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1시간 글쓰기 챌린지입니다.
아무도 안 읽으셔도 괜찮습니다.
재밌어서 해봅니다.
빠르게 써야하니 얼른 이어가겠습니다.
오래 고민해서 쓰는 글만큼이나 이렇게 빠르게 갈겨쓰는 글도 재미있네요.
아무도 안 시켰지만 그냥 해봅니다.
어쩐지 필력이 늘 것도 같고 그러네요.
스물둘부터 커피를 즐겼습니다. 치열한 학창시절에도 커피는 그닥 제 음료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스물둘에 그걸 마시기 시작했던 건 그 나이부터 어쩐지 스스로 꽤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알량하게도요.
제가 다니던 대학 뒷문 카페에서는 1900원짜리 아몬드 커피를 팔았어요. 제 아몬드 커피 한 잔과 단짝 인희의 초코라떼를 하나 사서 등교하는 게 당시 저의 아침 루틴이었습니다. 그렇게 1년을 마시다 보니 자연히 스물셋부터는 아메리카노를 찾게 되더라고요. 쓰고 고소한 그 맛에 길들여진거죠.
특히 스물셋에는 1년간 세계 일주를 하면서 각국의 커피와 술을 죄다 사마셨습니다. 피에서 원두 향이 났을지도 모를 정도로 마셨던 것 같네요. 후회는 없습니다. 언제 다시 그런 여행을 가보겠어요.
스물일곱부터는 에스프레소로 옮겨갔어요. 처음엔 단지 있어 보이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네요. 이후에는 정말 맛으로 먹었어요. 좋더라고요. 이탈리안 마음도 이해가 되고. 그리고 당신을 만났습니다. 밀크티조차 디카페인을 찾는 극도의 노카페인 주의자 당신을요.
당신과 처음으로 같이 카페에 갔던 날을 저는 기억합니다. 민망해하며 아이스초코 한 잔을 시키던 당신의 커다란 등이 선명해요. 나는 커피를 시키고 당신 앞에 앉았는데 어쩐지 음료가 바뀐 것 같다며 당신은 멋쩍게 웃었습니다. 아이스초코에 때 아닌 구름 라떼 아트가 꽤 귀여웠던 탓이었겠죠. 나는 그 멋쩍음이 싫지 않아서 생글생글 웃었습니다. 우리는 눈을 맞췄고 이내 같이 웃었어요. 그리고 생각했죠. 다음에 카페에 같이 오면 나도 아이스초코를 시켜야겠다. 당신과 같이 민망해주고 싶어서요.
스물여덟에는 생존을 위해 커피를 매일 마셨습니다. 학원 일은 정말 체력을 많이 요하는 일이었거든요. 한 교시가 무려 120분이었고 그런 수업이 주 7일, 오후부터 새벽까지 빼곡했던 탓에 커피 없이는 서 있을 수 없었어요. 심지어는 샷을 추가해서 먹기도 했습니다. 수업 준비를 하며 오전에 하나, 수업을 하며 오후에 또 하나를 마셨습니다. 몸에 피대신 카페인이 흘러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을 거예요. 카페인이 잘 받는 몸이 아니라서 해진 후에 커피를 하고 나면 그날 밤을 꼬박 새는 편인데도 그때는 워낙 피곤함이 짙어서 엄청 잘 잤어요.
학원일은 돈은 많이 벌 수 있어서 좋았지만 건강과 맞바꾸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해 여름부터는 퇴근길에 당신이 나를 데리러 왔어요. 내 손에 주렁주렁 들린 커피 잔을 보며 당신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커피 마시지 않는 삶을 살게 해주고 싶다고요. 그리고는 손을 잡아주었어요. 손에서도 카페인 향이 나는 거 같다며 핀잔을 주면서도 내 손을 놓지 않았어요. 사랑한다는 말 없이도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것 같았던 그때, 저는 결심을 했습니다. 커피를 한 번 끊어보겠다고요.
모르겠어요. 커피 없이는 살기가 어려운데도, 그거 그때는 정말 저에게 생명수와 같은 거였는데도, 그러고 싶었어요. 당신이 나에게 커피를 좀 끊으라며 잔소리를 했다면 외려 반감에 더 마셨을 수도 있었는데요. 당신은 그러지 않았어요. 마음 아파했고, 속상해했어요. 커피 없이 사는 삶을 주고 싶다던 그 고백이 얼마나 찡하게 가슴에 맺혔는지 모르시죠. 나는 다음 날부터 당장 커피를 끊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려웠어요. 잠이 얼마나 쏟아지는지, 정신은 또 왜 그렇게 안 드는지, 머리도 몸도 죄다 꼬여서 엉망이었죠. 그래도 끊었습니다. 우리 자주 가던 그 카페에서도 저의 시선은 메뉴판 첫 페이지에서 두 번째 페이지로 넘어갔어요. NON-COFFEE메뉴에서 음료를 골랐습니다.
당신이 없는 자리에서도, 심지어는 혼자 들른 카페에서도 그랬어요. 끊겠다 선언하고 가끔 유혹에 넘어갈 때도 있었지만 스물여덟 가을부터는 완벽히 커피를 끊게 됐어요. 모쪼록 다 당신 덕분이죠. 학원일은 그 해 연말에 그만뒀어요.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찬찬한 삶을 살고 싶었거든요. 커피가 필요하지 않는 내 삶을 당신만큼이나 나도 살고 싶었어요.
스물아홉에 직장을 옮기고도 여전히 커피 없이 삶을 살았습니다. 실은 커피가 아주 필요없지는 않았어요. 그 각성 효과를 대체할 만한게 잘 없거든요. 그런 고민을 하던 차에 커피가 주던 각성을 저는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당신과 함께 운동을 하면서 운동 강도를 올리게 되었어요. 바닥이던 체력을 한껏 앙등시켰죠. 거기에 당신 먹는 시간에 나도 챙겨 먹으면서 밥도 잘 먹게 됐고, 당신 자는 시간에 나도 자면서 수면도 규칙적여졌어요. 스물아홉 해 만에 처음으로 몸이 정상 궤도에 올라탔습니다
맞아요. 그때 그 모든 건 정말이지 당신 덕분이에요. 제 시간에 먹고, 제 시간에 자고, 그런 삶을 그때 처음 살았어요. 그간 젊음 하나만 믿고 대충 살았거든요. 시간에 따른 식사 강박, 해가 지면 자야한다는 당연한 생각도 덕분에 자리잡게 됐습니다. 저는 건강해졌어요. 커피 없이도 하루 종일 서서 수업을 할 수 있게 됐고 피곤할 때에도 카페인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어요. 예전에 대체 어떻게 샷까지 추가해서 먹었는지, 스스로가 생경해질 정도로 잘 살았어요. 심지어는 어쩌다 카페인 음료를 먹게 되면 심장이 너무 뛰어서 불편감까지 느낄 정도가 됐죠. 좋았습니다. 당신에 닮아가는 나의 리듬도 좋았고, 그것과 별개로 건강해진 삶도 좋았습니다만..
작년 여름 나는 당신을 잃었습니다. 아, 종이쳤어요. 시간이 다 됐네요. 출근길에 산 커피 한 잔이 줄줄 녹아 물자국이 생길 정도로 벌써 30분이 후딱 흘렀네요. 아무튼 나는 다시 커피를 마셔요. 요즘은 바닐라 라떼를 즐겨 마십니다. 커피를 다시 사마시는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당신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커피 마시지 않는 나는 당신과 나란하던 나예요. 나는 이제 그러고 싶지 않아요. 당신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어서 다시 커피를 길들였습니다. 뭐, 어렵지도 않네요.
더 쓰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여기까지만 해야겠어요. 아무튼 나는 요즘 커피를 즐겨 마십니다. 이런 내 모습이 싫지 않아요. 당신없이 사는 삶에 적응을 해내네요, 제가 기어이 그걸 해냅니다. 운동은 아직 해요. 잠도 잘 자요. 커피만 들였어요. 건강을 죄 놓고 그러지는 않아요. 그냥 제일 당신 생각이 나던 버릇을 버린 겁니다. 음. 커피 향이 좋네요. 꽤 적절한 오전입니다.
그런데요.
나는 이제 꽤 어른이 되어서요. 사랑했던 사람과 남이 되는 법을 제법 잘 알아서요. 당신과의 거자필반을 빌지 않아요. 우리 그렇게 무리하게 사랑했던 시간들도 더는 그리지 않습니다. 다정했던 너와 내가 있던 그 여름으로부터 온 편지에 답장을 쓰려고 하는데 첫문장을 이렇게 시작해도 될까 싶어요.
제가 당신 아닌 다른 사람을 좋아할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그렇게 된 것도 같고요. 당신도 그렇게 해요. 그 다정한 걱정 이제 다른 이에게 줘요. 우리 그렇게 완벽한 남이 됩시다. 언젠가 우연히 마주치면 그냥 잠깐 웃으며 스칩시다. 나는 이제 그러고 싶어요. 안녕, 하고 싶네요. 먼저 가서 미안해요. 잘 지내죠? 잘 지내요. 아, 또 종이 쳤어요. 쉬는 시간도 끝났어요. 이제 진짜 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