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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Jul 10. 2021

슬픔이를 가두지 말 것!

영화 <인사이드 아웃>을 다시 보고

아이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가 <인사이드 아웃>이었던 것 같다. 다섯 살 아이가 깜깜한 영화관 안에서 두 시간을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중간에 나가자고 보채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안고 들어섰던 것 같다.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아이는 깊이 빠져들었고 영화가 끝난 후 나오면서 기쁨이와 슬픔이에 대한 얘기를 종알거렸다. 그 이후 많은 영화를 봤지만 <인사이드 아웃>은 아이에게 인생영화로 남은 것 같다. 한번 본 영화를 다시 보는 일은 내게 드문 일인데 이 영화는 볼 때마다 새로운 점을 발견하게 해주는 영화여서 내 인생영화 리스트에도 추가되었다. 


몇 주 전 아이가 <인사이드 아웃> 얘기를 해서 오래간만에 둘이 티브이 앞에 앉았다. 그날 영화를 보다가 내 마음은 기쁨이가 마음 본부에 원을 그리고 슬픔이에게 이 선 밖으로 나오지 말라고 하는데서 멈췄다. 당연하게도 슬픔이는 이 원 밖으로 나왔고 기쁨이가 다른 일을 해결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는 사이 기억 구슬을 만지고 만다. 주인공 라일리는 슬픔에 빠지게 되고, 기쁨이와 슬픔이는 장기 기억소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슬픔을 비롯한 부정적인 감정을 우리는 되도록 피하려 한다.  영화 속 기쁨이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의 방 안에서 선을 그어놓고 그 자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고 명령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명령은 지킬 수 없을 뿐 아니라 반발심을 불러일으켜 영화에서처럼 마음 본부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라일리의 마음 본부에 있는 주인공들을 떠올려보자. 기쁨, 슬픔, 소심, 버럭, 까칠, 다섯 중 기쁨을 제외한 나머지 감정들은 피하고 싶은 감정이지만, 우리 마음속에서 없애거나 몰아낼 수 있는 감정은 아니라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화 속에서는 이 모든 감정들이 팀을 이루어 마음 본부를 운영하는 것으로 그리고 있다. 기쁨이와 슬픔이가 장기기억 저장소로 여행을 떠난 동안, 소심, 버럭, 까칠이는 마음 본부를 지키게 된다. 라일리의 마음 본부는 기쁨이가 리더였기에 기쁨이 없이 셋이서 운영하면서 때론 서툰 결정을 내리기도 하면서 영화를 이끌어나간다.


출처:pexel

마음챙김 명상을 통해 마음을 들여다보는데 익숙해지면서 마주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내 마음을 가득 채운 부정적인 감정을 확인하는 일이다. 그동안 우리는 부정적인 감정은 마음에서 몰아내야 할 것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인간의 뇌는 부정적인 감정을 감지하는 센서가 긍정적인 감정을 감지하는 것보다 더 발달해있다. 부정적인 감정은 눈에 쉽게 띄고, 뚜렷한 신체 반응을 보이며, 강렬한 정도와 빠른 속도로 마음을 채우며 오랫동안 지속된다. 반대로 긍정적인 감정은 눈에 잘 띄지 않고, 신체 반응이 뚜렷하지 않으며 바람 속 촛불처럼 잠시 켜졌다가 이내 사라지고 만다. 


마음챙김과 관련된 활동에서 긍정적인 감정에 주목하라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것은 바로 긍정적 감정의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때론 이런 메시지들이 마음챙김을 통해 긍정적 감정으로 내 마음을 꽉 채우고 긍정적 감정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을 앞으로의 내 삶의 목표로 삼으라는 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안타깝다. 일단, 부정적 감정을 깨끗이 치워낸 후 긍정적인 감정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행복이나 기쁨 같은 긍정적인 감정으로 마음이 가득한 듯한 느낌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 느낌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것도 이루기 어려운 목표이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라는 질문이 들리는 듯하다. 다시 라일리의 마음 본부로 돌아가보자.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슬픔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였는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슬픔이의 얘기를 들어보고 싶다. 슬픔이를 가둘 원을 그리기 전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슬픔이가 느끼는 그 감정을 알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일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캐치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감정을 직면하고 살펴보는 것은 쉽지 않다. 쉽지 않기에 포기하게 되기 마련이다. 


내 마음속에서 살고 있는 기쁨이, 슬픔이, 소심이, 버럭이, 까칠이를 모두 소중하게 여기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들 모두는 없어서는 안 될 배역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우리 삶의 장면마다 중심이 될 수 있는 배역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고, 이들의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려는 노력을 한다면 마음 본부 운영이 조금 더 쉬워지지 않을까?


아이의 공부를 봐주던 중에 아이가 짜증을 내며 몸을 뒤툴었다. 바르게 앉아 글씨를 또박또박 쓰라고 했더니 내게 화를 내길래 '착한 OO이는 어디갔냐'고 물으니 휴가를 갔단다. 얼른 가서 불러오라고 하니 '착한 엄마'가 부르면 올 것 같다고, 지금 처럼 미운 엄마가 있는 집에는 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말을 하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결국 나의 '착한 아들'은 그날 밤 집에 들아오지 않았지만 며칠 후 갑작스레 돌아왔다. 장을 보고 돌아와 반찬을 만들고, 저녁 식탁을 준비중인 나에게 다가와 밥 한 숟가락을 내민다. 그리고는 내게 귓속말로 "휴가갔던 착한 OO이가 돌아왔다"고 말했다. 나쁜 OO이는 판사 OO이가 감옥에 가둬서 우리 집에 못 온다나, 마음 속에 존재하는 여러명의 자신을 잘 조절하려는 마음을 가진 아이가 자랑스러워 꼭 안아주었다. 나쁜 OO이가 또 찾아오면, 판사 OO이를 불러야겠다. 착한 OO이를 지켜달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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