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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 아래서

135일

by 은은


실핏줄처럼

뻗은 가지 속에서

푸른 잎 방울 뽑아낸 듯

초록빛 심연(深淵) 길어내네


나도 느티나무처럼

그 누군가에게

시원한 희망

틔워줄 수 있을까


애기단풍

두 날개 끝

도톰한 희망 품고

삶의 기적 향해

낙하 준비 중





오늘은 양력 유월 중순이자 음력 오월 스무날입니다. 여름도 이제 중반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지루한 장마도 곧 이어진다고 하니 늘 건강 유의하시고 안전 운전하시길 바랍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대학원 수업을 어제는 남해로 소요(逍遙: 슬슬 거닐며 돌아다님) 학습을 다녀왔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밤길, 그리고 다음날 진주를 지나 남해로 내려가는 길에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져 순간 차가 미끄러지지 않을까 겁이 나는 동시에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하나’하는 생각도 잠시 담담히 목적지를 향해 가니 어느 순간 빗발의 세기가 잦아들고 심지어 해까지 나오니 우리네 인생도 이처럼 변화무쌍하고 항상 어려운 일만 있는 것도 아니며 순간의 유혹을 이겨내면 밝은 햇살이 기다리는 이치를 떠올려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수고로 이 땅을 숨 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화가 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장대비 뒤에 햇살이 숨어 있듯 증오의 대상이 자신이든 타인이든 숨 한 번 크게 내시고 걷다 보면 둘레의 나무와 꽃, 산들바람, 새소리, 계곡소리, 맑은 하늘, 땅 위를 기어가는 개미의 발자국 소리에서 위안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둠에 가려진

눈과 귀

수시로 씻어내고

덜어내면


비난하는 말이

참 알 마음

일깨우는


진리의 종소리임을

가끔 알겠네






面上掃開十層甲(면상소개십층갑) 두터운 얼굴 수없이 벗겨내면

眉目纔無可憎(미목재무가증) 눈가에 스며든 증오 벗어날 수 있고

胸中滌去數斗塵(흉중척거수두진) 마음의 먼지 몇 말을 씻어내면

語言方覺有味(어언방각유미) 참 알의 말만 남겠지

- 홍응명(洪應明, 1573~1619), <느티나무 아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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