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의 결혼 생활 동안 매일 아침을 여는 사람은 늘 나였다. 그동안 남편은 회사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이 다다라서야 겨우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아침을 마시고 나가기 일쑤였다. 출근을 하는 그의 모습은 말로만 듣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기분이 든다며 집 앞에서 출발하는 통근 버스조차 결단코 타지 않던 그였다. 그런데 그런 남편이 달라졌다. 이제 그는 우리 집에서 가장 먼저 눈을 뜨고 아침을 여는 사람이고, 늘 여유롭게 출근 준비를 한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남편은 육아와 가사 분담에 있어서만은 거의 빵점이었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아이의 등하원을 돕지 않았고 (정정한다. 1~2번 정도는 했던 것 같다.) 틈틈이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는 나를 보면서도 그건 당연히 네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처럼 바라만 보았다. (이것 역시 정정한다. 설거지는 몇 번 해줬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 누구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에 적극적인 아빠이자 잠을 줄여가며 찾아서 집안일을 하는 남편이다.
이러한 변화가 왜 생긴 걸까? 정말 하루아침에 사람이 저절로 변하기라도 한 걸까? 누구나 알다시피 그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큰 전환점은 아마도 ‘주거 형태의 변화‘였던 것 같다. 1년 반 전, 결혼 후 쭉 아파트에서 살던 우리는 집을 짓고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왔다. 단독 주택으로 이사를 하며 우리가 기대했던 변화들은 시간에 상관없이 소리를 내고 뛸 수 있는 자유, 마당에서 즐기는 캠핑과 바비큐 정도였다. 그러나 살아보니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 환경의 변화는 일상을 바꿨고 일상의 변화는 마음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마음의 변화에서 비롯된 여유는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과 관계를 변화를 이끌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아무리 소신이 강한 사람일지라도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남편 또한 직장에서 비슷한 또래와 연차의 사람들과 견주어 비교를 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서 오는 압박감이 상당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집을 짓기 시작한 시기는 한 달 사이에 실거래가가 1억씩 치솟던 시절이었고 그 시기에 집을 매매하지 못한 사람을 '벼락 거지'라고 부르는 신조어까지 생겨났다. 우리 역시 어느새 벼락 거지에 속해 있었고 더 밀려날까 두려운 마음에 잘 알지도 못하는 동네에 나온 주택 용지를 덜컥 산 것이 집을 짓게 된 계기였다. 비록 아파트에서 밀려나듯 지은 집이었지만 그 이후 남편은 더 이상 실거래가로 나의 위치를 확인할 일이 없어졌고(반대로 누군가의 평가를 받을 일도 없어졌다.) 일에 더욱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환경이 바꾼 또 하나의 변화는 평일의 풍경이었다. 주택 생활을 하며 깨달았다. 마음껏 뛰고 소리 지르지 못했던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 거실에선 아이가 줄넘기를 하고 리코더를 분다.
- 2층에선 남편이 스피커 볼륨을 한껏 올리고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본다.
- 박박 타일 바닥을 문질러 개운하게 욕실 청소를 마치고 나온 나는 때마침 세탁이 끝난 빨래들을 건조기에 옮겨 담고 시작 버튼을 누른다.
밤 10시, 우리 집의 흔한 풍경이다.
반면, 아파트에 살 때 우리의 일상은 어떠했는가. 퇴근을 하고 나면 놀아달라는 아이의 성화도, 집안일도,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고 싶은 욕구도 모두 낮 시간이 허락되는 주말로 미뤄야 했고, 그마저도 폐가 될까 밖으로 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집안에서 무엇을 하든 더 이상 시간을 확인하지 않는다. 살금살금 걷기, 택배 박스는 쿵하고 내려놓지 않기, 늦은 시간 TV 볼륨은 최소로 줄이기, 10시 이후 샤워하지 않기 등 당연하다 생각하며 살았던 것들이 많은 속박이었음을, 사소하지만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드라마 '나의 해방 일지'에서 극 중 염미정은 구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하루에 5분, 5분만 숨통 트여도 살 만하잖아.
편의점에 갔을 때 내가 문을 열어 주면 ‘고맙습니다’ 하는 학생 때문에 7초 설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 오늘 토요일이지?’ 10초 설레고 그렇게 하루 5분만 채워요.
그게 내가 죽지 않고 사는 법.
그녀는 죽지 않고 사는데 하루 단 5분의 숨통만 트여도 충분하다고 했다. 아마 남편에게도 그런 5분이 필요했었던 것 같다.
몇 년 전 아파트 정문에 벚꽃이 만발한 4월이었다. 나는 출근길에 차를 세우고 찍은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고 그 게시물에 남편은 이렇게 댓글을 달았다. "예쁘네. 근데 여긴 어디야?" 그랬다. 매일 출근하며 마주하는, 사방에 만발한 벚꽃도 볼 겨를이 없을 만큼 그는 주변을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런 그에게 집은 언제든 나를 돌보는 시간과 공간을 허락했고 마당이 생기면서부터는 캠핑과 가드닝, 목공을 하며 언제든 생각을 비워낼 시간 또한 허락했다. 집 앞에 벚꽃이 피고 지는지조차 몰랐던 남편은 이제 새싹이 움트는 것도, 단풍이 지는 것도 나보다 잘 안다. 그리고 그렇게 생긴 여유로 아들과 한 번이라도 더 시간을 보내려 노력하고, 아내가 힘들까 잠을 줄여가며 집안일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사랑한다고, 감사하다고 자주 표현한다. 마당 공사를 마치자마자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벚꽃 나무를 심는 것이었다. 남편이 이 집에서 해마다 피고 지는 벚꽃을 오래 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