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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Oct 24. 2021

화는 설거지를 해주지 않는다

마음은 비난이 아니라 함께있는 느낌에 반응한다.

'마음챙김'을 시작하고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때에 따라, 상대방에게 필요한 부분을 짚어주기도 하지만, 내가 가장 자주 하는 말은 "일상에서 후회되는 일을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가사분담의 불평등을 일깨워주는 프랑스 만화가 있다. 우리 말로 <말을 하지 그랬어>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그 만화 속에서 아내는 끓어넘치는 냄비를 보고, 쌓인 빨랫감을 보고 마음의 부담감(mental load)을 느끼지만 이 부담감이 느껴지지 않는 배우자를 보고 화가 나게 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일과 공부를 병행해야했던 2018년부터 약 2년간은 내가 뭘 하고 살았지?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나라도 삐끗할 수 없기에 늘 긴장한 상태를 유지했다. 아침에 출근을 하고, 퇴근 후 수업을 듣고, 셔틀버스가 끊긴 시간에 강의실에서 나와 대학원생 기숙사로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들어섰는데 싱크대에 쌓인 설거지를 보면 화부터 났다. 


화를 낼 시간조차 없어서 그냥 말없이 설거지를 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배고프다고 보채는데 아무 그릇도 없어 설거지를 하면서 기다려 달라고 말할 때면 화가 머리끝까지 나기도 했다. 남편이 들으라는 식으로 일부러 그릇을 부술 기세로 설거지를 하기도 했고, 밀린 잠을 자고 있는 남편의 이불을 확 들추기도 했었다. 때로는 아이에게 그냥 아무거나 먹으라며 윽박지르기도 했었다. 


마음챙김에서 강조되는 개념 중 하나는 반응(reaction)대응(response)을 구분하라는 것이다. 외부의 자극이 오는대로 반사적으로 나오는 것이 반응이라고 한다면 대응은 외부에서 일어난 상황을 내 머릿속에서 파악하고,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태도나 행동을 취하는 것이다. 일상생활에서 만나는 일과 문제에 대한 대응력을 기르는 것은, 평소 내가 가지고 있는 사고나 행동의 패턴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북히 쌓인 설거지 통을 보자마자 나의 머릿속에는 '왜 이게 나한테만 보이냐, 먹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남편이 뭘 하고 있는지 살피고는 내가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될 경우 나는 '화를 내도 될 권리'를 가진다고 생각하고 사자후를 내지르고 있었다.


그러나 마음챙김을 삶에 가져온 이후 내가 깨달은 것이 있다. 나의 '화'는 실체가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화를 내는 나의 행위가 설거지를 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소리를 쳐서 상대방을 겁에 질리게 한 후 설거지를 하라고 명령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과연 그 상황에 맞는 적절한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 이후, 나는 나의 '화'를 인지한 후 소리를 지르거나, 낮은 목소리로 위협적으로 말하는 등의 '반응'을 줄이려 애썼다. 대신, '설거지가 쌓여있네? 밥 차려야 하니 같이 설거지 하자.'처럼, 설거지가 필요한 상황임을 알리고 동참하기를 요구한다던가, '지금 바빠?'라는 물음으로 상대방의 '상황'을 파악하려는 노력을 더했다.  


호통치는 사람은 가까이하기보다는 피하고 싶기 마련이다. 마음은 분노에 찬 목소리나 비난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은 나와 상대방이 함께 있음을 인지시켜주는 일이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 나의 상황을 적극적으로 알리려는 노력이 더 나은 대응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학교 기숙사에서 나온 이후 식기세척기가 있는 집에서만 살고 있기에 더이상 싱크대를 바라보며 화를 낼 일은 없어졌지만, 화가 날만한 상황에서 나는 늘 '화는 설거지를 해주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리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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