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살아있는 무대 May 28. 2020

모르는 건 모르는 거예요.

혼나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부모님의 생계활동으로 어린 시절을 어린 시절로 보내지 못하는 이는 철(?)이 빨리 든 모습을 보인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집안에 자신과 형제만 있는데 본인이 첫 째라 어른 노릇을 해야 하는 아이. 먹는 것, 옷 입는 것, 씻는 것 모두 어른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해야 한다.


당연히 부모님의 지도하에 학교에 등교하기까지 준비하는 또래 친구와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먹는 것도 부실하고 씻는 것도 꼼꼼히 하기란 쉽지 않고 준비물이나 등교하기까지 무언가 어설프다. 빨래라도 잘 되어있으면 좋으련만 부모님은 본인 몸 챙기기도 바쁘셔서 그런지 아이 옷은 구겨져 있고 꼬질꼬질하다.


부모님의 보살핌과 지지 아래 등교하는 아이와 아무것 없이 등교하는 준비만 해도 차이가 난다. 등교해서는 별 차이가 없을까? 준비물부터 수업 준비 태도도 미숙하기 그지없다. 그냥 지나갈 것도 빠뜨리기일 수고 어느 아이에겐 당연한 것들이 이 아이에겐 당연하지 않다.


부모가 일일이 챙겨주면 아이의 독립심이 부족하다고 한다. 동의한다. 그러나 독립심을 기르는 환경과 방임된 환경은 다르다. 이 차이는 아이가 더 어릴 때 경험할수록 학대로 분류되기도 한다. 어른도 혼자 결정하고 책임지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미성년의 아이가 어떤 지도도 없이 혼자 세상 앞에 결정하고 책임지기란 어려운 일이다. 도피와 회피가 익숙해질 수 있는 까닭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혼날까 봐 두렵다...'


상담은 종결됐다. 모르는 것을 모르는 대로 인정하고 약한 것을 약하다고 인정하기 시작할 때, 그의 내면과 표정에 평온이 찾아들기 시작했다. 누구도 자신을 혼내지 않고 혹여나 누가 혼을 낸다면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목소리를 갖기 시작했다. 억지로 눈물을 참아야 했던 지난날이 무색할 만큼 철이 든 모습은 버리고 다시 아이처럼 울기 시작했다.


그의 인생 20대 후반에 제 속도와 걸음으로 걸으려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자기 삶보다 큰 신발은 벗고 자기에게 딱 맞는 신발로 갈아 신으면서 말이다. 그의 삶을 지속적으로 응원하고 지지할 생각이다.


자기보다 큰 신발을 신고 비틀거리는 모든 인생에게 애도와 위로를 보낸다.

작가의 이전글 믿던 세상이 무너질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