힘들어.

그럼 힘들기만 할까!?

삶이 힘들다고 느끼는 시점은 책임질 것들이 많아지기 시작하는 순간이다. 부모님 그늘에서 먹고 눕고 마시며 친구를 만나고 배우고 활동했던 근간에는 부모님 지갑에서 나오는 돈이 있었다. 그 돈은 아버지와 하루에 10분 이상 대화하기 어려운 근로 조건을 담보로 했고 어머니의 따듯함을 느끼려면 쓰러져 주무심을 깨워야만 느낄 수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클수록 부모님 마음은 강퍅해지고 좁아지고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버는 돈은 정해져 있는데 나갈 돈은 많아졌으니 말이다.  누나와 나의 활동 범위가 커질수록 부모님 취침시간은 줄었고 경제활동 시간은 더 많아졌다. 책임질 일 없이 받는 입장에서 부모님은 사악하고 짜증을 잘 내고 사랑이 없어 보였으니 말이다.


"왜 더 안 주지?, 이것밖에 못주나?"

철없는 생각만 했다.


더 많은 교육을 받기보다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을 더 필요로 했던 어린 딸 아들의 요구에도 돈이 들었다. 먹든 가든 쉬든 돈이 들었다. 함께하기 위해서 돈을 벌러 나갔고 그렇게 함께하는 시간은 많이 줄었다.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하나둘씩 생활에 필요한 전반에 드는 비용을 아내에게 받은 용돈으로 사용하는 데 굉장히 제한적이다. 버는 돈이 한계가 있으니 기회비용을 늘 생각한다. 어느새 자는 시간을 줄이고 활동하는 시간을 늘리는 데 사색하는 시간과 홀로 명상하는 시간이 절로 줄었다. 책임질 일이 늘면서 까칠함과 살은 늘어만 간다. 어떻게 아버지는 버텼을까? 어머니는 무엇으로 30~40대를 보냈을까?


과거 이름 날린 철학자들은 대부분 돈이 많은 집안에서 태어났다. 30살이 되기까지 경제 생산에 참여하지 않고도 학업과 하고자 하는 일에 마음껏 시간과 에너지를 썼다. 그래서 철학이 철없이 학문할 수 있는 이들이 아닌가 생각한다.


삶에 책임이 늘어날수록 머리아픔과 고단함도 증가하지만 새로운 감정을 배우는 장점이 있다.


첫 번째로 부모를 이해한다. 인지와 해석 능력이 증가하는 게 아니라 아이를 낳고 키우고 지켜내고 가르치고 길러내는 일을 완성한 그들의 시간과 젊음을 바친 것에 대한 존경과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견뎌낸 마음 다침 들을 보듬게 된다. 아이를 위한 게 자신을 포기하는 게 아니라 더 성숙해질 자신이 되어가는 법을 배운다.


두 번째로 아이에 대한 마음이다. 먼저 결혼한 주변 친구들의 아이들을 보면 얼마나 신비롭고 놀라운지 임신한 소식과 출산. 100일과 돌을 지나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sns를 통해서나마 보게 될 때 신비롭기만 하다. 우리 부부에게도 아기가 찾아올지. 건강할지. 잘 클지. 우린 괜찮은 부모인지 등을 느낀다. 한 아이가 그냥 만들어지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물론 우리 모두가 사랑과 신뢰 속에서 태어난다는 사실이다.


이제 시작점에 서 있는 6개월 차 신혼부부는 아직도 어리숙하고 여전히 신혼의 단잠에 깨지 못하고 달달하기만 하다. 하나둘씩 책임질 일도 많아 때론 버겁고 힘들기도 하다. 다행인 건 의무와 책임만 늘어나지 않고 그 순간을 거치며 새로운 감정을 배우게 되고 기쁨과 절망도 배우게 된다. 감동과 감사함도 배운다.


마냥 철없이 살고 싶으면서도 한 발자국 씩 진보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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