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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있는 무대 Sep 14. 2020

잠을 도피처로 삼은 사람.

도망갈 곳 없는 슬픔

힘들 때는 주로 어떤 걸 하세요?


"잠을 자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많은 이들에게 트라우마라고 알려진 이 정신장애는 주로 세 가지로 나타난다. 공격, 회피, 경직.


큰 사건을 겪을 때 주로 후유증이 나타나는 이 장애는 평생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없어지기도 한다. 상담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완화시키기도 하고 편안하고 가슴을 울리는 모임이나 대화에서 그 아픔이 사라지기도 한다.


'마치 방금 일어난 것처럼'

트라우마의 폐해는 마치 방금 전 일어난 것처럼 반응하게 된다. 몇 년 전 그 사건 때 느꼈던 울분과 두려움이 지금 시점에서 일어난다는 점이다. 혹여나 가끔 불처럼 화르르 타오르는 자신을 보거나 막연한 두려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정신적 외상을 겪으니 말이다.


이번에 만난 청년은 잠을 잔다고 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싸움을 자주 목격하거나 빚과 가난으로 인해 충격적인 사건을 여럿 겪은 초등학생 아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문을 닫고 귀에 구멍을 막고 커튼을 쳐 잠에 빠지는 수밖에 없었다. 그 습관은 어른이 되어서도 지속됐다.


유일한 취미는 집에서 티브이, 영화보다 잠드는 일이고 바깥세상에서 힘든 일이 있으면 급격하게 졸리기 시작한다. 지각을 하는 일도 잦고 잠에서 깨지 못해 제대로 된 일처리를 진행하지 못하기도 부지기수였다.


낮잠을 자는 일 대신 햇빛을 보자고 제안했고 가장 좋은 건 낮시간에 산책을 하자고 했다. 걷는 상담이 시작된 일이다. 걸으며 우리가 나눈 대화는 주변에 대한 시선과 감상이었다. 온도는 어떤지 바람은 어떤지 꽃과 나무 색은 어떤지 변화를 느끼기 시작했다.


낯선 세상에 온 것 같다고 했다. 평소 잠으로 달아나 버린 자신은 꿈속에서도 행복을 찾았고 악몽으로 힘들었다고 했다. 도피하는 삶으로부터 도피해 우리는 현실을 살기로 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에게 다시 물었다.


요새 힘들 때 주로 무엇을 하세요?


"힘든 그 순간을 살아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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