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가득 담아
나는 내 일을 사랑하지 않았다. 일이 생기면 일을 탓했고, 사람이 문제를 일으키면 사람을 탓했다. 이 글은 내가 마주했던 사람들. 특히 그들의 일터에서 가장 빛났던 사람들에게 애정과 존경을 담아 쓴다.
6715 버스 안에서
출근시간대 6715 버스에는 라디오가 나오지 않는다. 기사님은 휴대용 마이크를 착용하고, 승하차하는 승객 모두에게 인사를 했다. 수십 개의 정거장마다 똑같은 인사를 반복하는 것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인가? 저 다정함에는 시니컬함이 절대 따라잡을 수 없는 강한 에너지가 있다. 한 명 한 명에게 눈을 맞추고, 진심으로 건네는 인사. 승객 중에는 인사에 화답하는 사람도, 그저 침묵으로 무시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기사님은 받지 못할 인사에도 여전히 다정함을 담아주었다.
기사님의 라디오에는 오늘의 날씨며, 당신의 27년 운전 경력 등이 흘러나왔다. 출근길 버스 안, 청취자들은 한가득이지만, 기사님의 방송은 왠지 외롭게 느껴졌다. 이럴 때면 내가 기사님 방송의 애청자라고 말해주고 싶다. 여기저기 6715 기사님을 자랑하다 직장 동료도 그 기사님을 기억한다는 걸 알았다. 우리는 한동안 기사님의 멋짐에 대해 이야기했다. 자기 일을 사랑하는 사람은 수많은 버스 기사님 사이에서도 이렇게 기억된다. 멋지다. 자기 일에 사명감을 갖고, 메아리 없는 인사를 먼저 건네는 일은 말이다.
건물 화장실 안에서
이 회사 건물 화장실에는 모르는 사람투성이다. 단독 사옥이 아니고, 여러 회사가 밀집되어 더 그렇다. 화장실에 들어설 때면,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매번 움찔움찔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할 수도 없고, 모두를 모른 척할 수도 없었다. 나는 그저 화장실 청소를 담당하는 여사님과 인사하며 지낼 뿐이었다.
하루는 변기 뚜껑이 수상하게 닫혀 있었다. 닫혀있는 변기 뚜껑을 여는 것은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긴장된다. 모두 날아가고 비어있을지, 남지 말아야 할 것이 남아있을지 모르니까. 그날 변기 뚜껑은 열지 말았어야 했다. 물을 내려봐도 소용없어 우선 닫고 돌아섰다. 화장실 칸에서 나오자마자 여사님을 마주쳤는데, 내가 범인으로 오해받을까 봐 묻지도 않은 대답을 했다.
“누가 저기 변기 막히게 하고 도망갔어요” 여사님은 담담하면서, 약간 열의에 차서 대답했다. “그래요? 그럼 뚫어야지. 그게 내 일인데” 여사님은 장비를 찾아들고 내가 도망쳐 나온 화장실 칸으로 기세등등하게 입장했다. 멋있다. 자기 일에 책임지고 나서는 모습. 저렇게 담담하게 문제를 마주하는 것은 참 아름답다. 나는 숙연해졌다. 일이 생기면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내가 고용된 이유인데, 매번 화를 냈던 건 왜였을까?
2호선 지하철 안에서
출퇴근 길, 2호선 지하철 안은 지쳐있는 인파로 인해 공기마저 탁하다. 그저 간신히 희미한 호흡을 내쉬며, 도착지에 닿기를 고대한다. 정차역도 아닌데 열차 내에 안내 방송이 울렸다. “신대방~구로디지털단지 거리에 벚꽃이 피었으니, 핸드폰만 보지 말고 창밖을 바라보세요” 방송이 나오자 핸드폰만 보던 사람들이 일제히 창밖을 바라봤다. 나는 꽃보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과 그 모습을 상상할 기관사님을 떠올렸다. 기관사님의 방송은 지친 사람들에게 벚꽃처럼 아름답게 다가갔다.
그다음 해도 벚꽃은 아름답게 피었다. 돌보는 사람 없어도 같은 자리에서 약속한 듯 피어나는 꽃나무들이 신비로웠다. 안내방송이 없어도 기억나는 기관사님의 따뜻함이 신비로웠다. 멋있다. 일을 하면서도 낭만을 잃지 않은 기관사님의 모습.
봄에, 그것도 벚꽃이 피는 찰나에 2호선에 탈 때면, 기관사님을 대신해 안내방송을 하고 싶다. ‘거리에 벚꽃이 피었으니 핸드폰만 보지 말고 창문 밖을 보세요’
나는 당신의 일터에서 빛나는 사람을 만났다. 당신은 일을 하면서도 의연하고, 담담하며, 따뜻했다.
일터에서 가장 빛났던, 이름 모를 당신에게 애정과 존경을 가득 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