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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Apr 15. 2021

화가 나고, 때리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마음챙김으로할 수 있는 일들

아이를 재촉해 태권도장에 데려다 놓고 오늘치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담임 선생님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D's behavior라는 무서운 제목의 이메일에는 아이가 오늘 수업시간에 집중을 하지 않고 딴짓을 했으며 과제도 제출하지 않았다고 적혀있었다. 아이에게 선생님이 한 말씀이 사실인지 확인했더니 다행히 순순히 인정했다. 원래 태권도 끝나고 아이스크림을 사주려고 했는데, 오늘 있었던 일을 생각하니 그럴 수 없다고 아이에게 주지 시키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 아빠와 셋이 둘러앉아 얘기를 해 본 결과 우리는 2달 동안 아이에게 스크린타임 금지령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유튜브도, 닌텐도 게임도 없다. 아이 아빠는 아이 컴퓨터의 유해사이트 차단 앱을 다시 점검하고 재설치했다. 나는 아이가 수학, 필기체, 쓰기 연습을 마칠 때까지 옆에 앉아서 책을 마저 읽었다. 

선생님께 답장을 보냈다. 아이와 한 얘기를 전하고, 우리가 한 조치사항에 대해 말씀드렸다. 아까 얘기할 때 아이가 놓쳤던 과제는 다 했다고 했지만 혹시나 해서 아이의 구글 클래스룸 계정에 접속해 봤다. 수학 외에도 밀린 과제가 여러 개 있다. 아이를 다시 불러 밀린 과제 페이지를 보여주며 언제 할 거냐고 물었다. 아이는 지금이라고 말하고 쿵쾅대는 발소리와 함께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과제를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인생이 왜 이렇게 불공평하냐고 했다.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훈계를 하려다가 꾹 참았다. 선생님의 메일을 본 순간 얼굴이 화끈해졌지만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지도, 등짝 스매싱을 날리지도 않았다. 대신 아이에게 선생님에게서 온 메일에 대해 얘기해주고 이게 사실이냐고 물었다. 남편과 나는 서로를 탓하지도 않았다. "컴퓨터에 parent control 설치했다며!"라고 쏘아붙일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셋이 둘러앉았을 때, 우리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학교에서 이런 연락이 온 게 첫 번째가 아님을 주지 시켰다. 지난번엔 한 달 스크린 금지령으로 끝났는데, 이게 고쳐지지 않았으니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물었다. 아이가 두 달 간의 스크린 금지령을 스스로 결정했으니 우리에게 분노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이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을지 모르겠다. 모든 것은, 화를 내고, 때리고, 비난해봤자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는 걸 우리 셋 모두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아이의 선생님은 아이가 한 일을 팩트 위주로 정리한 후 자신의 조치를 알렸으며 가정에서 했으면 하는 일을 적어서 내게 메일을 보냈다.  그 이메일에 나나 아이를 탓하는 뉘앙스의 말이 있었다면, 우리 셋의 하루는 이렇게 마무리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날의 내가 자랑스러워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더니 언니가 댓글을 달았다. "대단해요." 라는 네 글자로 그동안의 노력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나는 언니에게 댓글을 달아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이런 순간, 그러니까 화가 나는 순간이 올 때마다 난데없는 싸대기를 맞았던 기억, 동네 창피해서 죽어버리고 싶다던 엄마의 말이 반복 재생되는 기분이라고, 그렇지만, 마음챙김을 배운 후 나는 그런 순간에서 내 패턴이 이끄는 선택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하려 한다. 마음챙김을 배우고, 가르치고 있다고 해서 내가 매순간 '이너 피스'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마음 속 깊이 차오르는 등짝 스매싱의 욕구를 누르고 '성숙한 부모'의 모습을 보이는 날에는 SNS에 기록을 남기곤 한다.내 마음이 이끈 다른 선택의 기록이 다른 이에게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까 싶은 마음도 있지만, 매년 해당 게시물을 올린 날이 되어 찾아오는 1년전, 2년 전의 내가 나의 마음을 다잡아주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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