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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 달 Aug 25. 2022

그저 그런 날, 남편의 생일

남편의 생일이다. 하지만 남다른 생일상도 별다른 이벤트도 없다. 아마 일주일 후 나의 생일에도 비슷한 하루가 이어질 것이다. 생일은 물론이고 결혼기념일도 마찬가지다. 물론 크리스마스도 연말도 새해도 별다르게 기념하진 않는다. 아이가 생긴 후로 트리를 꾸미고 아이의 선물을 챙기기는 하지만 나머지는 챙기고 싶으면 챙기고 안 해도 그만이다.


남편과 스물네 살에 연애를 시작했으니 내년이면 20주년인데, 우리 집의 이런 분위기가 언제부터 조성된 것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 이유로 짐작되는 것은 몇 가지가 있다. 


첫째, 내가 선택한 이 남자는 특별한 날짜를 기억하는 것에 소질이 없다. 10년이 넘은 결혼기념일 날짜도 아직 잘 모를 정도다. 


둘째, 나 역시 서프라이즈 이벤트를 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분명 연애 초기에 남편은 참 많은 이벤트를 시도했었다. 큰 곰인형을 선물하고 은을 녹여 반지를 직접 만들어주고, 100일이라며 그동안 찍은 사진을 편집해서 영상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큰 곰인형은 보낸 이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반품했고, 직접 만들어 준 은반지는 ‘은 알레르기’ 때문에 고이 모셔두었으며, 남편의 야심작 동영상을 보고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하는 모범 답안을 내놓지 못했다. 


셋째, 가장 중요한 이유는 언제든 특별한 날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꼭 생일이 아니더라도 서로의 존재에 감사를 표현하고, 결혼기념일이 아니어도 원할 땐 마주 앉아 주머니 사정에 맞는 최고의 식사를 즐기며, 크리스마스나 새해가 아니더라도 서로의 성장을 축하하며 잦은 파티를 연다. 파티의 주제는 다양하다. 남편의 승진이나 보너스 받은 날,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었을 때, 첫 원고 제의를 받았을 때, 남편과 협력하여 셀프로 우리 집 담장을 완성한 날, 소식좌 아들의 체중이 늘었을 때나 몇 년 만에 결심하여 수영을 시작했을 때도 때론 산해진미를, 때론 치킨을, 때론 냉털 요리를 식탁에 펼쳐놓고 파티를 했다. 이렇다 보니 달력에 적혀있는 특별한 날을 따로 기념하지 않아도 아쉬움이 남지 않게 된 것 같다. 마음먹기에 따라 평범한 오늘은 얼마든지 특별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생일도 결혼기념일도 챙기지 않는 부부지만 매일이 생일 같고 기념일 같은 그런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 참! 생일상과 선물 대신 잊지 않고 챙긴 게 있긴 하다. 바로 나의 애정을 듬뿍 담은 ‘초특급 울트라 슈퍼 생일빵!'


"여보, 등짝 괜찮니? 주말에 맥주나 한 잔 합시다." 


오늘도 우리의 평온한 날들에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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