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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Feb 10. 2021

결과물로서의 글쓰기 뿐아니라 쓰는 과정을 염두한 첫날.

글쓰기 모임의 기록

우리는 여덟 번 만나고 세 편의 에세이를 쓰게 된다. 원래는 열 명 정도의 모임을 하나 운영하려고 하셨다가 약 1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여의사를 밝혀서 두 개의 모임으로 나누어 진행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A4 한 장 반에서 두 장 반 분량으로 여행과 산책, 영화와 도서, 그리고 자유 에세이를 제출하고 모임에서 정지우 작가에게, 또 모임 구성원들에게 첨삭과 평가를 받는다. 합평이라는 단어 자체가 조금은 낯설었다. 국문과 출신이지만, 난 늘 어학쪽에 기울어진 선택을 했기 때문에 문학 분과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첫 모임은 글쓰기에 대한 강의와 멤버 소개를 한다고 했다. 각각의 에세이는 마감일이 정해져있다. 과제를 제출하는 학생의 입장이 아니고서야 일정 시간까지 무언가를 제출하는 글쓰기를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보고서는 늘 '되는대로 빨리' 써내야 했고, 블로그는 '내가 쓰고 싶을 때' 써왔기 때문에 주어진 주제로 마감일까지 글을 제출해야한다는게, 뭔가 벌써 작가가 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첫 주제인 여행 에세이 마감은 첫 모임 3일 후로 정해졌다. 시간이 촉박할 수 있으니 구상을 미리 해두면 좋겠다는 안내 메일의 문구가 고마웠다. 모임원들의 이름을 보면서 각각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올지 살짝 기대가 되었다.


모임은 한국 시간으로 밤 9시에 시작하니 여기 시간으로는 아침 7시다. 일주일에 한 번, 오전 6시와 6시 반에 두개의 알람을 설정해 놨다. 첫 모임 전날 도착한 줌 링크가 담긴 메일에는 참고자료가 들어있었다. '여행 에세이'라는 파일 이름 안에는 총 네 편의 글이 담겨있었다. 쉽게 읽히는 글이었다. 그런데 글을 쓴다는 생각을 가지고 읽으니 어쩐지 마음에 부담이 됐다.


첫 강의 날, 시작 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전원이 다 모였다. 앞으로 모임이 어떻게 진행될지에 대한 설명 이후 '글쓰기 강의'가 시작되었다. 강의를 이런 말로 시작했다. '모임에서 배운 내용을 그대로 다 글쓰기에 적용할 수 있다면 천재라고 봐도 된다. 아마 적용하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 이어지는 말이 와닿았다. 글을 쓸 때, 우리가 배우는 내용들이 상호작용을 할 거라고, '아, 그 때 그 말이 이런 말이었구나,' 하게 될거라고. 그렇게 조금씩 적용해 나갈 수 있다고. 


강의는 글쓰기에 대한 여러 개의 문장을 제시하고 각각의 문장이 글을 쓰는 과정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어졌다.


가장 첫 문장은 '글쓰기는 적대에서 시작해서 사랑으로 끝난다.'는 거였다. 세상의 통념과 싸우려는 마음에서 글이 출발한다는 거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어떤 대상에 대한 인식에 대해서 나의 이야기로 반박하는 거라고, 글을 써 나가면서 내가 세상의 상식, 통념 말고 옹호하는 게 뭔지 대해 말하게 된다고. 예를 들어 '사랑'에 대한 글은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아닌 것'에 대해 쓰기 시작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그러면서 '그렇다면 내가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언급하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옹호하면서 글을 마치게 된다는 거다. '행복'에 대해 글을 쓴다면, '나는 거창한 것은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로 시작해, 본인이 생각하는 행복에 대해 말하게 되는 것이 글쓰기라는 것이다.


'글쓰기는 시선이라는 대지위에 세우는 건축물이다.' 글을 쓰는 사람은 내 글을 읽을 사람의 시선에 대한 생각을 기반으로 글을 써야한다. 이 말을 들으니 왜 건축물이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언급했는지 알 것 같았다. 건축가가 자신이 세우는 구조물 안에 들어갈 사람이 어디를 바라볼 것인지를 생각하고 공간을 구상하고 구현하듯, XXX라는 속성을 가진 사람이 읽을 글이라고 생각하고 글을 써야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내가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 할것인지, 그 단어 선택이 독자에게 어렵게 느껴지지는 않을지, 그런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 그냥 뻔하게 '독자를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쓰세요'라는 말보다는 실질적인 조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더불어 한 달 반 동안은, 아니 한 달 반동안 만이라도, 정지우의 시선에서, 정지우가 생각하는 좋은 글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그렇게 글을 쓰려고 노력했으면 한다고 했다. '어디에나 통하는 절대 비기의 법칙'을 가르쳐주겠다는 말이 아니라서 참 좋았다. 이럴 때 영어에서는 'There is no such a thing...' 이라는 구문을 사용한다. 한달 반 동안 '정지우처럼 글쓰기'를 배우는 모임이라니, 설렌다. 그렇다고 모두가 획일화된 스타일로 글을 쓰도록 하려는 건 아니라고, 각자의 글을 써나가지만, 정지우의 시선을 담은 글을 써보자고. 그 시선이 뭔지에 대해서 살짝 설명했는데, 책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에게 보여주면 약간 어렵다고 하겠지만, 교수님에게 보여주면 글이 너무 가벼운 것 아니냐고 할, 너무 쉽지도, 그렇다고 너무 어렵지도 않은 그 중간 어디즈음에 있는 글이라고 한다. 항상 애매한 나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딘가 위안이 되는 느낌이었다. 


'글쓰기는 관계의 또 다른 방식이다.'

여기서는 내 일기장 속 글과 에세이라는, 적어도 한 명 이상의 독자를 고려하고, 그들과의 관계를 고려한 글 간의 차이에 대해 언급했다. 작가님의 첫 책 '청춘 인문학'은 여동생과 사촌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써내려간 책이라고 한다. 언제 세상에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내 책을 읽어줬으면 하는 사람들은, '영혼없는 힐링팔이'에 지친 사람들이다. 명상을 하면 내 삶이 나아질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어떻게 하는건지 모르겠고, 잠이 오고 잡생각에 빠지게 되어 나랑 안 맞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정지우 작가의 말을 빌리면, 명상과 마음챙김에 대한 통념과 싸우기 위해 글을 쓰고 싶어진게 아닐까. 

 

'글쓰기는 대조를 먹고 산다.'

글쓰기모임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라고 했다. '대조'를 쓰면 글이 무조건 좋아집니다.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라고 했다. 이렇게나 갖오하니, 더 궁금해진다. 실질적으로 글을 쓰는 팁으로 들어가면, 글 첨삭 과정에서 글이 밋밋하고 재미가 없을 때 '~(가) 아니라', 혹은 '~~보다는'가 들어가면 글이 풍부해진다고 한다.    

 

'글쓰기는 독자와의 소개팅과 같다.'

이 문장은 내가 평소에 갖고있던 의문인 '솔직함', '구체성'을 내가 쓰는 지금 이 글에서 얼마나 드러낼 것인가, 그 선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말이었다. 글이 장황하거나, 지루하거나, 읽기 불편해지는 것이, 이런 솔직함과 구체성에 대한 어떤 강박관념에서 오는게 아닐까? 독자들과 글을 통해 어느정도 적당한 밀당을 하고, 이미지메이킹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 


'글쓰기는 디테일에 있다.'

어느 글쓰기 특강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말일거라 하면서 시작했는데,  무엇이 디테일해야할 것인지에 대해 말할 때 살짝 감동했다. 자기의 감정 표현을 디테일하게 하라는 것인데, 내 생각을 표현할 때, 과연 이게 내 감정과 생각인지, 아니면 추상적인 적당한 표현에 불과한지를 되돌아보라는 거다. 미사여구를 붙여서 글을 디테일하게 쓰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낀 감정이 무엇인지, 그게 언제, 어떻게 내 마음속에 들어왔는지를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좋은 글이 된다는 거다. 


'글쓰기는 정확한 솔직함에서 고유함을 얻는다.'

이전에 말한 '디테일'을 좀더 풀어서 생각했달까? '정확한 솔직함'은 감정을 표현할 때, '그래야만 할 것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순간에 느낀 그 감정과 그 감정이 내게 다가온 상황을 솔직하게 구제척으로 쓰는 것이 좋은 글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 아이가 자랑스러웠다'라는 문장은, '아이가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라고 하면 그 순간의 내 감정을 좀더 정확하게 표현해준다. 


'글쓰기는 자기가 쓰는 모든 문장에 대한 이유를 아는 것이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문장에 쓰인 단어들까지, 왜 다른 단어가 아니라 하필이면 이 단어를 이 문장에 썼는지를 알고 써야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태양'이 아니라 '햇빛', 혹은 '햇살'이라는 단어를 골랐는지, '걸었다' 대신 '거닐었다'는 단어를 사용했는지 말이다. 제대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본인의 단어 선택에 대한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는 거다. 우리도 글쓰기모임을 통해 내가 이 단어를 사용한 '나름의 이유'를 찾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글쓰기는 전체와 부분이라는 분열적인 상태를 항상 필요로 한다.'

여기서 본인의 페이스북 글쓰는 방법을 살짝 공개했는데, 보통 자신의 글은 5-6 문단으로 구성된다고 한다. 그런데 네번째 문단까지 하고 싶은 말이 나오지 않으면, 그 다음 문단에서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꺼낸다고 한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글을 쓰는 나로서는 깊이 새겨들어야하는 이야기다. 글을 쓸 때, 내가 써내려가는 문장이 전체 글의 어느 부분쯤 갈지를 염두에 두면서 써야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문단을 이루는 문장 하나하나, 단어하나하나를 체크하면서 글을 써야한다고. 예를 들어 인생에 대한 글을 쓰다가 '스타크래프트'얘기를 꺼내고, 거기서 글이 끝나버리면 글이 이상해지지만, 여기서 다시 원래 얘기하던 주제인 인생으로 돌아가 내가 새로 꺼내느 '스타크래프트'가 인생에서 가지는 의미를 서술해주면, 이게 비로소 완성된 글이 된다고 해야겠다.


아직 내 글을 첨삭을 받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생각해보면, 나는 문장을 구성하고 단어를 선택할 때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읽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쓰는 편인 것 같다. 근데 그 낱개의 문장이 글 전체와 이루고 있는 관계를 잘 조절하며 글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문단간의 길이나 말투, 톤, 시제 등등을 잘 활용하면서 지루하지 않게 글을 쓰는게, 나의 앞으로의 글쓰기 목표가 되어야 할 것 같다. 


강의 이후에는 참고자료로 보내준 본인의 이전 글들을 함께 읽으며, 본인 글을 분석했다. 어떤 포인트가 잘 쓴 글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이런 부분은 없었어야 할 것 같은데, 구조를 이렇게 사용한 이유, 이 문장이 전체 글에서 가지는 의미, 글이 흘러가는 와중에 구체성과 추상성 사이의 줄타기 등에 대해 언급했다. 


글 평가과정에서 재미있었던 점은, "마무리를 잘 해나간다"는 본인 글쓰기의 장점을 알고 있다는 것, 그리고 본인 글을 소재로 당시 글을 쓰던 상황을 떠올리며, 지금 쓴다면 이렇게 안쓰겠다는 얘기를 담담하게 해나간다는 점이었다. 


참고자료 중 페이스북에서 많은 호응을 얻은 글도 소개되었는데, 글쓰기 모임에서 '이 글이 왜 인기가 많았을지' 함께 분석해 봤다고 한다. 글에서 나오는 묘사가 배경, 사건, 내면으로 나뉜다면, 이런 묘사를 글 안에 적절히 잘 배치해냈을 때 좋은 반응을 얻는 것이 아닐까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세 시간 반이 걸렸다. 피곤하지만 피곤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다음 시간에는 드디어 우리가 쓴 글을 함께 읽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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