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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Jul 03. 2021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관찰 자아'가하는 일

청문회장을 방불케 하는 회의실의 무거운 분위기가 나를 압도한다. 분명 내가 만든 자료에 내가 써 내려간 문장들인데, 막상 내 입을 통해 나오는 것은 엉뚱한 말이다. '앗 틀렸다'는 생각이 들자마자 목소리는 높아지고, 말은 빨라지고, 문장은 점점 꼬여만 간다.


며칠 전 명상 그룹에서 한 그룹원이 내게 털어놓은 평가회의에서의 자신의 모습이다. 긴장되는 순간, 마음과는 다른 행동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건 바로 내 속의 '관찰 자아'가 하는 일이다. 


프로이트의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 개념을 이어받은 하인즈 하르트만(Heinz Hartmann)의 자아 심리학에서는 자아를 '경험 자아(experiencing ego)'와 '관찰 자아(observing ego)'로 나누어 설명하기도 한다. 이드-자아-초자아가 마음속에서 서로 대립하는 존재였다면, 하르트만의 자아 심리학에서는 자아가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기쁨, 슬픔, 행복 등의 감정을 느끼는 것이 '경험 자아'이고 '경험 자아'를 바라보는 것이 '관찰 자아'가 하는 일이다.


소위 말하는 '생각이 많은 사람'들은 '관찰 자아'가 '경험 자아'에 비해 크게 발달해있는 경우가 많다. 무심코 뱉은 나의 말과 행동을 돌아보는 '관찰하는 나'의 눈과 귀가 너무 뛰어나게 발달한 것이 이유라면 이유겠다. 문제는 '관찰 자아'가 '경험 자아'를 짓눌러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엄하게 자란 사람이라면 이 '관찰 자아'가 내면의 목소리가 되어 '경험 자아'에게 시종일관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제대로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실수 후 따라오는 자책,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후회는 주로 '관찰 자아'가 '경험 자아'를  비판할 때 생기는 산물이다.


'관찰 자아'에게 시달렸던 사람들의 이런 마음을 읽어주는 책과 강연이 상당히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다. 마음속 깊이 숨겨둔, 그동안 감춰왔던 생각을 '관찰 자아'의 눈치 따윈 보지 말고 밖으로 꺼내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당당한 나, 용기 있는 나를 사랑하라는 말을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이 충고가 때로는 '내 멋대로 살고 싶어'라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는 사람들의 방어막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존 카밧진(Jon Kabat-Zinn)의 마음 챙김의 기본원칙 중 하나인 'Non-judgement'라는 개념 또한 많은 오해를 받는다. 마음챙김을 실천하려는 사람들은 '알아차림'의 과정에서 '판단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발견한 나의 모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마음챙김을 비판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판단하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라는 마음챙김의 가르침에는 개인의 도덕 지능을 무력화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으며 현실을 의문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행복한 로봇(happy robot)'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숨어있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마음챙김의 Non-judgement araewness의 올바른 번역어는 '비판단적 알아차림'이다. 판단이 없거나 존재하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우리가 '판단'하면서 빠지기 쉬운 '좋고 싫음', 혹은 '옳고 그름'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식하라는 말이다. 카밧진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판단'하는 자신의 모습을 비판적인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언제, 어떻게, 왜 판단을 해야 하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 안목(discernment)을 기르는 것을 강조한다.


마음챙김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게 되면서 어느 순간이 되면 '관찰 자아'가 채점한 나의 모습에 빨간 줄이 죽죽 그어진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도 한다. 안내된 명상(guided meditation)에서 자주 언급되는 '딴생각(wandering mind)'하는 나를 발견하는 과정을 명상의 실패로 간주하고 명상을 포기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나아가 자기 자신의 감정과 사고 패턴을 들여다보는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틀린'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불편해 그냥 생긴 대로 살지 뭐, 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드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찰 자아'가 해야 할 일은 따로 있다. '경험 자아'가 길을 헤매고 있는 건지, 거꾸로 가고 있는 건지, 가지 말아야 할 길로 빠져들고 만 것인지를 발견하고 내가 원래 가야 할 방향으로 슬며시 나를 돌려세워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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