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에너지를 아끼는 방법
두번째 백신을 맞았다. 아이는 우리가 백신 예약을 했다고 말하자 마음 속 두려움을 표현했다. 이웃에 사는 친구들 중에 엄마와 아빠가 백신을 맞고는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는 것이다. 엄마 아빠도 친구 부모님처럼 백신때문에 무서워지면 어떻게 해야하냐고 말했다.
두려움은 인간이 느끼는 감정 중에서 비이성적 행동을 야기시키는 대표적인 감정이라 말할 수 있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사고 능력이 마비된다. 두려운 생각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법한 일에 대한 생각을 계속이어서 불러일으킨다. 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마음 속을 돌아다니다가 결국 커다란 눈뭉치처럼 커져서 다른 감정이나 생각을 모두 밀어낸다.
마음챙김이 삶에 들어온 후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은 내 마음 속 두려움을 인정하고, 이 두려운 마음 대신 내 마음을 채워볼 수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이었다. 백신을 맞으러 가기 전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아빠가 백신을 맞는동안 약국 안에 혼자 있어야하는데 그 때 걱정되는 마음을 달랠 수 있게 좋아하는 책을 챙겨보면 어떻겠느냐고 말이다. 첫번째 백신을 맞던 날, 아이는 다섯 권의 책을 챙겼다. 약 25분 거리에 있는 약국을 향해 가는 차 안에서 아이는 계속 마음 속 걱정을 우리에게 풀어놓았다.
나와 남편은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랑 아빠도 백신 맞는 게 처음이라 네가 말한 그런 무서운 일이 일어날 지 아닐지 몰라, 그런데 오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을 하든, 그렇지 않든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 주사 놔주는 사람들이 물을 많이 마시라고 해서 엄마아빠는 오늘 물을 엄청 많이 마셨어. 지금도 물병을 들고 가고 있지? 엄마아빠고 최대한 노력하고 있으니 가는 동안이라도 다른 생각을 좀 해보면 어떨까? 아니면 엄마아빠에게 노래를 불러주는 건 어때? 아이의 노래에는 신이 빠져있었다.
첫번째 백신을 맞은 후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와 남편은 일부러 더 쌩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기분이 너무 좋아서 이상할 지경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3주가 흘러 오늘이 되었다. 아이는 책을 두 권 챙겼다. 아이의 걱정이 책 세 권만큼 줄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다행이었다. 아이는 두번째 백신을 맞은 후에는 부작용이 더 크다는 걸 들어서 알고 있었고, 익숙하지만 새로운 두려움이 아이의 마음속에 자리잡았음이 분명해보였다.
아이에게 지난번의 두려움이 현실로 나타나지 않았음을 상기시켜주었다. 엄마와 아빠는 오늘도 물을 많이 마셨다고, 오늘도 저번처럼 노력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첫번째 백신을 맞았을 때는 팔에 근육통이 바로 왔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았다. 애써 쌩쌩함을 가장할 필요가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이는 안심하며 이웃집에 놀러갔다. 다행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왜 할일은 미루면서 두려운 생각은 미루지 않는 걸까? 두려움을 없애는 좋은 방법으로 추천하는 것은 뭐든 해보는 것이다. 불면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한 정신과의사는 수면제를 처방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수면제를 잘 보이는 곳에 두고 주무세요. 잠이 도저히 안 오면 언제든지 약을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질 수도 있으니까요.”
마음이 두려움으로 가득차게되면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조차 잊게되는 것 같다. 해야 할 일을 놓치고 나면 두려움은 더욱 커지기만 한다.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내 자신이 싫어질 뿐이다. 생각해보면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하느라 우리는 일어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시간과 에너지를 너무 많이 사용해왔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할 일 대신 두려움을 미뤄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