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지지받고 있다고 느낄 때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결심을 한 듯 말한다. “이제 바나나 우유 안싸갈래.” 4학년이 되면서 간식을 스스로 챙겨다니기 시작했기에 바나나 우유를 싸간 줄도 몰랐다.
이유를 물으니 반에서 어떤 아이가 바나나우유가 역겨운 맛이라며 그런걸 어떻게 먹느냐고 했다고 말한다. 한국 명절을 미국 학교에서 배운다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문화감수성을 가진 건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이럴 때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아이에게 그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지 물었다. 아이는 그 말을 듣고 “오 그래? 근데 너 이거 안먹어 봤는데 어떻게 알아? 정말 그렇게 생각해?”라고 진지한 태도로 물은 후 맛있게 먹었다고 했다. 본인의 ‘진지모드’를 재연하는 아이를 보고 웃음이 나오다가 슬퍼졌다. 이제 우리 아이에게도 현실이라는 것이 다가오는거구나 싶어서다.
일단 아이의 대응에 대해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먹는 음식에 대해 부정적인 코멘트를 하는 건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는 이 일을 선생님이 알고 있는지를 물었다. 엄마-선생님의 핫라인을 가동시켜야 할 일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다. 선생님이 그 일을 인지한 것 같고, 그 학생에서 그렇게 말하면 안된다고 했다는 아이의 말을 들으며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대개 이런 상황에서의 교사의 대응이 학생들에게 그대로 모델링학습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교사에 의한 2차 트라우마가 일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슬픈 현실을 조금 알려주었다. 앞으로 자라면서 오늘보다 심한 말과 행동을 경험할 일이 있울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오늘 한 것처럼 성숙하게 대처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아빠에게 말해줘서 고맙다고, 엄마아빠가 도울 만한 일일수도 있으니 꼭 알려달라고 덧붙였다.
아이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침 조회시간에 우리 반 아이들을 좋아하는 이유룰 돌아가며 발표할 때 “나는 내가 먹는 음식에 대해 nasty comment를 하지않아서 우리반 아이들을 좋아해요”하고 말할거라는 거다.
아이가 마음먹은 대로 그 말을 교실에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불쾌한 상황에서 사람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경우 중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공포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게 없다고 생각되면 겁에 질려 평소라면 하지 않을 생각과 행동을 하게된다. 그 과정에서 곧 후회할 만한 일을 저지르게 되기 쉬운 것이다. 불쾌한 상황에 닥쳤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미리 생각해두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생각한대로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극한공포에 빠져 나의 눈 앞을 가리는 일은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를 여러번 칭찬해주었다. 아이는 신이나서 그 친구가 선생님의 지적을 받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도 얘기해주었다. “별거 아닌데 뭐, 그냥 넘어가면 되지.”하며 꿍얼댔다고 하는 말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 아이는 자기가 한 말이 잘못된 거라는걸 이미 알고 있는거라고, 본인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그런식으로 말하는 거라고, 그정도면 되었다고 말했다.
마음챙김을 적극적으로 삶에서 실천해야할 이유를 하나 더 찾은 느낌이다. 어떤 이유로 아이가 불쾌할 수 있는 상황에서 적절한 대응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모범적으로 마음챙김을 실천하는 엄마라고 보기도 어렵기에 자신있게 나를 보고 배웠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만, 마음챙김을 배운 엄마로서 아이의 대응에 큰 용기가 필요했다는 것은 분명히 안다. 이런 행동이 보일 때마다 조금은 오버해서 칭찬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내 아이의 마음이 가는 길을 닦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되새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