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명상, 함께하는 명상
일주일에 한 번, 온라인으로 그룹 명상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엔 단순하고 현실적인 목적으로 시작했다. 명상 지도자 과정에서 내가 만든 그룹을 대상으로 명상을 진행하고 그 경험에서 얻은 것을 서술하는 것이 필수 요소이기 때문이었다. 유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룹, 그리고 아이의 학교 선생님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참여자들의 표정이 너무 밝았다. 몇 회인가 더 연장 요청을 받기도 해서 뿌듯했다.
이후 지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마음챙김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생각보다 명상을 시도해봤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은 내가 마음챙김 명상을 시작했을 때 겪었던 일과 비슷했고, 마음챙김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지켜봤던 여러 가지 상황과 맞닿아있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주도하는 그룹을 개설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작년 말부터 시작했으니 현재까지 약 6개월째 진행 중이다. 한국에 다녀오는 동안 비행기를 탄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매주 내가 있는 그 시간, 그 자리에서 누군가를 만나 함께 명상을 했다. 누군가는 한국에서, 또 누군가는 미국, 캐나다의 어느 도시에서, 그리고 유럽 어디 즈음에서 함께 하는 명상을 위해 모인 이들을 매주 온라인에서 만나는 것은 내게 커다란 기쁨이었다. 자가격리를 하고 있던 때에도, 집 계약을 마치고 열쇠를 받아 새 집에 처음 들어온 그날에도, 나는 그룹 명상을 위해 미팅 창을 열어놓았다.
처음엔 많이 서툴렀던 것 같다. 지도자 과정에서 공부했던, 수 없이 연습했던 스크립트를 읽는데도 왜 그렇게 땀이 나던지, 혹시라도 나의 토종 영어 발음이 명상을 방해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명상이 끝난 후 피드백을 받았는데, 잡음이 많이 들려 집중할 수 없다고 해서 유선 이어셋을 새로 구입하기도 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 명상을 하면서 소감을 나누는 게 어색할 것 같아 낯간지러운 ice breaking 활동을 해보기도 했다. 미팅 창을 열어놓았는데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날도 있었다. 괜히 지난주의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불필요한 말을 했나? 너무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컸나? 하며 망상과 자책의 역으로 달려가고 있던 내 생각 기차를 발견하고 ‘나 혼자라도 하지 뭐’라는 마음으로 ‘나 홀로 그룹 명상’을 한 적도 있다.
반년쯤 지나니 어느 정도 그룹 운영이 안정된 것 같다. 나만의 언어로 명상을 지도해주기를 원하는 그룹원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이제는 한국어로 명상을 진행한다. 그날그날 모인 모임원들이 어떻게 한 주를 살았는지를 잠시 들어보고, 약 15분에서 20분 간 명상을 하고, 소감을 나누고, 마음 챙김에 도움이 되는 말이나, 책이나 자료에서 얻은 깨달음의 순간들에 대해 잠시 나누고, 다음 한 주를 어떻게 살지 함께 생각해보며 헤어진다. 어떤 명상을 함께할지는 매주 그룹원들의 지난 한 주를 들어보고 결정하게 되는데, 주로 호흡 명상(Breathing Meditation), 신체 탐색 명상(Body scan Meditation), 그리고 자비명상(Compassion Meditation) 중 하나를 택하게 된다. 명상을 처음으로 시도해 보시는 분들이 많은 경우엔 호흡명상을, 명상을 시도해봤지만, 집중하기가 어려웠다는 분들이 많은 날엔 신체 탐색 명상을, 삶의 굴곡을 겪고 자존감이 땅에 떨어졌다고 느끼거나, 만나는 모든 인간에 대한 회의가 드는 날에는 자비명상을 함께한다.
명상이 내 삶의 일부가 된 후, 나는 더 이상 취미가 ‘숨쉬기 운동’이라는 농담을 하지 않는다. 숨을 쉬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호흡명상을 처음 시도하고 나서 목과 어깨에 긴장도가 높아지거나 갈비뼈에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존재한다. 한 그룹원은 이 현상을 지나치게 열정적으로 숨을 쉬려 하는 자기 자신의 발견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특별히 의식하지 않을 경우 우리의 호흡은 들숨보다 날숨이 짧기 마련이다. 들숨과 날숨의 길이를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들숨과 날숨 사이에 약간의 휴지기간을 주는 것 역시도 처음에는 몸에 상당한 긴장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들이마시는 숨이 내 몸의 어느 부분을 채우는지에 따라 호흡법이 달라지는데, 들숨으로 배를 채우는 복식호흡의 경우 다른 호흡에 비해 몸과 마음의 이완상태로 들어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요가나 필라테스 등 정적인 운동을 할 때, 혹은 각성이 필요할 때는 갈비뼈를 좌우로 열고 닫는 흉곽 호흡이 적당하다. 이외에 마음 챙김 명상에서 활용되는 호흡법으로는 가슴호흡이 있다. 앉아서 명상을 할 경우에는 어깨와 몸통이 정지된 상태에서 숨을 쉬면 가슴이 앞으로 내밀어지듯 호흡을 하는 것인데, 다른 두 호흡에 비해 스스로 인지하기가 어려운 관계로 누워서 시도하면 들숨과 날숨에서 느껴지는 신체의 차이에 대해 조금 더 잘 느낄 수 있다.
내가 처음 명상을 접했을 때 가장 깊이 빠져들었던 것이 바로 신체 탐색 명상이었다. 나의 의식이 내 몸 구석구석을 살펴보는듯한 이 명상을 하는 동안에는, 마치 엄마가 아이의 몸을 어루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명상을 하면서 ‘잡생각의 공격’을 가장 적게 받는 명상이기도 하기에 명상을 할 때 집중하기 어려워 명상을 포기했다는 분들께 자주 권하기도 한다. 신체 탐색 명상을 하다 보면 다른 명상에 비해 신체적 감각이 예민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어떤 그룹원은 의식이 옮겨가는 신체 부위가 차가워지는 경험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의 경우에는 만성적인 통증이나, 피로감이 구체성을 얻게 되는 경험을 했다. 쉽게 말하면, ‘몸이 뻐근하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 신체 탐색 명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어느 부위에 불편감이 있는지 천천히 살펴보는 것이다. 만약 불편한 부위가 어깨라면, 양 어깨 사이의 통증에 차이가 있는지, 통증이 지속된다는 나의 느낌이 그저 생각에 불과한지, 아니면 정말로 통증이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되는 건지를 알아차릴 수 있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편두통이나, 기타 만성 통증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신체 탐색 명상을 실시할 경우 자신의 통증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두 시간 동안 머리가 아파서 꼼짝을 못 했다고 호소하는 환자에게 약 10분간 신체 탐색 명상을 하라고 하면, 통증의 정도나 주기, 정확한 부위나, 통증의 종류를 조금 더 정확하게 알아차릴 수 있어 환자 본인에게도, 의사에게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일명 ‘프로자책러’이자 밤샘 이불킥이 특기인 나는 자비명상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다. 일단 자비명상에서 나오는 ‘좋은 말들’이 와닿지 않았다. 명상 인도자에 따라, 주어진 시간에 따라 순서 및 대상에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자비명상은 일반적으로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으로 시작해 따뜻한 마음을 자신에게 전하고,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소위 ‘중립적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에게 옮겨갔다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으로 확장된다. 여기서 더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인류, 때로는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대한 자비를 베푸는 단계에 이르기도 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나에 대한 자비로움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낯간지러움을 극복했다고 느꼈다. 문제는 내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에 거대한 파도가 몰려와서 그때까지 고요하다고 믿었던 마음이 이리저리 요동치는 것이었다. 명상을 하는 동안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그 사람과의 대화 장면, 내 마음을 후벼 팠던 아프고 날카로운 말이 있었던 그 장면으로 나를 데려가면, 나는 당시 내뱉지 못했던 마음속 말들을 생각하며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분노가 치솟았다. 처음 명상을 시도할 때는,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명상의 목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늘 그 단계에 이르면 명상을 하는 것을 중지했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는 것을 포기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자비명상을 피해 다녔다. 진행하거나 참여하는 프로그램에서 자비명상이 포함되어 있으면, 혼자서 인도자의 가이드를 무시하고 호흡명상이나 신체 탐색 명상을 하기도 했다. 명상 앱에서도 자비(Compassion)나 사랑, 친절 등의 키워드가 있는 명상은 시도해보지 않았다. 배가 고파 식당을 찾았는데 접시 위에 사탕과 초콜릿을 잔뜩 차려놓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거부감이 들었다. 나는 밥이 필요해서 왔노라며 식당 문을 박차고 나가 나의 단골집으로 돌아가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런데 명상지도자 과정을 수강하던 도중 마음속에 갖고 있던 자비명상에 대한 이런 나의 생각을 나눌 기회가 있었다. 내가 자비명상을 피해 다니는 이유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자 강사는 내게, 명상의 목표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질문에 무슨 의도가 있는지 잘 모르겠어서 대답을 못하고 우물거리는 내게 강사는 말했다. 명상은 행복하고 평온한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흔들리고, 요동치는 내 마음의 상태를 관찰할 수 있는 것이 우리가 시간을 들여 명상을 수련하는 진짜 이유라고 말이다. 마음이 불편하면, 불편한 마음 그대로를 관찰하며 이러한 감정에 이르게 된 패턴이 있는지 살펴보고, 내가 놓쳤을법한 시나리오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우리가 명상을 하는 ‘진짜’ 이유라고 했다. 그 과정을 통해 내가 미워한다고 느꼈던, 혹은 나를 미워한다고 느꼈던 누군가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 우리가 자비명상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자비명상이 새롭게 보였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자비명상을 적극적으로 삶에 가져오기에는 부족했다. 자비명상에 대한 나의 생각에 좀 더 큰 균열을 낸 것은 어느 날 참여한 종일 마음수련일에서 만난 한 사람이었다. 자비명상을 실시한 후 참여자들끼리 짝을 이루어 명상에 대한 소감을 나누었다. 나는 자비명상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싫어하지 않는 정도’에 머물러있다고, 내 평소의 레퍼토리를 늘어놓았다. 내 파트너의 대답은 조금 놀라웠다. 자신 역시 자비명상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으로서 전남편을 떠올렸다는 것이다. 이혼 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그 사람을 한 인간으로서 바라보고 그의 삶에 안녕을 빌어주기로 결심했다는 그녀의 얼굴은 너무나 밝았다. 그동안 쌓아뒀던 마음의 묵은 먼지를 쓸어낸 듯한 개운한 표정을 바라보며 나는 자비명상에 대해 내가 그동안 가지고 있던 선입견을 좀 더 적극적으로 깨보기로 했다.
지난주 모임에서 오랜만에 자비명상을 시도해보았다. 그룹원들의 소감은 나를 놀라게 했다. 자신을 아끼는 사람을 떠올릴 때, 몰입을 돕기 위해 나는 그 사람과 나란히 마주 앉아 있는 장면을 상상해보라고 하기도 한다. 그룹원들이 그 순간, ‘너무 많은 사람 중에 누구를 떠올려야 하지?’ 하는 고민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괜히 웃음이 났다. 한동안 소원했던 친구를 떠올리며, 한 시절 좋았던 관계를 회상한 멤버도 있었다. 나를 더욱 놀라게 했던 건, 꾸준히 명상 그룹에 참여했던 분과 자비명상을 처음 시도했던 분 모두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을 언뜻 떠올리는 것이 어려웠다는 고백이었다. 6개월째 나와 함께 명상을 하는 그룹원은 자비명상을 가끔씩 실천하면서 있었던 일과, 순간의 감정과, 지금의 나를 분리시키는 연습을 하다 보니, 예전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굴 먼저 떠올려야 할지 고민했는데, 막상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처음 자비명상을 시도했던 분은 ‘마음을 불편하게 한 사람’이라고 한 순간 떠올랐던 사람이 있었는데, 명상이 진행되는 동안,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있었던 일이 어쩌면 별게 아닐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마음이 불편했던 일이 발생했던 것은 맞지만, 그 일을 있는 그대로 살펴보면서, 당시의 감정에 빠져들기보다는, 살짝 거리를 둔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감정이 누구에게나 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한 한 번 경험했다고 해서 매번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함께하는 명상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그것을 서로 나눔으로써 자신과 다른 이의 마음에 깨달음의 씨앗을 뿌리는 경험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