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멘토 모리
망치 한 대 두들겨 맞은 듯 알이 깨지던 내 인생의 첫 번째 순간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였다. 장례를 치르고
아빠가 남기고 간 흔적을 지우는 수많은 절차에 치여,
맘껏 슬퍼할 겨를도 없이 직장에서 허락한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돌아왔고 또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다.
퇴근을 하고 혼자 남겨진 매일 저녁 아빠의 부재가 조금씩 현실로 스며들었다. 오랜 투병생활을 하셨지만 영원한 이별 앞에 ‘마음의 준비’ 따윈 별 도움이 안 되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시간의 힘을 빌어 충분히 내 마음에서 그 감정을 느끼고 덜어내고 멀어지게 하는 것뿐.
그때 난생처음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던 것 같다. 내 삶에서 ‘죽음’을 가까이 받아들인 그 순간부터 당연하듯 반복하던 쳇바퀴의 속도를 줄이고 주변과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스물일곱이 되어서야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나 자신과 처음 대화를 해보았고, 당연하듯 주어진 공기, 빛, 바람, 꽃 한 송이가 주는 행복감과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무엇이 더해지지 않아도 오롯이 나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고, 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경험은 주변을 보다 따뜻하고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또, 불편함만 남는 관계들을 덜어내고 원치 않을 땐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그 모든 과정이 온전한 내 삶, 지금,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앞으로의 삶의 방향과 가치 또한 더욱 확고해졌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면 날 둘러싼 많은 고민과 문제 중에 의외로 많은 부분들을 덜어낼 수 있다. 삶과 죽음은 하나이며, 죽음을 가까이하는 순간 이미 있지만 발견하지 못했던 더 빛나는 오늘이 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