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취향(2, 끝)

by 윤지수

저를 아는 사람들이 본다고 생각하니까

솔직하기가 조금 버겁네요.

그래도 솔직히 써보겠습니다.

작가는 그래야 한다고 배웠어요.


누구한테 긴요, 저한테죠.










애인에게 성향을 털어놓긴 놓았으나 그 순간에도 이렇다 할 확신에 차 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나쁘지 않은 장르의 AV를 찾았을 뿐이고, 호기심이 드는 플레이가 생긴 정도지

그걸 실제로 적용해보지 않고서야 정확히 알기는 어려우니까.

애인의 제안으로 우리는 몸의 대화는 잠깐 미루고 서울에서 가장 큰 성인 매장으로 향했다. 지하철도 버스도 잘 다니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가야 할 정도로 약간 동떨어진 위치였는데, 아직도 그 이름이 생생히 기억난다. 바나나몰 청담점이었다.

그곳에서 조신은 무슨 조신, 난 조신과는 거리가 멀어-라고 생각했던 스물셋의 애송이는 털썩, 결국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상 조신하고 단정한 여자였다.

바나나몰에서 목도한 다양한 옷과 기구 그리고 기상천외한 용품들이 신선하기도 했지만 대개는 징그러웠다. 생경해서라기보다는... 그냥 보는 것만으로 어쩐지 깊은 곳으로 숨고 싶어지는 수치심이 느껴졌다. 내 것은 결코 아닌 걸 보는 기분이었다.

그때 나의 애인은 나보다 1살 어렸는데 미국물을 먹긴 먹었는지(나중에 이 애인과의 이야기도 쓸 예정이다. 맞다, 시카고에서 만난 그이다.) 정말 개방적이었다. 이 기구는 어때? 이 옷은 어때? 남 부끄러운 줄 모르고 전시된 기구를 만지작 거리고 코스튬을 내 몸에 걸쳐댔다. 사람이 많지 않아 망정이지, 아니었음 당장 뛰쳐나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정말 이건 아니라는 생각과 동시에 스물셋이면 그래도 꽤 어른인데 언제까지 이렇게 민망할 거냐 하며 치열한 내적 갈등을 겪었다. 애인은 내가 부끄러워하면 할수록 좋아했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 애의 성적 취향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상대를 수치스럽게 하며 좋아하는 성향.

우리는 그곳에서 몇 가지 기구를 구입하였는데 그날 당장 사용해 보자며 신난 애인과 달리 나는 내키지 않았다. 분명 AV에서 본,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 게다가 나의 성향 분석 결과와도 궤가 같은 기구들인데..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작위적인 흐름이 별로인 건가, 기구의 모양이 별로인 건가, 그것도 아니면....


결국 우리는 각자의 집으로 갔다.

나의 변명은 언제나 같았다. 몸이 좋지 않아서 오늘은 어려워. 지금 와 생각해 보면 나는 몹시 무례한 여자친구였다. 섹스 거부도 정도껏이지, 그 정도면 상대를 병들게 하는 수준이었을 것이다. 그가 내게 성향을 물은 것도, 나를 데리고 성인용품점에 간 것도 실은 다 나의 섹스 거부 때문이었다.

열 번 하자고 하면 나는 두 번 정도 응했고, 그 두 번 중 한 번 정도만 성의를 보였다. 으레하는 섹스가 결코 반가운 일정이 될 수는 없으니 내 쪽에서는 별 다른 방도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침대에 오르는 일은 정말 그만하고 싶었는데, 결국 아예 오르지 않고 집으로 갔으니 나도 나지만 그의 속은 오죽 상했을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관계에 노력을 들이는 애인이 짠하고 고마웠지만 그렇다고 또 억지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집에 와 혼자 생각했다. 정말 대체 뭐가 문젤까.

생각이 많아지면 침대에 누워 천장을 오래 보는 버릇이 있는데 그날은 세 시간 정도 가만히 천장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내가 아예 성욕이 없는 사람은 아닐 텐데. 아니다. 성욕 자체가 그냥 없나. 그럼 나는 평생 이따위 연애와 섹스만 하며 살아야 하나. 나중에 아이는 어떻게 갖지. 멀쩡한 몸 놔두고 시험관을 해야 하나. 아니. 아니야. 그래 기구. 역시 기구가 문젠가. 그게 너무 숭해서 그런가. 아니다. 오늘이 너무 작위적인가. 계획하고 하는 섹스는 자연스럽지 못하지. 아니다. 그것도 아니야. 그냥 진짜 내가 몸이 안 좋나. 바나나몰에서 기가 다 빨렸나. 아냐. 그렇다기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 음. 어... 음.....


문제를 자꾸 내 쪽에서만 찾아댔는데 그게 문제였다.

작위적 흐름도, 기구의 모양새도, 몸의 컨디션도 뭐도 아니고. 그게 다 아니고.

애인. 애인이었다.


나에게 그는, 섹시하지 못했다.

조금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가 꼴리지 않았다.
















나에게는 꽤 정확한, 아니 적확한 취향이 있었다.

그걸 몰랐다. 어려서는 사람이 좋으면 사귀었다. 그때 내게 사람이 좋다는 기준은, 선하냐, 다정하냐, 열심히 사느냐 하는 카테고리의 질문들이었고 이건 지금도 같다.

그러나 그땐 그런 것들‘만‘ 만족스러우면 연인이 될 수 있었다. 저 남자와 키스가 하고 싶은가, 저 남자와 침대에서는 어떨까 하는 건 조금도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진짜 어리긴 어렸구나 싶다. 남녀 사이에 기본은 성적 텐션인데. 그게 일단 먼저고 다음이 저런 것들인데.

내가 그때까지 사귀었던 애인들은 '자고 싶은'남자가 아니라 '잘 수 있는'남자들이었다. 섹스가 아예 불가능한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강하게 끌리지는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강하게 끌려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영역이 존재한다는 걸 알지도 못했다.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뭐도 다 몰라도, 주고받는 눈빛만으로도 동물적여질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땐 몰랐다.

그래서 으레했고, 그래서 억지로 침대에 올랐던 거였다. 실은 애인이 문제라기보다는 내가 나 스스로를 몰라 생긴 문제였다.


그럼 지금은 아느냐,

안다.

나의 취향, 너무나 안다.

서른이 스물셋보다 좋은 건 그런 것이다. 나는 뭐가 좋고, 뭐를 싫어하고, 뭐가 맘에 들고, 뭐는 별로고 하는 것들에 대해 막힘없이 말할 수 있다.

그건 정말 적확한 기준이며, 오차는 없다.

하지만 나를 안다는 건 한 편 행운이지만 한 켠 불행이었다.

사람이 아무리 좋아도, 정말 다정하고 괜찮은 사람이라도, 나는 이미 나의 고점을 알기에 그와 사귈 수 없었다. 더는 섹스 할 수 있는 정도로는 연애 시작이 되지 않았다.

하고 싶어야.

본능이 깨어나야 하고, 심장이 두근거려야.

일단 그게 먼저다.

성적 성향까지 맞으면 더 좋지만, 그건 극단적이지만 않다면 아무렴 괜찮다. 일단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다. 그 사람이 나의 취향이어야 한다. 꼴려야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건 다르다.

(물론 모두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고, 내가 그렇다고. 근데 사실 다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

게다가 취향의 범주에는 생김새만 포함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야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외적인 걸 포함해 그 내면도 함께다.

이러이러한 성격, 이러이러한 버릇, 이러이러한 생각, 나는 그런 것도 함께 고려해 흥분된다. (쓰고 보니 더러운데, 거짓 내숭으로 스스로를 깨끗하게 포장하고 싶지는 않다.)

애인과는 결국 헤어지기 직전까지도 으레, 억지로, 해야해서, 어쩔 수 없이 하다 끝났다. 당연한 결과다. 한 번 아닌 사람이 어떻게 뭐가 되었겠나.


그렇다 보니 소개팅으로 연애를 시작하는 건 정말 어렵다.

운명처럼 그런 남자가 나와주면 좋겠지만 그건 정말 기적같은 일일 것이다.

나의 취향은 꽤 까다롭고 퍽 예민해서 일반적이라면 일반적인데, 아니라면 또 아니어서.

심지어 맞춰간다는 것도 내게는 맞지 않는 말이다.

서로의 성향을 낮이든 밤이든 대화를 통해 알아간다고 해도 상대는 나의 취향을 맞춰줄 수 없다.

그냥 그렇게 태어나야 한다. 후천적 노력으로 되는 문제가 아니다.


물론 성적으로 끌린다고 다 사귀지는 않는다. 그건 필요조건이지 결코 충분조건은 될 수 없다. 그게 되고 나서, 다른 것들도 되어야 연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또, 연애를 한다고 다 사랑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또다른 필요조건들이 겹치고 겹쳐야 사랑까지 이어진다. 사랑은 그래서 어렵고 복잡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거 저거 그거까지 다 만족해야하니 말이다.

그런 경험은 인생에 딱 두 번이었고, 앞으로는 모르겠다.

하지만 또 모르지. 그런 사랑이 느닷없이 나타날지도.

여름이 더운 줄도 모르게 함께 더 뜨거워줄 사람이 나타나줄지도.

줄곧 잠들어있던 나의 심연 깊은 욕망들을 침대 위에 올려줄 사람이 나타나버릴지도.

다 모르지.

그걸 모르니까 인생이 재밌는 거 아니겠나.





끝으로,

나를 향한 지극한 사랑에 감읍하여 사귀는, 지난한 정성에 감동하여 허락하는 그런 일은 내게 없다.

미안하지만 나를 짝사랑하는 건 확률이 아주아주 희박한 주식에 몰빵하는 것과 같다. 하고 있다면 관두기를 권장한다.

암만 잘해줘봐야 내 취향이 아니면 나와 다음을 이어가기는 어렵, 아니 안 된다.

그래서 내게 인간적이 아닌, 이성적 호감으로 다가오는 이들에게 나는 섣부르다 싶을 정도로 빠르게 냉담하게 군다. 나를 좋아하기 전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품기 전에 그 선을 명확히 긋는다.

뭐 헛다리를 짚었대도 추후 상처주는 것보다야 낫지 않나 싶다. 아무래도 절대의 영역이니까.







어떤 남자가 좋은지

나의 취향은 그래서 뭔지

그건 비밀이다.


제가 거기까지 솔직하기는 어렵네요.

대작가가 되기는 그른 모양입니다.










끝.

작가의 이전글클릭 몇 번이면 닿을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 산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