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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May 28. 2021

맞고 틀린 문제

Openness를 실천하는 방법


사람마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핵심 가치가 있는 것 같다. 나는 다양성과 서로 다름의 존중을 중시한다. 


필리핀에서 한국어를 가르칠 때의 일이다. 단어 받아쓰기를 한 적이 있다. 채점을 한 후 돌려주었다. 우등생 그룹에 속하던 한 가이드가 시험지를 들고 와서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 왜 나 0점이에요?" 살펴보니 0점이 아니라 100점이었다. 다 맞은 거라고, 잘했다고 하니 표정이 알쏭달쏭하게 바뀌었다. 알고 보니 나는 한국사람처럼 맞은 문제엔 동그라미, 틀린 건 체크 표시를 했는데,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필리핀에서는 맞은 문제를 채점할 때는 체크, 틀린 것, 혹은 다시 봐야 할 부분에 동그라미를 한다는 것이었다. 


옳고 그름을 표시하는 방법 자체가 나라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크나큰 충격이었다. 그 뒤로는 내가 느낀 이질감을 '이상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으로 받아들이려고 애썼다. 이러한 태도는 국제업무를 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고, 외국 생활을 시작하고서는 꼭 필요한 삶의 태도가 되었다.


간혹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사람들을 본다. 확고한 신념을 가지는 까지는 좋다. 그러나 자신의 신념이 절대적인 진리라고 믿고, 그 믿음에 반하는 다른 이의 사고와 행동을 고쳐야 할 것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소위 팩트를 제시하며 논쟁을 해보기도 했던 것 같은데, 나이가 들면서 점차 그런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차 슬그머니 피하는 방법을 익히게 되었다. 그렇게 떨어져서 보게 되면 그 사람을 통해 나의 자의식을 점검하게 된다. 


화제가 되었던 <완벽한 아이>를 뒤늦게 읽었다. 유사종교에 기반해 비뚤어진 신념으로 아이를 '초인'으로 키우고자 했던 아버지는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완벽하게 키우기 위해 아이의 어머니가 될 사람을 골라서 기숙학교와 대학 교육을 시킨다. 주인공 모드는 태어나서 집 밖을 나가 본 적이 손에 꼽는다. 의지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해야 한다며 쥐가 나오는 지하실에서 '죽음에 대한 명상'을 하도록 하고,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서도 안되며, 생일도 축제도 기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생일이면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어야 했다. 좋은 기운을 전해준다며 아버지가 씻고 난 물에 목욕을 하는 장면에서는 소름이 끼쳤다. 주인공의 삶을 들여다보며 가슴이 죄어오는 듯했다.


이렇게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자신의 신념을 다른 이에게 강요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아직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확실한 방법을 습득하지는 못했지만, 강요된 신념으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재단하거나 나를 '고쳐야 할' 부분이 있는 사람 취급하는 데까지 이르지는 못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인종문제, 젠더 문제, 사회경제적 지위 등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불평등 문제가 흑백 논리의 싸움으로 번지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조롱하고 경멸하는 것은 정말로 참기 어렵다. 누구나 자신이 믿는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한다. 


신념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과정은 상당한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자신이 믿는 가치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속에서는 여러 가지 불편한 감정이 올라온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불편한 감정을 무시하는 방법으로 처리하려 한다. 불편한 감정을 무시하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따라서 비난하기만 할 일은 아니다. 만약 누군가 자신의 보호본능을 이기고 더 나아가 자신의 신념을 바꾸려는 의식적 노력을 한다고 해도 금방 성과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좌절을 맛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온다. 깨달음의 순간을 잠시 있었던 오류로 여기게 될 가능성이 높다. 끊임없이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보는 시도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더욱 의식적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아이가 수학 학습지를 풀고 내게 채점을 해달라고 가져올 때가 있다. 몇 번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나는 이제 아이에게 맞은걸 동그라미를 쳐 줄지, 아니면 체크 표시를 해 줄지 물어본다. 아직도 엄마에게는 동그라미가 맞은 거고 체크나 사선은 틀린 것으로 보인다고 얘기를 해준다. 


나의 아이도 세상을 바라볼 때 옳고 그름에 대해 조금 더 열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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