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 대신 '의도'
2021년의 상반기가 지나갔다. 한 해의 절반 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게 되는 시점이다. 자연히 남은 반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마음챙김에서는 목표와 계획 대신 의도를 설정할 것을 강조한다. 단어를 바꾸는, 그저 말장난에 불과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굳이 '의도'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가 분명히 존재한다.
목표와 계획을 세우면 실천하는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목표한 바를 다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목표 달성을 방해하는 주요인이 외부적인 상황일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만으로 계획한 것을 관철하기 어렵다. 의도를 설정할 경우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한 여지를 남기게 된다. 그래서 나의 의도와 다르게 흘러간 상황에 대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은 일에 대해 분노하고 좌절감을 느끼는 대신 이런 일이 발생했구나 하고 좀 더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된다.
계획과 목표라는 말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성공과 실패라는 개념이 실제 삶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존재하기도 한다. 목표를 뚝심 있게 계속해서 달성해내는 사람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 어느 정도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 부분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 간극을 실패로 보게 된다. 이 과정을 반복하게 되면 실패하기 싫다는 마음이 자신의 목표를 달성 가능한 수준으로 조정하게 되기도 한다. 조직문화에 익숙하신 분들은 매년 성과목표를 설정할 때 달성 가능하지만 평가자들이 의심하지 않을 만한, 내년에도, 후년에도 발전 가능성의 여지를 남겨놓는 목표를 설정하느라 머리를 싸매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계획과 목표 대신 의도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예기치 못한 성과를 이루어 내는 상황에 조금 더 접근하기 쉬워질 수도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행동이 처음 의도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기에도 조금은 더 편안해질 것이다.
의도 설정은 반드시 장기적인 관점에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가기 싫은 회의를 들어가기 전 ‘오늘은 회의 중에 후회할 말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거나, 지친 몸을 이끌고 퇴근하며 집 앞에서 현관문을 열기 전, ‘가족들에게 내 기분을 굳이 전염시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에는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되었던 대학원 수업을 들어가기 전 오늘 이 수업에서 한 번 이상 손을 들고 질문을 하거나 내 생각을 발표하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이 다짐은 작게는 책을 읽을 때 내 생각을 메모로 정리하는 데도 도움을 주었고 나아가 다른 학생들과 교수님이 그들만의 대화에 빠져 있는 걸 바라만 보다가 수업시간이 끝날 때 드는 자괴감에서 벗어나게 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
물론 얼마 후 의도와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만, ‘의도대로 되지 않고 있군.’이라는 생각이 ‘또다시 실패했어.’라는 열패감을 느끼는 과정을 생략한 채 다시 한번 의도대로 시도해 볼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워라밸이라는 말이 한참 동안 많은 이들의 고민거리가 되었던 것 같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우리가 찾고 있는 그 워라밸이라는 게 어쩌면 신기루 같은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정시에 출퇴근이 가능한 직업을 가진다고 해서 내 삶이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퇴근 이후 출근 전까지 한정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자신의 삶의 만족도를 좌우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물리적 시간을 확보한 이후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 그리고 실제로 해낸 일 사이의 간극이 적을수록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이유로 Wellness라는 단어가 들어간 많은 워크숍에서 자주 쓰이는 Wheel of wellness라는 활동이 있다. 심리학자들에 의해 계발된 이 활동은 학자에 따라 다르지만 삶을 6-8개의 축으로 나눈다. 신체적 건강, 환경적 요인, 정신(spiritual)적 충만함, 경제적 요인, 직업적 성공, 사회적 관계, 지적 만족감, 정서적 안정 등을 각각의 축으로 두고 자신의 삶을 점검하는 시간을 가진다. 여러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가장 와닿았던 건, 자신이 살고 싶은 삶과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삶을 분리해서 생각할 기회를 가졌을 때였다. 그리고 강사는 우리는 모든 축에서 10점 만점인 삶을 살기 위해 애를 쓸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의 우선순위는 인생의 각 지점에 따라 당연히 달라지는 것이고 지금 이 순간 나의 삶의 한 영역이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면 그 부분을 채울 수 있도록 살아가면 된다는 것이었다.
상당히 오랫동안 나는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왔던 것 같다. 그러나 타인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 상처를 받으며 무너지기를 반복하는 동안 내 삶의 다른 영역들을 간과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한동안 일을 쉬면서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했던 책 읽기와 글쓰기, 운동을 해보려 했던 건 언젠가 이 시간들이 그리워질 때를 대비해서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은 반년 동안 내 삶의 어떤 영역을 어떤 의도들로 채워야 할지 잠시 숨을 고르며 살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