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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막히는 이유 #5

Never mind! 를 하게 되는 진짜 이유

이전 글에서 우리가 원어민 앞에서 이 대화를 해볼까 말까 망설여지는 진짜 이유를 이야기해보겠다고 했지요.





Never mind! 를 하게 되는 진짜 이유


마음속 저울


누구나 마음속에 저울 하나를 가지고 살아요. 우리가 영어를 할 때는 아주 섬세하고 재미있는 것들이 이 저울에 올라가요.


저울의 한쪽에는 이 대화를 성공했을 때 느낄 성취감 × 성공 확률 이 올라가게 되고, 그 반대쪽에는 이 대화를 실패했을 때 느낄 창피함 × 실패 확률 이 올라가지요.


Photo by Elena Mozhvilo on Unsplash


저는 영어를 잘해요. 그래서 한동안 이 저울을 느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저에게도 갑자기 이 저울을 쓰게 될 일이 있었어요.


지하철 안이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막 화내는 목소리가 들려요. 그쪽 방향을 보니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외국인이 전화에 대고 마구 화를 내고 있어요. 대충 들어보니 "너의 영어를 이해할 수 없다. 제대로 말해라. 어디로 가라는 거냐."는 식의 이야기였어요. 퇴근길 만원 지하철이었는데 외국인이 영어로 소리를 지르다가 주위를 슥 둘러보니 그 빽빽한 지하철에 반경 1.5m짜리 빈 공간이 자연스레 생겨나더라구요. 홍해의 기적 같았어요. 갑자기 그 외국인이 저를 딱 보더니 저를 향해 직진으로 걸어와요. 아마 다들 눈을 피하는데 저 혼자 눈을 안 피했나 봐요. 전화기를 주면서 그래요. "Yo, can you talk to this guy? I don't understand anything he says."


자, 퇴근길 3호선 만원 지하철 안에서 수십 명의 이목을 끈 외국인이 그 이목을 그대로 저한테 던졌어요. 다들 반짝이는 눈으로 이 사건이 어떻게 전개될까 두근두근 궁금해하고 있어요. 그 눈빛들을 보며 저도 이 대화를 성공했을 때 느낄 성취감 ×  성공 확률이 대화를 실패했을 때 느낄 창피함 × 실패 확률을 순간적으로 저울질하게 되었지요. 성공확률은 꽤 높지만 만원 지하철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이 대화를 실패했을 때 느낄 창피함도 아주 높았거든요.


전화를 받아 보니 무슨 역 몇 번 출구로 나와서 100m 직진한 후 오른쪽에 무슨 호텔이 있으니 그걸 말해달라는 거였어요. 다행히 노선표가 바로 앞에 있었고, 그 외국인에게 노선표를 손가락으로 짚어주면서 지금부터 두 정거장 후 무슨 역이 있으니 거기서 내려서 어떻게 가라는 말을 해 줄 수 있었어요. 물론 반짝이는 눈들은 저와 그 외국인의 대화를 보고 듣고 있었구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그 대화를 실패했으면 얼마나 창피했을까 싶어요.




Never mind.


이렇게 드라마틱한 상황을 누구나 겪지는 않지만, 많은 분들이 영어를 사용할 상황에서 이 저울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이 저울은 많은 경우에 "관두자"로 기울어져요. 굳이 대화를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한번 친해져 볼까 싶은 외국인에게 말을 걸어 볼까 생각만 하다가 관두게 되지요. 또는 꼭 필요한 대화를 하고 난 후에 한 마디 더 해볼까, 질문 하나 더 해볼까 하다가 또 관두게 되지요. "어..." 하다가 상대방이 눈을 반짝일 때 "Never mind."라고 어색하게 웃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이 대화를 실패했을 때 느낄 창피함 × 실패 확률을 너무 높게 잡아서 그래요.


실패 확률을 높게 잡는 건 사실 조금 슬프고 억울한 일이에요.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평가받고 틀리는 경험을 해 왔어요. 정답보다는 오답에 집중하는 공부를 해 왔기에, 틀릴까 봐 불안한 것은 당연해요. 참 재미있게도, 어떤 대화를 할 때 성공했을 때 느낄 성취감실패했을 때 느낄 창피함은 동일해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창피함성취감보다 훨씬 크죠. 실패 확률이 높다고 판단하니까 틀릴까 봐 관두고, 관두니까 또 실패 기록이 쌓여요. 내 마음속에 있는 영어 점수판은 항상 내가 지고 있다고 나와 있어요.


Image by rosie miles on https://www.wallpaperflare.com/

그런데, 이 대화를 실패했을 때 느낄 창피함도 그래야 할까요? 양반집 규수같이 반짝이는 영어 앞에서 내 모습이 초라해서 창피해 본 경험은 누구나 있겠지요. 그런데 이 창피함은 어렸을 때 경험이 대부분이에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정말 작은 실수에도 얼굴이 화끈거리잖아요. 저는 5학년 때 우리 반 반장 이름 한 글자 잘못 부른 걸로 5학년 내내 그 친구에게 말을 못 걸었었어요. 창피했거든요.


혹시, 우리가 마음속 저울에 올리는 창피함이 그렇게 부풀려져 있지는 않은가요? 어릴 때 말랑말랑한 자아가 느꼈던 창피함을 어른이 되어서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 아닐까요?


영어를 사용하는 원어민이라고 오류가 없는 완벽한 존재는 아니에요. 그들에게 꼭 완벽한 영어로 말해야 하는 것도 아니구요. 특히 한국에서 만나는 영어 원어민은 신용카드 사용이나 택시 부르기, 카톡으로 오는 광고 메시지 해석 등 사소한 도움이 많이 필요한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친구가 필요한 경우가 많고, 특히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현지인은 굉장히 반가워해요. 실제 그들과 이야기해 보면 자기는 더 이야기하고 싶고 더 친하고 싶은데 한국인들이 어려워하고 어색해하는 게 눈에 보여서 자기도 대화를 포기한다는 사람들도 많이 있어요. 상대방은 괜찮은데, 내가 생각하는 영어가 너무 대단한 거라서 그 대단함 앞에 내가 어렵고 창피해지는 걸 수도 있어요.




자, 그래서 어떻게 하라구?


내 마음속 저울을 한번 점검해 보세요. 실패 확률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창피함을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실패 확률은 학교와 학원과 교재들이 너무 부풀려 놓았어요. 이것을 현실적으로 보정하려면 나에게도 작은 승리들이 필요해요. 아주 짧은 대화라도 성공한 경험, 한 마디 더 해본 경험, 같이 웃어본 경험, 마음을 나눠본 경험을 조금씩 쌓아 가며 마음속 점수판에 내 점수를 쌓아야 해요. 그래야 그다음 대화가 더 쉬워져요. 내 성공 확률이 높아졌으니까.


그것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나의 창피함 또한 현실적인 크기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해요. 내가 창피했던 기억을 떠올려서 마주해 보세요. 어릴 때 영어 앞에서 얼굴 붉어진 기억 때문에 아직도 두려운 것은 아닌지, 과연 지금도 그게 그렇게 창피할 일인지, 내 일상에서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그렇게 어려워하고 조심해야 할 사람인지. 그 창피함이 과연 상대방 앞에서의 창피함인지, 아니면 나 스스로 나를 평가할 때의 창피함인지. 만약 그렇다면, 내가 나 스스로를 올바른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인지. 과연 그 창피함의 기준이 합리적인 것인지.


이 질문들에 올바른 답을 찾아내는 것이 영어가 쉬워지는 비결입니다. 그 어떤 단어나 표현, 문법 지식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예요. 말도 안 되게 부풀려진 실패 확률창피함을 마음속 저울에 올려 두고 이런저런 지식만 계속 쌓아가 봐야 여전히 원어민 앞에서는 말도 못 걸고 영어는 영원히 대단하고 어려워 보일 거예요.




유학생, 영어유치원이 부럽나요?


유학생들은 영어 잘해서 부럽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많을 거예요. 참 재미있는 점은, 교육의 양과 질은 대한민국을 따라갈 나라가 잘 없다는 거예요. 단순 영어공부 시간만 해도 영어상용 국가보다 우리나라가 더 많을 겁니다. 유학생들이 다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왜 일부 유학생들이 영어를 잘하는 걸까요? "관두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많이 닥치기 때문이에요. 저울에 올릴 새도 없이 대응해야 하는 상황들이 자주 일어나기에 거기서 점수판에 힘든 승리들을 하나씩 쌓다 보니 어느 순간 성공 확률이 올라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그다음 대화에도 더 편한 마음으로 임하게 되는 거죠.


영어 원어민 이성친구를 사귀는 사람들이나 영어를 아주 어릴 때 배우는 것도 그래요. 이성친구와의 대화나 어린이들의 대화에서는 성취감의 크기는 크고 창피함의 크기가 아주 작거든요. 즉 저울이 정상이라는 뜻이죠. 그러다 보니 영어가 확실히 빨리 늘어요.


이 저울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유학생과 같은 환경, 영어조기교육과 같은 환경을 스스로 만들 수 있어요. 창피함의 크기만 어른스럽게 수정해도 그 효과는 충분히 있어요. 목표는 저울질을 아예 안 하게 되는 거예요.


너무 낙관적인 얘기라구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영어울렁증을 탈출했는걸요.



하지만 작년에 국내 회사에서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하였고, 사내에서도 영어를 아주 잘하는 직원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사실 나는 이직을 할 당시에도 3번이나 보는 영어면접을 당연히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합격 후 첫 외국 출장에서도 과연 내가 영어를 잘할 수 있을까란 엄청난 의문을 품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은 내게 영어를 잘한다고 이야기한다. 가만히 돌이켜 보니 내게 있어 영어를 잘하는 기준이 없었다. 누군가 토익 만점을 받았거나 토플 100점을 넘겼다거나 이러한 척도들이 내게 있어 영어를 잘하는 기준이었던 것 같다.

여행을 위한 외국 방문이 아닌 사내 교육으로의 외국 출장에서 난 처음으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토익점수도 토플 점수도 없었지만, 점수가 있는 동료들보다 나의 이야기를 하는데 막힘이 없었고 이는 곧 의사소통의 원활함이었으며, 이를 통해 정말 많은 외국인 친구들을 사귈 수 있었고 회사에서도 나의 이야기를 하는데 막힘이 없었다. 영어를 언어로서 나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하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영어를 잘한다고 이야기했다.

김민승의 영어수업을 수강한 한 회사원의 후기, 2014년



김민승 선생님과 한 수업을 통해서 얻은 영어 공부의 결과물은 저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었습니다. 당시는 저는 경제학 석사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캐나다 ○○ 대학교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을 알자마자, 1달만에 필요한 토플 점수를 얻어 신청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하신 ○○ 대학교 교수님께서 계신 자리에서 제 논문을 영어로 유창하게 발표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 저는 ○○ 대학교에서 1년동안 교환학생으로 영어에 큰 부담 없이 공부하고 교수님들과 일하였으며 ○○ 대학교 박사과정 입학 허가를 받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김민승의 영어수업을 수강한 한 석사의 후기,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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