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일
人有善而揚之(인유선이양지) 남이 잘한 것이 있으면 칭찬해주고
人不善而掩之(인불선이엄지) 남이 잘못하거든 덮어 주어라
人犯我而不較(인범아이불교) 남이 나를 해치려 해도 맞서지 말고
人謗我而默默(인방아이묵묵) 남이 나를 비방해도 묵묵히 참아라
則犯者自愧(즉범자자괴) 그러면 해치던 자는 스스로 부끄러워할 것이며
謗者自息矣(방자자식의) 비방하던 자는 스스로 그만둘 것이다
- 慕夏堂(모하당) 金忠善(김충선, 1571~1642), <家訓(가훈)>,
김충선의 본명은 사야가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휘하의 좌선봉장으로 3,000여 군사를 이끌고 침입했다가, 경상도병마절도사 박진(朴晉)에게 귀순했습니다. 그 뒤 동래·울산·진주 등에서 일본군을 여러 차례 무찔러 가선대부에 올랐습니다. 도원수 권율, 어사 한준겸(韓浚謙) 등의 주청으로 선조로부터 충선(忠善)이라는 성명을 하사받았습니다.
그는 가훈에서 “충이라는 한 글자, 선이라는 한 글자는 내 평생 감당할 수도 없고 능력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인데도 아름다운 명예를 임금께서 안겨주셨다”는 겸양의 표현을 합니다. 자식과 후손들에게 일평생 “남의 곤궁함과 약점을 보면 반드시 구제해주고 도와줄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덕의 씨앗을 뿌리고 선행을 일삼으면 자손만대에 복을 받을 것이니 어찌 아름다운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그가 약자에게 관대하고 마음속엔 늘 선행과 덕행을 염두에 둔 아름다운 인품의 소유자임을 잘 알 수 있게 됩니다.
귀화인으로서 후손들에게 남에게 욕을 먹더라도 마음속에 늘 참을 인 자를 새길 것을 요구합니다. 언젠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므로. 그때까지 선행과 덕행을 쌓으며 당당한 사회인으로서 올곧게 생활하란 뜻으로 이 글을 남긴 김충선의 후손에 대한 배려가 참으로 아름답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