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진정 행복하다.
딸아이의 유년기 시절, 아내가 직장에 나가는 토요일마다 나는 아이와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
일주일 내내 직장과 바쁜 일상에 치여 살다가도, 토요일만큼은 온전히 아이와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설레었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며 계획을 세우고, 아이가 좋아할 만한 곳을 찾아가며, 그렇게 우리만의 주말 데이트를 즐겼다.
그때 나는 아이가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기뻤고, 그 즐거워하는 아이를 위해 보는 것을 즐기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단순히 아이를 위해 시간을 낸 것이 아니었다. 아이의 행복을 위해서였던 것도 맞지만, 사실은 내가 그 순간 진정 행복했기 때문에 아이도 행복을 느낀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 자주 드는 생각이 있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가 진정 즐거워야 아이도 즐거울 수 있다. 부모가 억지로 아이를 위해 ‘놀아주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즐기고 웃을 때, 아이 역시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낀다.
그때의 나를 다시 정의해 보면, 나는 아이를 위해 ‘놀아준’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놀았다.’
키즈카페에 가면 “블록 만들기 하고 있어”가 아니라 “우리 같이 만들자, 누가 더 잘 만드는지 해볼까?”였다.
또래 아이들과 공놀이를 할 때도 “아빠는 응원할게 놀고 있어”가 아니라 “아빠도 같이 할래! 네가 잘하니까, 아빠는 저 친구랑 편 먹을게”였다.
나는 그렇게 아이와 함께 뛰고, 웃고, 온전히 즐기는 순간을 함께 했다.
물론 체력적으로 지칠 때도 많았다. 하지만 단순히 집에서 책을 읽어주거나 소꿉놀이를 하는 것보다, 함께 몸을 움직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더 즐거웠다. 아이도 즐거워했고, 나 역시 하루를 지루하지 않게 보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었다.
그러던 아이가 어느덧 엄마의 키를 따라잡을 만큼 컸다. 이제는 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더 많아졌지만, 가끔 심심할 때, 문득 나와 놀고 싶어질 때, “아빠, 보드게임할래?, 같이 배드민턴 치러나갈래?”라며 부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귀찮으면서도 반갑다.
언젠가는 이런 호출마저도 줄어들겠지만, 이 아이와 함께한 모든 기억은 내 마음속에 선명히 남아 있다. 아이와 뛰어놀며 쌓은 추억들은 내 삶의 큰 동력이 되었다. 그것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영원히 지속될 에너지다.
언젠가 이 글을 아이가 읽게 된다면, 그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지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함께한 시간이 아이의 마음속에도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기를 바란다.
나는 단 한 번도 아이를 위해 나를 소모한 적이 없다.
단 한순간도 내 시간을 희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을 함께 만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