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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May 01. 2021

오스카 시상식 일주일 차, 영화 <미나리>의 미국 반응

영화 <미나리>와 <기생충>의 미국 현지 온도 차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개의 상을 휩쓸었을 때, 나는 미국의 한 대학에서 근무중이었다. 동료들은 사무실에서 마주친 내게 봉준호 감독은 한국 안에서도 인기가 많은 감독인지, 나는 영화 내용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영화에서 묘사된 송강호 가족의 모습이 실제의 한국과 얼마나 닮았는지를 물었다.


한동안 미팅에 들어가면 영화 <기생충>을 봤냐고 묻는 것이 단골 인사에 가까웠다. 한국 영화를 좋아한다며 봉준호 감독의 다른 작품을 언급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영화속 짜파구리 조리법을 담은 유튜브 영상을 보내며 맛있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나는 일명 '램동(Ramdong)' 세트라며 영화 속 라면 두개를 곱게 포장해 선물하기도 했다. 


1년이 조금 지난 이후, 영화 <미나리>가 오스카 6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윤여정 씨가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 올해의 오스카는 코로나로 인한 판데믹 상황 속에서 치러졌고, 내가 여기서 느낀 분위기 또한 작년과는 달랐다. 내가 일했던 대학을 비롯해 많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미팅은 시간을 정해서 용건만 간단히 하고 헤어지기 바쁘다.


화상회의의 특성상 모두 모일 때까지 기다리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거의 줄었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화면을 꺼놓고 밀린 다른 일을 처리하느라 예전처럼 잡담이나 안부를 묻는 소위 스몰 토크(small talk)의 기회가 사라지다시피했다. 업무용 영어보다 스몰 토크가 더 두려웠던 나는 사실 이런 분위기의 전환이 반갑기도 했지만, 좀처럼 오기 힘든 2년 연속 한국인이 오스카 상을 수상한 이런 시기에 한국에 대해 자연스레 얘기할 만한 기회가 거의 없는 것은 아쉽게 느껴진다.


아쉬운 마음에 주변 영화관에서 영화 <미나리>를 상영하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근방 20km이내의 영화관 중 대여섯군데서 상영중이었지만, 집에서 제일 가까운 극장에서는 아쉽게도 내려간 듯 보였다. 3월 초, 동네 극장에서 영화 <미나리>를 상영하는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찍어두길 잘한 것 같다.

3월 초에 찍어둔 우리동네 영화관 미나리 상영판

간혹 화상통화로 만나는 친구들에게 아카데미 시상식을 봤냐고 물었더니 전체시상식을 보지는 않았고 배우들의 드레스를 구경하는게 재밌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리고는 시간을 내어 영화 <미나리>를 보겠노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영화 <미나리>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대부분 대학도시에 살 때 만난 친구들이어서 이들이 만난 한국인은 영화 속 미나리 패밀리처럼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보다는 대학에서 일이나 공부를 하는 한국인이었다며, 새로운 형태의 한국 이민자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을 갖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영화 속 시대 배경이 80년대 초반임을 상기시켜주었다. 한국인의 미국이민사가 한 세대를 건너뛰었음을 대화에서 새삼 발견하게 되었다. 


정이삭 감독은 영화 <미나리>를 만들며 한국 이민자에 대해 설명하는 영화가 아니라, 그냥 그들의 삶을 보여줄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나는 영화속 모니카를 보며 미국에 처음 왔던 6년 전의 나를 떠올렸다. 미국에 유학을 왔다가 이민 2세와 결혼한 내 친구는 모니카와 제이콥을 보며 시부모님을 떠올렸다고 했다. 이들 부부처럼 80년대에 이민을 온 분들은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영화를 보며 부모 세대는 자신의 초기 이민사를 떠올리며 울컥하고, 2세대 이민자들은 차마 말로 할 수 없었던, 엄마 아빠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영화 덕분에 이집 저 집 미나리 심기가 유행이 되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서로 뿌리를 나누며 미나리 밭을 가꾸는 붐이 일기도 했다고 한다. 조지아 주에서 인디애나 주로 이민간 미나리는 영하 4도의 추위에도 연초록 잎을 피워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곳곳에서 뿌리를 내리며 원더풀 미나리가 되어, 더 많은 원더풀 미나리로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주말 아카데미 시상식을 앞두고 한국과 미국 양국에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핸드폰과 TV앞에서 수상 소식을 간절히 기다렸다. 자신의 영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감동했고, 재치있는 그녀의 소감에 웃었고, 아들들을 향해 엄마가 열심히 일해서 받은거라며 트로피를 들었을 때는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다른 상을 수상했을 때 했던 인터뷰들을 떠올려봤을 때, 지난달 인터뷰와 오스카 상 인터뷰 사이에 큰 도약이 느껴져서 더욱 감동이었다. 윤여정은 나의 인생목표 중 하나인 "곱게 늙기 프로젝트"의 롤모델이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사람을 보고 '노바디'가 되기를 스스로 선택한 용기가 부럽고, 직업인으로서의 배우의 모습을 50년 째 유지하고 있는 그녀가 정말 존경스럽다. 


한 인터뷰에서 윤여정은 오스카 상을 받았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며 시상식 후 집으로 돌아가 다시 일을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수상 소식에 너무 가슴이 벅찬 한 주였지만, 우리는 다시 또 일상으로 돌아가, 각자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지난 주, 클럽하우스 멤버가 쓴 글을 오마이뉴스에 송고하셨다고 해서 그 글 진행상황을 보러 간만에 오마이뉴스 홈페이지에 로그인을 해보았다. 쪽지가 하나 와 있었다. 지난번 실린 영화 <미나리> 평을 보았다며, 배우 윤여정님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보도가 이어지는데, 이와 관련해서 미국 현지 반응, 지인들 반응, 수상 이후 달라진 인지도 같은걸 정리해서 기사로 한 편 써달라는 거였다. 


글쓰기모임에서 썼던 영화평이 아까워 오마이뉴스에 송고해보았을 뿐인데, 그 글이 새로운 글을 쓰는 계기가 되다니, 신기했다. 문제는 현지의 생생한 반응을 확인할 방도가 없다는 거였다. 재택 근무를 시작한 지 1년이 넘었고, 그나마 다니던 대학내 센터도 작년 연말을 기점으로 그만두었기 때문에 오며가며 만날 사람도 없었다. 그렇다고 새로 이사온 동네에서, 그냥 얼굴만 본 사이인 주변 사람들에게 영화 <미나리>를 보셨나요 라고 물을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히 정지우 작가가 내 첫 영화평을 본인 페북에 공유했을 때 페친이 약 100명정도 늘었고, 그중 상당수가 미국에 살고 있는 분들이었기에 페북에 도움을 요청했다. 고맙게도 조지아주에 살고 계신 분이 본인의 이야기와 다른 주에 살고 계신 분의 미나리 감상평을 공유해주셨다. 본인의 미나리 감상평을 정리해서 따로 메시지로 보내주신 분도 계셨다. 그동안 나는 윤여정 님의 인터뷰를 계속 찾아봤다. 보다보니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예술'하는 사람들의 '허세'끼, '미친 척'하며 끼치는 민폐를 좋아하지 않는 터라 생계형 배우를 표방하는 그녀의 연기철학이 좋았다. 한 분야에서 오래 버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지나보니 다 사람이더라'라는 말도, 너무 솔직한 자신을 걱정하는, 자아간 충돌을 보여주는 인터뷰도 좋았다. 그렇게 하나하나 모은 글감을 글로 옮겨냈다. 완성하고나니 너무 늦었나? 싶었다. 그래서 제목에 아예 '오스카 시상식 일주일차'라고 대놓고 써버렸다. 글쓰기 러닝메이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역시 같이 배운 가락이 있는 분들이라 포인트를 잘 짚어주셨다. 그렇게 금요일 밤에 급히 기사를 송고하고 잠들었다.


일어나니 기사가 검토 완료 후 게재되어 있었다. 세 시간 만에 게재라니, 고마웠는데, 살짝 미안했다. 한국은 노동절인 토요일인데... 


두번째 실린 오마이뉴스 기사.

http://omn.kr/1t2cf

오마이뉴스 '스타' 페이지 가장 첫 배너 기사로 채택되었다. 히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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