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몇 번이면 닿을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 산다는 건

by 윤지수

짧은 산문(시) 모음집입니다.

그냥 가끔 이런 글을 메모장에 끄적이는데,

그걸 엮어서 이렇게 한 편으로 내보기도 하려고 합니다.

좋은 글인 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내뱉어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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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너의 예쁨>

너 참 싱그러워.

봄 볕을 잔뜩 머금은 푸른 클로버 같고,

여름 내음을 가득 안은 플라타너스 같아.

너 참 말끔해. 너 참 말갛고. 너 참 뽀얘.

나는 그런 네가 진짜 좋아.

그리고 나는 그런 너의 불행까지도 좋아할 거야.

그런 너의 불행이라면, 불행까지도 싱그러울 것 같거든.


향이 나, 윤도 나, 그리고 매끈하지.

너는 나한테 그래.

아무리 까칠하게 굴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나를 본대도

나는 너를 그렇게 읽지 못해.


맞아,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래.


나는 아는 너의 예쁨.

귀여운 것 앞에 무장해제가 되는 맬쑥한 표정.

사랑을 감추지 못하는 붉은 얼굴색.

연약한 것을 소중히 다루는 조심스러운 손짓.


나만 아는 너의 예쁨.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물어오는 다정한 안부.

작은 나의 세상을 언제나 가장 큰 세상으로 만들어주는 고마운 격려.

보드라운 말투로 전하는 너의 마음, 따듯한 말씨로 물어오는 나의 마음.


너 진짜 예뻐.

너도 알아?

너 진짜로 예뻐.










<나는 껍데기보다 속이 한참은 더 좋은 사람이야>

야한 건 잔인한 거야.

관능적 경탄, 그게 다 뭐야 대체.

그런 말로 암만 이쁘게 포장해도 포장 안 돼.

결국 섹스하고 싶어야 한단 소리 아냐.


일단 나는 진짜 좋은 사람이고 싶어.

더 나은 사람이고 싶고,

괜찮은 삶도 살고 싶어.

그래서 기부도 봉사도, 아냐 이런 게 다 무슨 소용일까 싶다.

내가 너에게 야하지 않으면 내 마음이 암만 꽃밭이어도 들여다볼 맘도 안 생기는 건데.

다 소용없지 뭐.


내 껍데기가 너에게 어떻게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껍데기보다 속이 한참은 더 좋은 사람이야.

근데 그럼 뭐 해.

아 짜증나, 진짜 잔인해.

내게 너에게 야하지 않아서 네가 내게 관심이 없는 걸까.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네 뭐.

너는 어떤 여자를 야해 할까.

너의 취향은 뭘까.

물어 뭐 해, 그게 나는 아닌 거겠지.

너의 부재의 이유는 나의 비야함이겠지 뭐.

잔인하네 정말.









<나의 지구는 이미 망했음이 자명하기 때문에>

사람을 들이는 일, 사람을 내보내는 일.

나는 두 가지가 다 어렵다.

좀처럼 마음 안에 사람을 잘 담지 못하고

겹겹이 쌓인 빗장도 잘 풀지 못한다.

그러나 어려히나마 누군갈 들이게 되면 나는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된다.

좀처럼 마음 밖으로 사람을 잘 빼내지 못하고 겹겹이 쌓인 추억도 잘 잊지 못한다.


그래서 원래 잘 들여지지도 않는 사람이지만,

얼마나 이별에 취약한 인간인지 스스로 너무도 잘 알기에

들이지 않으려 애도 쓰며 산다.

어려이든 쉬이든 아무튼 이 안에 오는 걸 아무에게도 허락하지 않고 싶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여지는 사람들이 있다.


수를 쓸 새도 없이 이 안으로 비집고 들어오는 무시무시한 사랑들이 있다.

그러면 나는 마치 지구에 커다란 행성이 충돌한 것 같은 얼굴을 하게 된다.

무력하고 묵묵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아무리 멀리 달아난다 한들, 그런 사람 앞에서 나의 지구는 이미 망했음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잔인한 디지털 세상>

클릭 몇 번이면 닿을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 산다는 건 참, 잔인한 일이야.

진탕 술독에 빠져 허우적 허우적.

놀 땐 좋은데, 다음날 아침은 참 무섭.

가슴을 쓸어내리며 확인해야 하는 핸드폰이 날 기다리고 있기 때문.

혹여나 술김에 말도 안 되는 전화를 걸었을까 싶어,

혹여나 지난밤 새 당치 않는 카톡을 보냈을까 싶어,

덜덜 떨며 열어보는 핸드폰.

휴, 다행이야.

아무 짓도 하지 않았군.

그러면서 문득 드는 생각.

아, 나 실은 온 이성과 완력으로 참고 있는 거였구나.

술이 혹여나 그런 걸 앗아갔을까 봐 걱정하는 걸 보니,

내가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이 너를 보고 싶어 하고 있었구나.


그러나 다시금 꾹 눌러 참는 마음.

도리도리 세차게 저어 날리는 마음.


늘 느끼지만 클릭 몇 번이면 닿을 수 있는 디지털 세상에 산다는 건 참, 잔인한 일이다.

이거 원 마음 놓고 그리워도 못하겠고.

젠장.
















<등산의 미학>

좋지 않은 체력.

그보다 더 좋지 않은 의지력.

그그보다 더 좋지 않은 심폐지구력.

암튼 등산하기에 최악의 조건은 다 갖추고 있음.

그런 내가 산에 오르는 건, 다다른 순간의 작은 성취감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이뤄냈다-! 는, 기분이 날 들뜨게 한다.

완등 후에는 막 뭐든 다 이룰 거 같고

지금 하는 일들도 괜히 다 잘 풀릴 거 같고

산을 정복한 것처럼 세상도 정복할 거 같고

그렇게 건설적인 내가 된다.

등산의 미학, 아 이것이 정복자의 마음이려나.


저랑 등산 가실 분 모집합니다.

우리가 오를 산의 이름은 성취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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