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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wHereUs Jan 14. 2022

99일의 기다림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읽기 모임

오늘 <사랑의 단상> 읽기 모임은, 3년차 교수의 강의 같은 느낌이었다.

첫 날 근 4시간을 쓰고도 진도를 확 확 빼지 못한 것이 모두 아쉬움으로 남았는지 챕터 별 강의(?) 후에 질문을 받는데 질문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두 시간이 넘어가자 "우린 틀렸어요."라는 말을 꺼내며, 이왕 이렇게 된거 천천히 가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서로 눈치 보고 접어뒀던 질문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사랑의 단상> 기다림 편에 나온, 여러 텍스트에 단골로 인용된다는 중국 기녀와 선비의 일화를 나는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며 처음 접했다.

한 기녀가 자신을 연모하는 선비에게, 자신의 창 아래에서 100일을 기다리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정말로 그 창 아래에서 앉아서 기다리던 선비는 99일째 되던 날, 깔고 앉았던 의자를 손에 들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는 이야기다.

이 강독을 좋아하는 이유는, 정말로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모임을 이끌기 때문이다.


나는, 선비가 99일째 밤에 '현타'가 와서 굳이 이 사랑을 가져야 하나? 하는 의문이 생겨 떠났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해석을 들어보니 흥미로웠다.


100일째 아침을 맞았을 때, 다시 100일을 더 기다리라고 할까 두려워서 떠났을 거란 생각이 가장 신기했던 기억이다. 그리고 요즘 우리가 빠져 있는 상상계, 상징계를 사용한 해석도 있었다. 그러니까 선비는, 꿈꾸던 사랑이 이루어질까봐, 그래서 상상계에서 쫓겨날까 두려워서, 거기 머물고 싶어 떠났을 거라는 의견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의견 모두 선비가 떠나는 행위를 '두려움'이 촉발했다고 보는 공통점이 있다. 두려움이 다가왔을 때, 사람은 예상치 못한 행동을 하게 된다. 평소에 아무렇지도 않게 잘 하던 일을 못하게 되기도 하고, 평소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감행하기도 한다.


마음챙김의 근간이 되는 티벳불교에서 '두려움 없는 마음'을 강조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일상의 마음챙김은 두려움을 몰아내는 데 목표를 두고 있지 않다. 부정적인 감정을 소거하는데 목표를 두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 두려움을 비롯해 순간순간 떠오르는 감정을 알아챈 후 그 마음의 상태를 자신이 원하는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게 활용할 수 있게 되는 것이 내가 추구하는 채워진 마음으로 살아가는 삶이다. 


선비가 떠난 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100일째 되는 날 아침을 맞으며 기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선비는 떠난 후 다른 사랑을 찾았을까, 아니면 깨달음을 얻어 학문에 정진했을까. 


이러나 저러나 '나를 사랑한다면, ***를 해줘.'라며 사랑으로 시험을 보는 상대라면 별로 가까이 하고 싶지 않다. 누군가에게 채점을 당하기에, 지금, 여기의 나의 삶이 흘러가는 시간은 너무 소중한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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