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의 뜰

우리 선비, 10대와 농사를 노래하다

by 은은



利以養物(리이양물) 이로움으로 만물을 길러줘도

而無矜能(미무긍능) 재능을 자랑하지 않는다

厚以載物(후이재물) 두터움으로 만물을 포용해도

而不言功(이불언공) 공덕을 떠벌리지 않는다

君子觀之(군자관지) 군자가 그것을 보고서

敦厚而周愼(돈후이주신) 두텁고 후하게 거듭 삼가며

平易而從容(평이이종용) 평탄하고 조용하게 처신한다

- 기준(奇遵, 1492-1521), 「포용의 뜰[(종용정(從容庭))」



기준은 조선 전기 학자이자 지식인입니다. 청소년 시절 중종 때 백성을 위하는 ‘위민(爲民)’과 백성을 내 몸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애민(愛民)’이 핵심 가치인 도학정치(道學政治)를 펼친 급진적 개혁가인 조광조(趙光祖, 1482~1519)를 따르다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충청도 아산으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함경도 온성으로 위리안치(圍籬安置: 죄인이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두는 형벌)되었습니다. 이 곳에서 결국 사약을 받고 죽게 되는데 그 때 나이가 한창 피어날 때인 서른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죽음만을 기다리다가 마음을 가다듬고 주위의 사물 60가지를 관찰하고 성찰하였습니다. 이렇게 남긴 글이 「육십명(六十銘)」인데 「종용정」도 그 중 하나입니다.(홍희창, 《선비들의 텃밭 조선의 채마밭, 96~97쪽 참조.》


‘위민’과 ‘애민’을 했을 뿐인데 반대 세력에 의해 어린 나이에 유배를 당하고 스승이자 친구인 조광조와 함께 죽임을 당하게 되는 안타까운 삶을 살았지만 반대파 세력과 임금을 미워하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성찰하다 돌아간 그의 모습에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미안함과 부끄러움, 부채 의식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군자는 곧, 지식인이자 농부를 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지식인이자 삶의 예술가인 농부로서 그 처신은 과연 어떠해야 할까요?


첫째, 땅과 만물을 포용할 줄 압니다. 땅이 더러운 것, 흐린 것, 깨끗한 것을 가리지 않고 다 받아들이듯 농부는 날이 맑든 흐리든, 폭풍우가 불든 가뭄이 들든 상관없이 날을 가리지 않고 잡풀이 생기건 짐승과 풀벌레들이 곡식을 해치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안으며 받아들이기를 잘합니다. 곧 포용의 뜰을 늘 지니며 살아갑니다.


둘째, 스스로를 드러내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땅이 그 자신의 이로움으로 모든 생명 있는 것, 없는 것을 길러내듯 농부는 계절의 순환에 따라 묵묵히 곡식과 나무, 벌레, 흙, 물 등을 가꾸고 자연 경관을 보존할 뿐 곡식과 나무를 이만큼 길러냈다거나 벌레의 목숨을 이만큼 보존했고 농작물이 잘 자라도록 흙을 잘 돌보았으며 우리가 마실 물을 잘 보존했다는 등의 생색을 내지 않습니다.


셋째, 천지 만물을 위하고 아끼고 사랑할 줄 압니다. 농부는 텃밭을 통해 곡식을 가꾸기도 하지만 마음의 뜰을 잘 가꾸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질병을 아무나 치료할 수 없듯 배고프고 삶에 시련에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하고 나눌 줄 압니다. 고려 중기 지식인인 문장가 이규보는 햅쌀의 노래[「신곡행(新穀行)]에서 ‘농부를 부처님처럼 존경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임금도 굶주림을 구제하지 못하는데 농부는 그 일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손가락을 다치거나 내 발목을 꺾이면 우리는 매우 고통스러워하지만 남의 일에는 무심한 것이 보통의 사람들입니다.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땡볕에서 하루 종일 허리 숙여 땀흘려 일하는 정성은 보통의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숭고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주 대자연을 포용하고 아끼고 사랑할 줄 알며 그럼에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지식인이자 삶의 달인인 이 땅의 농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표하며 이 글을 정리합니다.


10대 생각


· 땅의 덕은 붚평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기후변화로 인해 환경이 오염되고 있다. 땅도 예외는 아니다. 땅은 그 자신이 오염되고 있어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생명을 돌보는 일을 하며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 포용의 의미는 자연재해, 홍수, 가뭄 등을 사람과 동식물이 겪어내듯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담담히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라고 생각한다.


· 나만의 포용의 뜰은 모든 천지만물을 나 혼자 다 차지하려 애쓰지 않고 내가 가진 것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내가 생각하는 포용의 뜰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서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안으며 받아들일 줄 아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땅이 있음으로 인해 우리가 있을 수 있으므로 땅의 존재 자체가 덕이라고도 생각한다.


· 나는 우리 집 강아지가 내 옷을 물어뜯든 내 학습지나 마스크를 물고 도망가든 그 모든 행동을 포용하며 참고 넘어가기에 나의 포용의 뜰은 우리집 강아지다.


· 내가 생각하는 포용의 뜰은 ‘받아들임’이다. 어떤 힘든 일과 상관없이 농부들은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안으며 받아들기를 잘하기 때문에 포용의 바탕은 자신의 처지를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만물을 포용할 줄 아는 땅이 없다면 우리는 나무, 꽃 등 식물은 물론이고 땅에 곡식을 심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 뜰 자체가 많은 것을 포용하고 있으므로 ‘포용의 뜰’의 의미는 많은 생명을 포용하고 품을 줄 알라고 말하는 것 같다. 땅은 생물에게 집과 길이 되어준다. 땅이 있기에 농사를 지을 수 있고 식물도 안심하고 자랄 수 있다.


· 땅의 덕은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길러내고 나무, 풀, 벌레, 흙, 물 등을 가꾸고 보존하는 것이다.


· 사람이 땅에 어떤 짓을 하든 항상 땅은 묵묵히 포용하는 것 같다. 사람이 땅에서 뛰고 침을 뱉거나 그 위에 무거운 구조물을 올리는 행동을 해도 땅은 자비로운 어머니처럼 모든 행위들을 다 받아들인다. 우주 대자연을 포용하고 아끼고 사랑할 줄 알며 그럼에도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삶의 달인이자 에술가인 이 땅의 농부들에게 감사하다.


·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로 인해 가뭄과 홍수 등의 자연과 관련된 재해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땅과 만물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걸 느꼈다. 세상을 함께 살아갈 존재로서 천지의 이치에 순응하고 안으며 받아들이기를 잘해야 하고 나의 내면에 포용의 뜰을 잘 간직하며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나를 돌아보는 물음

1. 여러분만의 포용의 뜰은 무엇인지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지요?

2. 위에 나온 내용 외에 땅의 덕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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