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4일
돌아서니 어느덧 정초의 보름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작년 달의 시간이 유월에 두 번 조정되다 보니, 새해 명절을 조금 여유롭게 맞이하는 일도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추위 속에 햇살의 온기 담아두다가 이내 바람이 그 온기를 거둬가기도 하는, 겨울 날씨의 조화에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하늘과 땅, 사람을 머리와 가슴에 품고, 때론 걸으며 가끔 글로 풀어내곤 하다 문득 장자의 하늘 피리, 땅 피리, 사람 피리란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람은 천(天)의 호흡이고, 만 개의 구멍은 땅과 만물이 됩니다. 바람이 불면 대나무 숲이 울리고, 바위틈이 웅웅대며, 계곡이 세차게 흐느낍니다. 이것이 지뢰(地籟)입니다. 그러나 그 울림은 누가 명령한 것이 아니라, 자연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스스로 내는 소리입니다.
장자는 “하늘의 울림, 땅의 울림, 사람의 울림, 모두 같은 ‘울림’이다[천뢰자 뢰야 지뢰자 뢰야 인뢰자 역뢰야[天籟者,籟也, 地籟者,籟也, 人籟者,亦籟也].”(齊物論)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말과 행동 역시 자연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뢰’를 지나치게 키워, 천뢰와 지뢰를 덮어버립니다. 끊임없는 말, 해석, 주장, 경쟁 속에서 하늘과 땅의 소리는 들리지 않거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장자는 ‘침묵’을 말합니다. 침묵이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울림에 자신을 맞추는 태도입니다.
바람이 불면 대숲은 흔들리고, 물은 흐르며, 새는 날아갑니다. 이들은 바람을 거스르지 않고, 그렇다고 끌려다니지도 않습니다. 자기 결을 따라 울릴 뿐입니다. 일찍이 노자 또한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지지불태(知止不殆)].”고 하였듯, 자연의 일부인 우리 사람도 자연의 리듬을 읽고, 그 속도에 맞춰 말하고, 행동하고, 멈출 줄 알아야 하지 않을까요?
지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자연의 흐름과 리듬을 읽어내는 경청의 능력입니다. 하늘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땅이 무엇을 견디고 있는지, 생명들이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를 듣지 못한 채, 우리는 각자 너무 많은 소리를 내고 있지는 않은지요?
2,300년 전의 현인인 장자가 말한 천뢰·지뢰·인뢰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그것은 ‘존재의 윤리’입니다.
하늘의 리듬을 거스르지 말고
땅의 고통을 무시하지 말며
사람의 언어를
자연의 울림 속에 두라
자연은 여전히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끼리 너무 시끄러워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웃님들, 냉(冷)과 온(溫)을 거듭하는 날씨 속에서 체온 조절 잘하시길 바라며 오늘도 건강한 하루 보내십시오. 늘 고맙습니다.
夫吹萬不同(부취만부동) 바람이 만물에 불어 그 소리 일정하지 않네
而使其自已也(이사기자이야) (이는) 스스로 소리 내어
咸其自取(함기자취) 스스로 취할 뿐인데
怒者其誰邪(노자기수야) 문득 이 소리 도대체 누가 일으키는지?
- 장자(莊子, 기원전 369~ 기원전 286), <자연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