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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구의식 Mar 27. 2019

퇴사 후 가난하지만 삶이 유익해졌다

게으른 퇴사자의 변명

20대 후반, 나는 언제든 회사 (같은) 건 그만두고 쉬다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사실 그럴 수 있는 형편은 아니었지만, 그렇게라도 생각하지 않으면 회사란 곳을 다니기란 더 어려워졌다. 나는 최소 1년이란 근무기간을 넘으면 퇴직금을 보루로 퇴직을 고려하기 시작했고, 짧은 단위로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다.


30대 중반이 지나며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달라져있었던 모양이다. 직장이란 걸 쉽게 놓기 어려운 십 년 차를 지났을 때였다. 이쯤 되면 직장인의 갖가지 스트레스는 더 늘어날지언정,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 꽤 단련되기 때문에 초년생 때와는 비교도 안되게 수월하게 일을 할 수 있다. 그와 함께 회사를 옮기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느낀다. 내가 있던 업계에는 '콜'이라 부르는 이직 시스템이 존재했다. 다른 회사에서 비슷한 연차의 기자에게 이직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주로 선배 기자가 주변에서 수소문하거나, 평소 눈여겨봐 둔 타사 후배에게 한 통의 전화로 이를 진행한다. 헌데 황금 연차의 시절을 지나고 나니, 콜이 오는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고, 이직의 희망이 점차 줄어드는 게 실감이 났다. 호황기를 지나버린 업계에 일 자리는 점차 줄어들었고, 젊고도 일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 나의 선배들보다 비중이 많아진다. 내게 적합한 자리는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렵고, 내게 요구되는 직무는 점점 더 부담스러워진다.

그러면서 퇴사에 대한 나의 인식은 어느덧 바뀌어 있었다. 이제 지금의 이 자리를 뜬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상황은 그리 좋지 않고, 나는 내려놓을 것이 더 많아졌단 걸 알게 된 것 같다. 결혼 후에는 생각할 게 더 많아졌다. 혼자만의 결정이 아닌, 남편의 의사도 반영해야 하니까.


회사를 그만두어도 된다는 스스로의 허가는 그래서인지 이번엔 더 시간이 걸렸고, 결심이 든 후에도 퇴직금을 한 달이라도 더 챙겨보자, 곧 그만둘 건데 그 마음으로 한 달 더 다녀보자, 라는 헛헛한 위로들로 또 몇 개월을 또 버텨냈다. 그러다 더는 안 되겠는, 순간이 왔다. 그 모든 것에 대한 미련보다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어 지는 마음이 더 커지는 그 순간, 퇴사를 했다.


그럴 줄은 알았지만, 처음에는 불안했다. 어색하기도 했다. 그래도 금방 익숙해지더라, 백수의 생활이란 게.

퇴사 후 보낸 6개월, 난 참 게으르게도 보냈다. 이쯤 되면 죄책감과 함께 스스로를 채찍질할 때도 됐지만, 한껏 게을러도 되는 이 나날들이 나는 아직 한없이 사랑스럽기만 하다.

나와 반대 성향의 퇴사자인 남편은 참으로 바빠 보인다. 해서 가끔 남편을 보면 내가 이러고 있어도 되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 때도 있다. 그는 아침엔 수영을 다녀와 출근하듯 노트북을 품에 안고 카페를 찾아 나선다. 한 주에 한 번은 그간 관심 있던 분야의 소규모 강의를 들으러 간다. 매일 영어 공부를 하고, 낮잠을 잠깐 자고 일어나선 끊임없이 새로운 무언가 할 일을 찾는 사람이다. 그래야 하는 사람인 거다.


반대로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머문다. 남편이 떠난 집에 홀로 남아 빈둥거리다, 생각나는 일들을 뜨문뜨문한다. 바쁜 일은 거의 없고, 친구들도 제한적으로 만난다. 며칠 동안 밖에 나가지 않는 날도 많다. 책이 읽고 싶은가 싶으면, 책을 읽다가 명상을 하고, 요가도 해보고, 이것저것 마음 내키는 걸 하려고 한다. 대신 시간 때우기용 TV와 인스타그램을 멀리하기로 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빠르게 흘러 허망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약속에 다 응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퇴사 직후에는 여기저기 만남들을 처리하느라 오히려 지쳐버렸었지만, 점차 균형이 잡혀갔다.


게으르지만 내 시간을 내가 조정해서 쓰는 데 집중하려고 했다. 회사원 때와 비교해 말도 못 하게 가난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회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백수의 나날에서 유익함을 느낀다. 거창하게 말해보자면, 십 년간 잃어버리고 살았던 인생을 찾아가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남겨본다.

게으름뱅이의 변명 같은, 퇴사 후 유익한 점들.



1 책을 많이 읽는다.

내 취미는 독서였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취미란을 채우던 독서는 이력서에도 그대로 적혔다. 성인이 된 나의 취미는 당연히 독서인 줄 알았다. 가만 돌아보면 회사에 다니면서 제대로 읽은 책이 손에 꼽힌다. 휴가 때마다 여행을 떠나도 꼭 책을 챙겨 떠나지만 정작 몇 장이나 읽고 돌아오는 걸까? 더 심각한 문제는 당시 읽었던 책을 다시 읽어보면 처음 읽는 책인 것만 같다. 회사에서 스트레스가 심할 때에는, (대부분 심할 때이지만) 책의 한 문장을 몇 번이고 열 번이고 다시 읽었다. 머릿속에 전혀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 거였다. 점점 책을 읽기가 어렵게 되었다. 어느 날 상담을 받던 중에 선생님이 요즘 책 읽혀요?,라고 묻는 걸 듣고 깨달았다. 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책을 원래 읽기 어려운 거구나.


퇴사 후 책을 읽는 느낌이 전혀 달라지는 걸 느꼈다. 머릿속이 비워져야 새로운 것이 들어온다. 회사를 다니면 늘 풀가동 중이던 내 머릿속에 책의 문구 한 줄이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스트레스를 주던 문제들은 쉽게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몇 번이나 같은 내용이 반복되며, 결론 없는 무익한 생각과 감정으로 여유 공간 없이 가득하다. 실제로 회사원이 한 달에 한 권 책을 읽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퇴사 후 다시 책에 손을 댔다. 이제야 비로소 웬만한 두께의 인문학 서적도 바로바로 이해하며 읽을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점차 속도도 나고, 책을 읽는 재미도 새삼 다시 느낀다. 늘 소설에 기대어 살던 나는 처음으로 인문학 서적들을 차곡차곡 읽어나가며, 얼마나 무지한 상태였는지를 깨닫고 거기에 놀랐다. 새로운 배움이 생기자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씩 달라진다. 아직 멀었지만 이해의 폭이 늘어나고, TV나 SNS를 통해서만 무언인가를 얻던 때와는 확연히 다르다.



2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책 중에서도 평소 관심이 많았던 심리학 관련 분야를 많이 읽는다. 난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걸까? 아주 세세하게 나를 잘 안다고 믿고 살았던 난 지금은 스스로를 전혀 모르고 살았구나, 새삼 놀란다. 스스로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구나. 20대 전후의 나에서 성장을 멈춘 마음을 발견했다. 그렇게 치이고 무수히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한 나의 십 년이 훌쩍 넘는 나날 동안, 사실 나는 내가 가진 방어기제나, 익숙하게 몸에 밴 패턴을 한껏 강화시키기만 했다. 사람은 여러 가지 사건에 반응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지는 것이 좋다. 그래야 유연하고 합리적으로 대처하며 살아가고, 그 과정에서 배움이 일어나 한 겹 한 겹 나이테가 늘듯 성장하는 거였다.


이 회사에서 저 회사로 옮겨 다닌 이유는 늘 같은 문제였고, 그때마다 남 탓을 했던 것 역시 똑같은 패턴이었다. 나는 다른 사건에 늘 같은 반응을 하며 살았는데, 그걸 알아채지조차 못했었다. 다 타인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늘 타인은 이상한 사람이었고, 난 그들은 절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감정이 쌓이고 쌓이자 여기저기 문제가 발생했다. 신체적인 통증은 물론이었는데, 그 신호조차 무시하고 한참을 버텨냈다. 감정적인 문제들이 차례로 터지면서 나는 뭔가 방법을 강구해야 했다.


늘 바쁘다는 핑계로 미뤄왔던 무언가를 정말 이제 손봐야 할 때가 찾아왔던 것 같다. 나는 명상센터를 찾았고, 과거 사건들을 되짚어보는 명상을 통해 많은 새로운 것들을 알게 됐다. 그게 십 년을 쌓은 나의 경력으로부터 얻은 업무 스킬만큼 무게가 나간다. 아직도 손 볼 부분이, 얻어야 하는 지혜들이 무수히 많지만, 이제라도 그 보따리에 가느다란 바늘이라도 찔러 넣은 것 같아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에는 내가 알아야 할 보따리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었으니까.



3 인생 정리하기

보험사에 청구해야 하는 실비보험금 청구액이 몇 년치가 쌓여있었다. 2년이 지나면 효력이 없는 걸 알고 있지만 마음만 무겁지, 주말이라도 그걸 챙겨할 에너지는 없었다. 안 받으면 안 받았지. 그렇다고 안 받기는 아깝지 않은가. 휴대폰 가득한 과거의 묵은 메시지. 연락 한번 해야 하는데, 생각만 하는 사람들. 그런 모든 것들이 쌓여있다. 처리되지 않은 채 묵혀두기만 것들. 며칠 시간이 생긴다고 쉽사리 꺼내지지 않는 것들. 천천히 그 가운데 하나씩이라도 풀어나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4 여행이 수월하다.  

한 달 살기의 꿈을 이뤄봤다. 휴가 기간에 떠났던 여행과 너무 달랐다. 새로운 경험, 지혜, 몰랐던 나에 대한 걸 배울 수 있었다. 좋을지 안 좋을지, 그건 경험해보기 전에 정말 모르는 일이니까. 그런 걸 다 해볼 수 있다는 것. 항공이나 숙박이 가장 저렴한 시기에 맞춰 떠날 수 있는 것, 여행 기간을 정하는 것도 한결 수월하고, 가장 큰 퇴사의 매력이겠지. 가난한 여행자이긴 하지만, 인생에 모든 게 완벽해서 떠날 수 있는 날은 거의 없을 테니까. 살다 보니 돈보다 시간이 왜 더 중요하다는 건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5 아침이 다르게 느껴진다.

무엇보다 잔병이 사라졌다. 아픈 횟수가 확연히 줄어들었다. 나는 참 병약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때마다 감기에 걸렸고, 주기적으로 방광염으로 고생했고, 온갖 사소한 질환들이 두어 달에 한 번씩 꼭 병원을 찾게 했다. 종합병원 같은 건강 때문에 스스로 가여워질 때도 있었다. 그러면서 예민한 신경은 더더욱 예민해졌다. 누가 기침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졌고, 날씨만 추워져도 날카로워졌다. 컨디션이 안 좋은 날이 늘었고, 조금만 불편한 생각이 들면 소화가 안됐다. 퇴사 후 아픈 날이 거의 없다. 컨디션이 안 좋으면 바로바로 쉴 수 있기 때문에 더 악화되지 않고 금방 회복되는 거 같기도 하다. 적절한 운동을 곁들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아침에 눈 뜨며 아픈데 없나, 일할만한 컨디션인가, 오늘은 또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잘 버텨내길 바라던 마음으로 살던 나는 퇴사자가 되면서, 오늘은 어떻게 게으름을 만끽해볼까, 전혀 다른 질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어떤 문제가 생기지나 않을까, 하던 걱정은 오늘은 뭘 배우는 날이 될까, 새로운 하루로 다가온다. 느리더라도 서서히 경험지(經驗知)를 느릴 수 있는 시간은 반드시 필요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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