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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살아있는 무대 Sep 23. 2019

이해가 좌절이 될 때

아이에게 미안하단 말은 조심히


말이 없고 무뚝뚝한 녀석의 웃음에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철없는 아이가 살얼음을 헤집듯 농담과 장난으로 그의 그림자를 깨뜨리려 했다.

녀석은 이해심이 깊고 누가 오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모든 것들이 괜찮다는 식으로 대응했다. 녀석에게 큰 그릇이라고 말해주었는데 때론,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으려 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아주 어릴 적부터 이해하고 살았다고 했다. 부모를 말이다. 바빠서 새벽에 나가서 밤늦게 들어오는 부모는 낯설었지만 아주 잠깐이라도 대화하는 틈이 생기면 어린아이에게 미안해했고 이해해달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쥐어진 돈 몇 푼. 실망이 잦아져 슬퍼진 아이는 마음을 지키기 위해 기대를 꺼뜨린 걸까.
기대도 없으니 실망할 일도 없다고 했다. 지금에선 부모를 이해한다고 했지만 거리감이 있다는 말도 했다.

스스로 돈 벌고 경제적으로도 독립한 녀석은 꽤나 어른스러웠다. 혼자 할 줄 아는 것이 많았고 세상에 지혜가 있었다. 그런데 자주 보고 만나니 자기 안에 있는 아이다움을 낯설어했다. 놀고 표현하고 자기를 나타내는 일 말이다. 철이 드는 걸 경계하려는 나와 다르게 그는 아이같이 구는 어른을 볼 때 한심한 듯 한 표정이 나왔다.

일도 잘하고 돈도 잘 벌고 이해심이 깊은 녀석은 멋진 어른이 되었다. 다만, 아이다움이 없고 자기의 정서를 표현하는 법을 잃어버린 어른. 재미를 모르는 어른이 되었다. 멀리서 보면 다들 괜찮아 보이는데 속 깊은 얘기를 하면 괜찮지 않다. 그는 모든 게 괜찮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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