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일
雨天披雲曾無奈(우천피운증무내) 비 오는 날 구름 걷어낼 방법 없듯
熱處招風亦不能(열처초풍역불능) 더운 곳 바람 불러낼 방도 또한 없다네
雖未開幬進禮蚊(수미개도진례문) 모기장 걷어내 헌혈하지 못할망정
寧敎拔劒怒微蠅(영교발검노미승) 미물인 파리에게 칼을 뽑아서야
- 김정희(金正喜, 1786~1856), <폭염에 한 생각 읊으며[고염열(苦炎熱)]>
김정희는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서예가, 화가, 금석학자, 실학자입니다. 그의 호 추사(秋史)는 추상(秋霜:가을날 찬 서리)과 같은 금석사학자(金石史學者: 금석의 역사를 살피고 증명해내는 학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평생의 포부를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서얼 출신으로 시(詩), 서(書), 화(畵에) 모두 능했던 박제가(朴齊家, 1750~1805)에게 어려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그를 통해 북학파 박지원의 학문을 계승하였습니다. 그의 나이 24세에 아버지를 따라 청나라 연경에 사신으로 가서는 청나라의 대학자이자 고증학자인 옹방강(翁方綱, 1733~1818)·완원(阮元, 1764~1849)과 교류하며 금석학(金石學)과 고증학(考證學) 분야 연구에 영향을 받기도 하였습니다.[위키백과, 나무위키 참조]
제가 근무하는 곳은 정면으로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학교 주변으로는 아파트 단지가 일렬로 쭈욱 늘어서 있습니다. 교외지도도 할 겸 산책 삼아 아파트 단지 주변을 한 번씩 둘러보곤 합니다. 산책지 주변에는 소나무와 아왜나무가 대부분인데 이 사이에 모기들이 안식처로 삼고 있습니다. 제가 이들의 서식지를 침입해서인지 우르르 몰려와서는 피를 빨아가고 하는 것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손으로 휘저어 보기도 입으로 불어내기도 하면서 쫓아내 보지만 불가항력입니다.
그러다 어저께 팔 위에서 본인과 후세의 생존을 위해 열심히 영양분을 흡수하고 있는 모기를 손으로 탁 내리치니 피범벅이 된 채로 압사하였습니다. 불현듯 죽은 모기는 ‘한 생명의 어미이며 자식을 잉태하고 있을텐데 나의 불편한 감정을 달래고자 이렇게 생각 없이 어미와 그 후세의 생명을 앗아가도 되는 것일까’하는 한 생각과 ‘차라리 조금 불편하더라도 기꺼이 피를 내줄 걸 왜 그렇게 모질게 대했을까’하는 자책감이 들었습니다. 간지럽고 따끔하게 하여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모기를 죽였으나 미안하고 죄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모기의 유충은 장구벌레입니다. 이 장구벌레가 더러운 물을 정화하는 생태계의 주역이라고 합니다. 피를 빨아먹거나 전염병을 옮기는 등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한없이 성가시고 유쾌하지 못한 존재이지만 지구 생태계의 입장에서는 낮은 곳에 처하며 물의 자정(自淨) 작용을 도우면서 생태계의 균형을 이뤄가는 한없이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미워할 수 없는 생태적 일꾼‘모기’, 박병상 도시생태연구소장 칼럼 참조.)
위 시는 추사가 제주도 유배 시절에 지은 한시가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추사의 인격의 완성도는 제주도 유배 이전과 이후로 나눠 볼 수 있는데 9년간의 유배 생활을 통해 기고만장하며 완벽주의적 성향이 강한 그의 성품이 많이 부드러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의 미물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색하게 생명을 앗아가는 것이 아닌 기꺼이 피를 나눠주며 불편함을 감수할 줄 아는 생명 존중과 연민을 지닌 대승적 마음이야말로 생태 위기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덕목이지 않나 스스로 반성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