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은 세상과 더 깊은 연결을 이뤄낸다
대학을 차석으로 졸업하자 이 세상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잠깐 전공 관련 취업준비를 하며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 서류합격률이 나쁘지 않았고, 50:1의 경쟁률도 뚫었다.
성취의 경험을 맛보니 주변 이들에게 나의 경험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최종 면접도 여러 번 보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다.
자꾸 최종의 문턱에서 떨어지고 나니 분노가 차올랐다.
아니 이런 나를 떨어뜨려?
내가 뭐가 부족해서!
나는 실패의 원인을 찾기보다 합리화를 선택했다.
성장을 위한 회고보다 짜증과 불만만 토로했다. 자신감이 자만심으로 변모되는 순간이었다.
현실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회사가 이상한 거라며 비난했다.
낮은 자세로 내가 발전할 부분을 탐구하기보다 높고만 싶었다. 그 사이 친구들은 반도체 대기업에 하나둘씩 합격하고 떠났다.
나중 된 자들이 먼저 되었다.
학창 시절 나의 도움을 받던 친구들이 나를 불쌍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겸손은 온 데 간데없고 자만심이 가득 차니 주변은 텅 비었다.
그때, 인생에서 나 자신을 처음으로 돌(아) 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그렇게 자만했을까?
무얼 꽉 쥐고 있었길래 방어하려 애썼을까?
인정이었다. 성실히 살아온 보상을 깨뜨리기 싫었나 보다. 비교의식에 기반한 타인보다 현실 경험이 부족하기에 이것만큼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더 보호하려 으스댔다.
강도가 심해지자 하나둘씩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던 건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진정한 도움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은 우쭐대지 않았다. 실패하면 뭐가 부족한지 고치며 성장했다. 불만을 가지기보다 행동을 먼저 했고, 비난을 토로하기보다 비평을 통해 삶을 관찰했다. 동지애를 느껴가며 토닥여주었고, 같이 성장했다.
같이의 가치였다.
그들은 매우 겸손했다.
메타인지가 뛰어나 현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고 노력해야 할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여전히 대기업을 잘 다니고 있다.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도 했다.
나는 다시 나를 바라봤다. 겸손이라는 단어가 뇌리에 깊게 박혔다.
그건 단순히 고개 숙이는 예의가 아니었다. 겸손은 함께 일할 수 있게 만드는 태도였고,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그릇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견고한 사람을 만드는 마음가짐이었다.
질문 (1)
나를 쉽게 자만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큰 깨달음 이후 나의 여정의 시작엔 글로벌 패션 브랜드가 있었다.
20대 초반의 평균연령에 내가 나이 많은 아저씨로 보진 않을까, 민폐가 아닐까 조심했지만
겸손히 마음을 고쳐먹으며 낮은 자세로 배우기를 감행했다.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겸손의 자세로 경청하며 배웠다.
처음엔 실수도 많았고, 의류 용어도 서툴렀다. 특히 유독 한 명의 상사 앞에서 의견을 말할 때마다 긴장했고, 사람들 앞에서 뚜렷하게 주장을 펴지도 못했다. 실제로 나의 그런 쭈뼛쭈뼛한 태도에 무리 지어 다니던 이들은 무시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특별한 태도가 자리 잡고 있었다.
“모든 사람에게서 배운다”는 겸손함.
나는 업무가 끝난 뒤 매니저에게 다가가 물었다.
아까 말씀하신 부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오늘 플로어 커뮤니케이션이 좀 부족했던 것 같아요.
혹시 느끼셨다면 피드백 주실 수 있나요?”
더 열심히 배우기 위해 부끄럼도 마다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질문받는 습관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는 태도를 바꿨다. 질문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꽤나 부끄러웠지만, 뭐가 부족한지 알려고 물었다.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다면, 짚고 넘어가고자 했다. 나를 위한 선택이었다.
나중에 매니저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지만 ‘얘는 진짜 성장하고 싶은 아이구나'가 느껴졌다고 했다. 나를 통해 되려 초심을 잡았다고 했다. 점점 무시하던 사람들도 내게 다가왔고 더 많은 기회가 나의 손으로 흘러들어 갔다.
특히 한 번은 여성복 피팅룸에서 후임이 고객이 맡겨놓은 옷을 다른 고객에게 내어주는 큰 실수가 있었다. 매니저는 후임을 질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그 후임의 트레이너로써 조용히 나의 부분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 했다. 책임을 미루는 대신, 트레이닝에 대한 부족함을 겸허히 인정하고 다시 교육하기로 했다. 책임을 회피하는 게 아니라 겸손하게 수용하고 성찰하는 태도는 상사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결국 나는 4개월도 안되어 관리자로 발탁되었다.
질문 (2)
단 한 번뿐인 삶에서 최선을 다해본 경험은 어떤 게 있나요? 결과와 상관없이 경험을 위해 어떤 걸 움켜쥐었었나요?
시간이 지나며 겸손한 사람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첫째, 자신의 부족함을 기꺼이 인정한다.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부족함 덕분에 성장의 여지를 더 많이 가진다.
완벽에 갇히지 않고 모자람도 받아들이며 성장 경험치를 먹고 살아간다. 정말 단단한 사람들이다.
유독 스타트업에서 많이 느꼈다. 대표가 더 낮은 자리로 다가와 구성원들과 동행한다.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이 부분은 저 역시 고민'이라며 솔직하게 오픈한다.
대표라고 다 알아야 할까?
스타트업이 어느 궤도에 올라가는 순간, 대표도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진다. 그러다 보면 잠시 길을 잃을 수 있다. 이때, 리더들에게 자신의 솔직함을 오픈하고 인정하니 결합력이 강해진다. 그것이 누적되면 의사 결정의 면밀함과 단단함이 자라난다.
부족함을 기꺼이 인정하는 사람들에겐 사람 냄새가 난다.
둘째, 칭찬을 들으면 자신보다 함께한 사람들을 먼저 언급한다.
이건 코칭을 시작한 이후 여실히 경험하고 있다. 코칭은 스스로의 해답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다. 코치는 적절한 질문을 통해 고객의 삶을 일깨운다. 고객은 발견을 통해 코치에게 감사를 전한다.
'저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그러면, 내가 만난 대부분의 코치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이야기한다.
'스스로 찾아나가신 덕분이죠'
겸손한 사람은 덕분이라는 말을 자연스럽게 한다. ‘제가 한 건 별로 없고요, 사실은 여러분들이 정말 잘해줬어요’와 같은 말이 입에 붙어 있다.
내가 높아지기보다 상대를 높여주길 원한다.
나는 무명하여도 내 고객들만큼은 유명하길 진심으로 바라는 분들이다.
셋째, 모른다는 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안다고 허세를 부리기보다, “이건 잘 모르겠어요. 알려주실 수 있나요?”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신뢰를 얻는다. 무지한 것보다 모름을 인정하고 깨부수는 태도는 성장을 가져온다.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는 걸 인정하는 사람이다.
넷째,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려 한다.
니체는 말했다.
사람은 높이 올라갈수록, 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작아 보이는 법이다.
-프레드릭 니체 (Friedrich Nietzsche)-
혼자 달려 나가는 사람은 아래를 못 본다. 겸손한 사람은 도처에 날 수 없는 사람들과 함께 가길 원한다. 더불어 살아가길 희망한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그들의 생각에 귀 기울인다. 으스대던 사람들이 결국 향하는 곳은 자신의 으스댐을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 곁으로 가기 마련이다.
겸손한 사람은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만큼 깊다.
다섯째, 칭찬과 격려가 몸에 밴 사람이다.
조직과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걸 묻노라면, 인정과 격려 그리고 칭찬을 꼽고 싶다.
조직에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방향은 잘 잡아나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격려하는 것'만으로도 많은 힘이 될 수 있다. 꼭 따스한 격려가 아니어도 된다. 성장을 위한 말을 부드럽게 전달할 수 있는 탁월한 리더들도 많이 만났다.
스타트업에서 팀장과 나 두 명이 한 부서였던 적이 있다. 그러나, 1개월도 안되어 팀장이 퇴사했고 나는 모든 걸 혼자 떠안았다. 운영도 잘해야 했으며 기본도 탄탄해야 했다. 그러자 조급함이 찾아왔고 실수투성이가 되었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다 무너지게 만들었다.
실수의 연발로 인해 위축된 상황에서, 다른 부서의 한 리더가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 질문을 툭 던졌다.
'OO님 정신없죠, 업무 하는데 무엇 때문에 가장 많이 답답하셨어요? 같이 부딪혀봐요 ‘
그 질문은 아직도 가슴 안에 남아있다.
칭찬과 격려가 배인 사람들은 대게 겸손하다. 높고 낮음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더불어 사는 문화에 관심이 많다. 어떻게 구성원을 독려해야 하는지 기가 막히게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 겸손함에 비롯된 존재 자체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이 참된 리더임을 깨닫게 해주는 사건이었다.
질문 (3)
주변에 닮고 싶은 사람을 떠올려 봅시다. 그 사람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질문 (4)
희생을 통해 되려 무언가가 채워진 경험은 어떤 것이 있나요?
몇 주 전 교회 목사님을 만났다.
이런저런 속 안에 고민이 있었고 나는 준비한 물음을 던졌다.
'현숙하고 지혜로운 사람을 배우자로 만나고 싶어요.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그러한 사람은 대게 어떤 특징이 있나요?'
그러자 목사님이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이 되면 보이게 될 거다'
긁혔다.
표정관리가 안 됐다.
우문현답이었기 때문이다.
또 자만했다. 그런 사람을 찾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을 생각했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또 한 번 겸손과 역지사지의 태도를 몸에 담았다.
우리는 살아가다 으스대는 나를 마주한다. 이때, 아낌없는 스스로의 격려와 인정도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겸손 아래 머물러야 한다. 선의 경계를 잘 타야 한다. 선을 넘는 순간 자만이 되기 때문이다.
코치를 하며 그 사람 그 자체를 존중하고 이해하려 노력한다.
이렇게 보면 참 코치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낮은 자세로 그들의 이야기에 몰입하고, 판단이 올라올 때면 멈추는 능력을 키워가고 그들의 할 말을 겸허히 듣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지금도 다시 되새긴다.
훌륭한 코치는 수 백 마디의 말 보다 단 두 개의 귀를 가진 사람들이란 걸.
돌이켜보면, 겸손은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실패를 겪고, 지적을 듣고, 실수를 저지를 때도 나는 금세 무너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미 나의 중심은 ‘나는 부족하고 아직도 배워야 할 사람이야’라는 마음으로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자주 잊는다. 내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걸 매번 다시 상기시켜 주는 게 바로 겸손이라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 겸손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겸손은 나를 작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더 깊게 연결되도록 해주는 보물이다.
질문 (5)
여러분을 세상과 더 깊게 연결시켜 주는 힘은 어디에서부터 오나요?
세 번째 보물 요약
1. 겸손은 세상과의 연결이다
2. 모든 사람을 통해 배우려는 자세가 곧 겸손이다
3. 겸손은 지속적인 훈련이다
화창한 개울가를 지나니 세 번째 보물인 겸손이 눈에 보인다.
겸손을 손에 쥐니 비로소 '견고함'의 옷을 선물로 받는다.
적절한 침묵, 성실함의 재능, 겸손함으로 무장된 옷은 찬란히 빛났고, 나를 더 나답게 감싸주기 시작한다.
세 가지 보물을 손에 든 벌거벗은 아이는 옷을 입는다.
거친 들판과 야생으로 나갈 준비를 마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