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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Apr 19. 2021

머릿속 잡생각, 없앨 수 있을까?


머리만 대면 잠이 온다는 사람들이 너무 부럽다. 눈을 감고 누워서 잠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다가 버티다 버티다 못해 기절하듯 잠드는 나로서는, 쉽게 잠이 드는 건 축복이라고 느껴질 지경이다.


안타깝게도 나의 아이는 나를 닮았다. 입이 짧은 것도 걱정이긴 하지만, 이 아이를 키우며 가장 힘들었던 건 재우는 것이었다. 아이도 나처럼 버티다 못해 잠드는 것 같다. 자기 방이 생겼다고, 침대를 고르며 그렇게 좋아하더니 간혹 우리 침대로 숨듯이 기어들어오는 날이 있다.


어제 아이는 거의 완벽하게 하루를 잘 소화해냈다. 아이 아빠는 보상으로 30분간 유튜브를 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신이 나서 들어가더니 얼마 후 울듯한 얼굴로 나온다. 자주 보던 영상에서 무서운 장면이 나왔다고 한다. 아이는 나와 남편을 번갈아 오가며 징징대기 시작했다. 


처음엔 다른 생각을 해보면 어떻겠냐고 했다. 조금 있다가 돌아온 아이는 다른 생각은 금방 끝나버린다고 금세 무서운 생각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엄마도 아이였을 때 그랬냐고 묻는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오멘>의 까마귀가 덮치는 그 장면, 주인공 이름도, 내용도 거의 희미하지만 그 장면만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반복 재생된다. 나는 UFC에서 피 흘리며 싸우는 장면은 볼 수 있지만, 스릴러나 공포영화는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본다. 보고 나면 시도 때도 없이 찾아드는 그 불청객 같은 이미지의 반복 재생으로 일상이 너무 망가지기 때문이다.


마음챙김 명상을 가르칠 때 시작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하는 말이 있다. 잡생각이 드는 건 정상이고, 이런 생각을 몰아내려 하면 할수록 그 생각은 머리에 찰싹 달라붙게 된다고.


이 얘기를 조금 더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자주 드는 예가 인지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의 비유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


이 문장을 읽는 순간 여러분의 머릿속엔 코끼리가 떠올랐을 것이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아야지. 코끼리 생각하면 안 돼! 코끼리, 내 머릿속에서 나가! 하면 할수록 내 머릿속 코끼리는 더 선명해지고, 거대해져 내 머릿속을 꽉 채우게 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잡생각을 영어로는 ‘popping up thoughts’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말 그대로 생각이 비눗방울처럼 퐁! 퐁! 하고 떠오른다는 말이다. 이런 수많은 생각의 비눗방울 중 몇 개는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러면 생각기차(train of thought)가 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빙봉이 기쁨이와 슬픔이를 데리고 타려고 했던 그 기차 맞다. 이 기차는 종종 내 마음을 망상, 혹은 자책이라는 이름의 역으로 데려다준다.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너무 애써서 밀어내려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 생각을 믿을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머릿속을 이미 꽉 채워버린 그 생각은 ‘생각 안 해야지’한다고 털어지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무서운 생각에 등장하는 게 누구냐고 했다. 몸이 커다란 괴물이라고 말했다. 그 괴물이 코딱지를 파고,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려다가 설사가 되어 나오는 상상을 해보라고 말했다. 울상이 되었던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다시 떠올랐다. 그렇게 아이는 다시 자러 들어갔다.


안심하고 나만의 고요한 시간을 즐기다가 침실로 들어가는데 아이가 쪼르르 나온다. 잘 자다가 깼는데 괴물이 다시 나타났다고. 별 수 없다. 이럴 땐 아이 옆에서 자야 한다. 몇 년 만에 아이 옆 자리에 누웠다.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해서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그냥 얘기를 지어냈다. 주인공이 누구든 코딱지, 방귀만 등장하면 게임 끝이다. 내 손을 꼭 쥐고 있던 손이 스르르 풀리길래 슬며시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이는 나와 남편 사이에서 쭈그리고 자고 있었다. 다시 그놈의 괴물이 찾아왔나 보다.


노력한다고 이룰 수 없는 것도 있는 거야. 아니 노력할수록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있는 거야.라고 말해주고 싶은데, 그러면 오늘치 학습지를 안 할 것 같아 그 말은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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