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없어도 괜찮을 것 같은 날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것'을 다시 생각하다.
아침에 일어나 눈을 비비며 네스프레소 커피머신의 버튼을 누르는 것이 내게는 습관이었다. 어쩌다 늦잠을 자서, 캡슐이 떨어져서, 설거지해둔 컵이 없어서 커피를 마실 수 없는 날이 되면 마음 한 구석에서 짜증이 솟구쳤다. 어쩌다 커피 한 잔도 못 마시는 신세가 되었냐며 난데없이 신세타령을 하기도 했다. 커피 한 잔 못 마시고 바로 업무에 돌입한 날은 어쩐지 실수가 잦은 것 같았고, 그럴 때면 이건 모두 커피를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의 나는 뭔가 초조함에 가득 차 있었다. 피곤함의 농도가 짙어질수록 캡슐의 개수는 늘어갔지만 그 개수만큼의 평온함이 내게 찾아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날 일어나자마자 아침 명상을 하고, 8분짜리 스트레칭을 하고 샤워를 했다. 서둘러 옷을 입고 부엌에 들어가 습관처럼 커피 캡슐을 꺼내다가 잠시 멈췄다. 그날은 왠지 유난히 상쾌하게 느껴졌다. 몸과 머리가 이미 맑아진 느낌이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커피가 오늘 나에게 꼭 필요한가?”
이렇게 뛰어오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이었다. (출처:pexel)커피가 '필요'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날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기로 결정하고는 하루 동안 스스로를 시험해보기로 했다.
모닝커피 없는 하루의 나는 어떨까?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나의 몸과 마음을 관찰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혹시라도 커피가 꼭 필요해질 경우에 대비해 커피 스틱을 가방에 넣었다.
출근해서 자리에 앉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이메일을 확인하고, 할 일 리스트에 있던 일, 새로 끼어들어온 일들을 처리하면서 나를 살펴봤다. 그날 퇴근할 때까지 나에게 '커피가 필요한 순간'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보낸 이메일에는 오타가 없었고, 머리가 아프지도 않았으며, 졸음이 쏟아지지도 않았다. 커피 없이도 하루를 잘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그렇다고 내가 그 이후 커피를 완전히 끊은 것은 아니다. 내가 그날 확인한 것은 나와 커피의 관계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커피가 오늘 나에게 필요한가?"라는 질문과 커피가 없어도 괜찮은 그날의 경험을 통해 아침의 커피 한잔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존재에서, 있으면 행복한 존재가 되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커피를 마시는 것이 하루를 버텨나가기 위한 생존 수단이 아니라 즐거운 의식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커피의 향을 사랑하고, 커피를 내리는 동안 심호흡을 하는 것을 즐기며, 내려진 커피의 크레마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출처:pexel누구에게나 하나쯤 어린아이의 공갈젖꼭지처럼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것이 존재할 것이다.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된 날, 한 번쯤 ‘없으면 안 될’ 존재 없이 사는 것을 시험해보면 좋겠다. 생각보다 많은 것이 ‘없어도 살만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이 깨달음의 순간이 중요한 이유는 습관적으로 내 삶을 채우고 있는 것들이 정말 필요한 것이었는지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없으면 큰 일 날 것 같은’ 것 없이 사는 하루의 경험을 통해 나는 습관처럼 들이키는 커피의 진짜 맛과 향을 다시 발견했다. 우리들에게 ‘없으면 안 되는 것’보다 ‘있어서 행복한 것’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