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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제야 Jun 16. 2023

이혼은 결국 통장정리

숫자로 대화하는 이혼 협상 테이블의 이면



 이혼과정은 망가진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물론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 마음을 붙잡으며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죽을 만큼 힘들지만, 이혼이라는 것은 심지어 헤어질 마음을 흔들림 없이 유지하면서 기존에 이뤄온 생활 또한 둘로 딱 잘라 냉정하게 쪼개어 정리해야 하는 수고가 곁들여지기 때문이다. 조각난 둘의 시간을 주워 모아 네 잘못 내 잘못 가려가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와 시간이 든. 부정행위 같은 유책사항이 끼면 증거 수집하느라 그 피해는 더 크다. 게다가 변호사비에 성공보수까지 생각하면 물질적 정신적 마이너스로 일상에 타격이 오는 것이다.


 나의 상담선생님은 최고의 상담사는 이혼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이 말인즉슨, 이혼이라는 것이 그만큼 인간이 겪는 수많은 감정의 바닥을 보는 과정이자, 엄청난 환경과 심경의 변화를 겪게 한다는 것이다.

 대체로 이혼하는 이들은 결코 용서 불가능한 배우자의 배신이라던가, 심각한 중독, 폭력, 혹은 내 가치를 완벽히 짓밟히는 경험을 하며 남은 인생을 위해 이 길을 간다. 때론 감정적으로 홧김에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체로 현실적인 문제 등을 고려했을 때 진짜 내가 이러다 죽을 것 같을 때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내 경우도 그러하다. 정말 이러다 영혼이 다 부서질 것 같아서 이혼을 결심했으니까. 그럼에도 이혼 과정은 녹록지 않고, 오히려 그 과정에서 나의 억울함은 더 커지고 있으니 이래도 저래도 문제다.


 물론 연애에서도 이러한 과정이 있을 수 있지만 가정이라는 것을 이루고 나면 감정에 현실이 더해져 '삶' 그 자체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더욱더 해결할 과제들이 많다.

 협의이혼이 아닌 조정이나 소송일 경우 이는 더하다. 둘이 원만하게 합의하면 참으로 좋겠지만 나처럼 그렇지 못한 경우가 수두룩 한 것이 사실이다. 법원 근처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이혼전문 변호사 사무실 간판만 봐도 나 같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다.



이혼은 현실이다


 이렇게 법을 통해 부부사이를 정리하게 되면 결론은 돈이다. 백년해로를 꿈꾸던 사람과 철천지 원수가 되는 것도 서러운데, 법의 냉정함은 나의 억울함이나 슬픔 따위와는 전혀 관계없이 위자료라던가 재산분할이라는 명목하에 네 잘못 내 잘못을 돈으로 정리해 준다. 세상은 돈으로 돌아간다더니,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이 시점에도 돈이 슬픔을 앞선다.  

 사실 나 조차도 천 원 한 장이라도 더 가져오려고 각했다. 꼴랑 몇 푼 되지도 않는 위자료 받아낸다 해서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위자료'라는 단어라도 문서로 남겨야 억울함이 조금은 해소될 것 같다.

 그런데 대한민국 법은 잘못한 놈들 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 위자료라는 것이 참 짜고도 짜다. 소송에 드는 시간이며 정신적인 고통돈으로 환산하면 일억만금으로도 보상이 되지 않는데, 대한민국 위자료 최대치가 5천만 원 정도란다. 결혼생활이 짧은 걸 감안하면 그것의 반이나 받을까 말까 하다는 소리다. 


 게다가 조정이나 협의로 끝내면 저런 단어를 넣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말 그대로 조정은 큰 충돌 없이 이혼을 속히 진행하기 위한 협상이므로.

 사람과 사람을 정리하는 것인데 결론이 돈이라는 것이 참으로 씁쓸하지만, 그래서인지 이혼 정보를 나누는 카페에는 재산분할로 싸우다가 상대에게 남아있던 미련이 싹 사라져서 다행이라는 사람도 있다. 그럴만하다. 가뜩이나 안 좋은 감정이 돈 때문에 더 안 좋아지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소송을 가봐야 이미 정해진 재산분할의 나누기 방식에 드라마틱한 차이가 생기는 것도 아니다. 잘잘못을 입증하느라 몸과 마음이 상하는 것은 물론이며, 그 얼마 안 되는 위자료 때문에 1년 그 이상의 감정싸움이 벌어진다. 그렇기에 아주 현실적으로 냉정히 생각하면 미래의 손해들도 계산해봐야 하는 것이다. 법원에 출석하고 서면을 끝없이 작성하는 수고부터, 말 같지도 않은 답변서에 분통 터뜨리며 싸울 것만 생각해도 손이 떨릴 지경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저놈을 법정에 세우고 증거 들이밀며 몰아가는 것이 내게도 이득은 아닌 것이다.


 한 가정에 쌓인 애정과 추억을 정리하는 결론이 결국 돈이라는 것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든다. 말이나 행동, 혹은 글로도 다 표현이 안 되는 감정을 정리하는 결론이 고작 숫자라니. 법이 그렇다 하니 어쩔 수 없다고 치자.

 그렇다면 계산기가 결코 내놓지 못할 정신적 충격에 대한 보상은 어디서 아야 하는 것인가? 결국 어느 누구도 산출해 낼 수 없는 이 답은 나 자신에게 있다는 뻔한 결론만이 남는다. 내게 돈 말고도 무엇이라도 남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는 줄어든 재산과 한부모가정 타이틀이 남고, 부정적이고 우울한 감정이 집안 곳곳을 메우는 것이 한없이 억울하다. 책상대는 끝내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결혼 생활 내내 그랬듯 그 무책임함으로 훌훌 사라지는 것이니.


 이혼의 터널은 길다.  골머리 싸매고 앉아 계산기만 두드린다고 해서 이혼이 뚝딱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만큼 통장 잔액이 남는다 해서 감정이 다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현실과 감정 두 가지를 동시에 잘 처리해 내야 '잘 한 이혼'이 되는 것인데, 말이 쉽지 겪어보면 참 사람 할 짓이 못된다.

 이제야 그 초입에서 어둠을 뚫고 나아갈 채비를 하는 나에게는 더욱더 멀게 느껴진다. 그렇기에 그 깊은 어둠을 질주하며 터널비전현상(터널 속에서 터널 끝의 작은 빛 구멍만 보이고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시야가 극도로 좁아지는 것)을 조심하려고 끝없이 마음속 알람을 울릴 뿐이다.

 혹여나 협상 중에 물질적인 우위를 차지하려다 내 품위를 훼손하는 일을 벌이지 않도록, 미움만 앞세워 온갖 복수를 해대며 치졸해지지 않도록 조심하려 한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복수를 할 수 있는 몇 가지 확실한 방법은 있다. 그러나 그와 그 가족에게 '엿'이나 먹인다고 현실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역소송을 당할 가능성이 있어 그나마의 협의가 더 어려워지거나, 훗날 아이에게 내 행동이 떳떳하지 못하게 비칠 것을 염려하게 된다. 또한 복수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이 필요한 일인데, 나는 더 이상 저놈들에게 마음의 초점을 두고 싶지도 않다. 그것조차 관심을 주는 것이 되고, 그 더러운 꼴을 내 마음에서 떠나보내지 못하는 증명이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나에게서 그를 완벽히 도려내고, 훨씬 나은 내가 남길 바란다.


 그래서 그저 글을 쓰며 내가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마음을 가다듬는 것이다. 어차피 나는 이 관계를 떠날 것이고 그와는 다른 선택으로 다른 길을 갈 것이므로. 그러니 그는 결코 알지 못할, 지지리도 싸웠던 과거에서 벗어나 보다 성숙하고 가치 있는 내가 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복수이기도 하다. 그토록 내게 영향력을 과시하고자 했던 너를 떠나니 더 아름다운 인생이 찾아온다는 것. 나만 아는 이 복수를 위해 오늘도 글을 쓴다. 그가 알건 말건 상관도 없다. 이젠 알 필요도 없는 사람일 뿐이다.


 결국 이혼을 잘 이겨낸 사람은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가장 미워하다가 끝내 용서하게 된 과정을 겪은 사람인 것 같다. 미움조차 남지 않을 때 비로소 완벽히 끝이 나는 것이다. 미움이라는 감정 또한 일종의 마음 쓰임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 아닌가.

 사실 내겐 아직은 어려운 일이다. 그럴수록 더욱 초점을 내게로 돌리고, 내가 최대한 담담하고 냉정하게 이혼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다잡는다. 이미 사랑이 끝난 것은 자명하나 그 남은 흔적과 상처는 남기 마련이니 애써 부정하지 않고 그저 흘러가길 지켜본다. 둘이서 하던 사랑은 떠나갔고, 나 혼자 하는 애도만 남았으니 이제는 나만을 위해 나 편한 대로 이 감정들을 잘 다독일 일만 남았다.


 언젠가 내 상처에 대해 쓸 것이 없을 정도로 마음을 다 비워내면, 과감히 커다란 마침표를 찍고 또 다른 내 삶에 대한 글을 쓸 것이다. 켜켜이 쌓인 고통을 한 땀 한 땀 수놓듯 새겨낸 이 글들을 고이 접어두고 그 이후의 나에 대한 새로운 글을 쓸 날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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