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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해보는 경험들

RE START

by 나우디

내가 가장 먼저 시도한 건 뭐였을까?


바로 글로벌 패션회사에서 세일즈 어시스턴트로 일한 것이다. 갑자기, 패션 회사에서 옷을 판매하고, 상품을 관리하고 고객을 응대한다니 조금은 생뚱맞을 수도 있겠다.

공대와는 다소 동떨어진 느낌의 선택이다.


친구들은 ‘네가 고작 거기 들어가려고 공부했냐’라고 했으며, 어머니는 아래와 같이 이야기했다.


‘4년 동안 공부한 게 아깝지 않아? 그래도 그쪽 분야에 뭐라도 부딪혀 보고 결정해 보는 건 어때?‘


현실적으로 바라봤을 때 4년간 시간과 돈을 투자했고, 차석으로 졸업했고, 이 정도 학점과 스펙이면 그래도 대기업/중견기업은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다 할 성과를 맞보지도 못하고 결정했을 수 있다. 사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내디딘 첫걸음이자 첫 결정이었기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내가 선택한 내 도화지었기에.


도화지를 집어 들었으니 다채로운 물감으로 칠하는 시점에서 주변 사람들의 말보다 나의 붓에 집중해야 했다.

붓을 꽉 쥐고 있지 않으면 도화지 밖을 벗어나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의 붓을 쥐고 처음으로 색을 칠한 건 검은색을 상징하는 패션회사였다.


photo by pexels

그럼, 왜 다른 데도 아니고 갑자기 패션회사인 건가? 왜 판매와 응대직이었던가?


이 질문에 대해 답을 하려면, 과거로 잠시 돌아가야 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다. 학교에서 교지편집부를 맡기도 했으며, 패션에 관련된 취재 기사도 실었다.

요즘 트렌드는 무엇인지, 어떻게 입으면 매치가 좋을지를 고민하는 건, 숨 막히는 고등학교 3년 시절 가운데 몇 안 되는 즐거움 중 하나였다.

교지 편집부 활동을 하며 사람들의 경험과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고, 다채롭게 변하는 옷의 확장성에 관심이 많았다.


옷은 그 사람을 대변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했고, 곧 옷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나를 드러내고 싶은지가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옷을 직접 눈으로 보고 구매하는 이들에게 내 가게는 아니지만 옷을 팔 수 있을지가 궁금해지기도 했다.


모범적인 삶과 정도의 길을 걸어온 나에게 잠시 그 길을 벗어나 시도해 보는 모든 것들은 짜릿한 실험이자 도전이었다.


이내 나는 단순히 생각했다.


“글로벌 패션 회사 1-2위 업계에 입사해 보는 거야! “

“학창 시절 가졌던 옷에 대해 더 관심을 가져보고 사람과 인터뷰하거나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니까 판매와 응대를 해보자!”


그분이 나의 열정의 소리를 들었을까?


그렇게 나는 한 번에 면접을 합격했다.


그 후 열심히 일했다.

처음엔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지기도 했다. 의류 업계의 평균 연령은 20대 초반이었는데, 누가 봐도 지긋이 나이 먹은 사람이 어울리니 의아했던 것이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들은 ‘적응을 잘할 수 있을지, 공대생이 센스는 있을지’ 많은 걱정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해진 시간보다 항상 일찍 오는 습관덕에 매장 구조를 익히고, 옷을 훑어보며 근무를 시작하는 내 모습에 점점 관심을 기울였다고 했다.


나는 3개월 동안 단순히 옷을 개고 정리하는 것만 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친구들이 종종 매장에 놀러 왔을 때 나를 안쓰럽게 바라봤지만, 나는 그저 옷과 친해지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마치 새로운 생명체와 소통하듯이, 나지막이, 그리고 소곤소곤 히.


그렇게 옷과 친해진 이후 하나둘씩 매장 판매에 대한 아이디어와 의견을 피력했다.

또한, 섬세한 성격덕에 오고 가는 손님들이 무거운 옷을 들고 있으면 쇼퍼백을 제공하고, 고민하는 눈치가 보이면 먼저 다가가 말을 건넸다. 피팅룸에서 열리는 고객의 패션쇼에 동참하여 옷을 봐주고 환대로 퇴장을 도왔다.


세일 기간에 북새통으로 정신없는 어느 날엔 부산에서 올라온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위한 졸업식 옷을 사려는 모습을 보았다.

몹시 구겨진 파카였다. 나는 당장 몇 분뒤 졸업식인데 구겨진 파카를 딸에게 건네줄 수 없다고 느꼈다. 어머니에게 구매 이후 정성스레 펴서 내어드리겠다고 말했다.


매니저에겐 바빠 죽겠는데 비효율 적인 행동을 왜 하나며, 가서 옷 정리나 더 하라며 된통 혼났지만, 우리 매장의 진심을 고객에게 전하고 싶었다.


나는 말했다.


‘스팀 하고 그 시간보다 훨씬 더 열심히 매장이 누수되지 않게 일할게요! 걱정 마세요!’


그 말을 한 이후 어머니에게 파카를 내어드렸다. 어머니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연신 감사함을 표하셨다.


감사함을 먹은 나의 몸은 훨씬 더 가벼웠고, 뜨거웠다. 이후 플로어에서 더 열심히 옷을 정리하고 신입직원을 컨트롤하며 세일기간을 잘 운영해 나갈 수 있었다. 부산 사람에게 수원 매장을 알렸다. 따뜻하고 일관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해 줬다고 생각하니 짜릿했다.


이후 어머니는 우리 매장을 다시 찾아왔다. 그리곤 내게 졸업식을 잘 마쳤다며, 찐한 감사인사를 건네주셨다.


그렇게 나는 몇 개월 지나지 않아 이른 시간에 진급 평가를 통과했고 관리자가 될 수 있었다.

photo by pexels

나는 삶을 살아내고 배웠다.


내가 열망하고 소망하는 것을 배우려면 묵묵히 옷을 개는 것처럼 기본기가 중요하고, 기본기 위에 섬세함과 고객을 바라보는 디테일이 얹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결국, 모든 인생은 기본기와 디테일 싸움이라는 것을.


그렇게 나의 첫 번째 경험은 기본기와 디테일을 얻은 채 막을 내렸다.


photo by pexels

경험이 주는 소중함을 깨달았다. 소중함의 녹을 먹어 한츰 성장했다.

성장과 동시에 용기를 얻었고, 용기와 동시에 나를 얻었다.


이슬아 작가님의 ‘부지런한 사랑’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장 어려운 우정은 자기 자신과의 우정일지도 모른다.


맞다. 내가 하고 싶은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이 곧 나와의 우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 보는 것이 가장 어렵기도 복잡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곧 나를 찾아가는 시작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와의 우정을 더욱 간직해야 한다. 더욱 잘 챙겨야 한다. 그렇게 살아가야 한다. 그래야 살아진다.


첫 사회 경험을 통해 귀중한 자산이 쌓였다.


자산을 품에 안은 채 어느덧 두 번째 열차를 탑승하기 위해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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