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단한 일상의 힘
“아, 괴롭다.” 새벽녘 내뱉는 남편의 깊은 탄식을 들었지만, 어떤 말도 위로가 될 것 같지 않는 무게가 느껴져 말없이 눈을 감았다. 다음 날, 평소보다 좀 더 다정하게 배웅을 하고, 좀 더 부지런히 청소를 한다. 그리고 좀 더 건강한 식단으로 아점을 먹고, 평소보다 조금 더 걸었다. 하교 후 아이와의 시간에도 좀 더 정성을 들여본다. 단단한 몸과 마음으로 나의 자리를 지키는 것, 틈이 없는 그가 쉴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는 것, 그렇게 조금 더 정성 들인 일상으로 나만의 응원을 보낸다. 조언이나 잔소리는 틈이 생겼을 때 그때 해도 늦지 않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나 하루 쉬어도 돼?” 출근 시간이 다 되도록 침대에서 미적대던 남편이 물었다. “뭘 그런 걸 물어? 그냥 쉬면 되지.” 나는 최대한 무신경하게 대답을 하고 자리도 비워줄 겸 밀린 담장 공사를 하러 마당으로 나왔다. 그런데 잠시 후 연차를 내고 쉰다던 남편이 따라 나왔다. 우리는 각자 붓 하나씩을 들고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담장에 오일스테인 바르는 일에 집중했다. 그리고 데크에 걸터앉아 남은 나물을 넣어 대충 비빈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마당에 자갈을 더 깔아야겠네." 몇 시간 동안의 정적을 깨고 남편이 말했다. "그럼 가자." 우리는 곧장 한 시간 거리의 석재 판매처로 향했다.
트렁크 가득 묵직한 자갈을 싣고 집에 돌아오는 길, 운전을 하던 남편이 말했다. “고마워. 나 이제 좀 회복된 거 같아. 뭔가 일상으로 돌아온 기분이야.” 이제 남편에게 틈이 좀 생긴 것 같아 며칠간 맘 속에 삼켰던 얘기를 꺼내본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하고 걷고.. 그런 일상이 생각보다 삶을 지지하는데 큰 힘이 되더라. 언제든 돌아올 일상이 단단하게 버티고 있으면 나머지 삶도 잘 버틸 수 있어.” 묵묵히 운전을 하는 그를 보며 나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도 당신, 이제 쉬어야 할 때를 알고 멈추어 가는 걸 보니 정말 현명해. 내가 있어야 가족도 있는 거야. 그러니까 자신을 잘 살피고 아껴줘. 그러고 나서 다시 환하게 웃어줘.”
남편은 그 후 이틀을 더 쉬었다. 이틀간 우리는 함께 마당에 자갈을 깔고 오일 스테인을 발랐고, 변함없이 데크에 걸터앉아 차린 건 별로 없는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 늦은 오후 집 주변을 함께 걸었다. 다음 날, 다시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하고 며칠간 내버려 둔 청소를 시작하려는데 카톡 알람이 울렸다. 남편이었다. "고마워. 그리고 미안했어." "괜찮아. 우린 한 팀이니까." 나는 곧바로 남편에게 답장을 보냈고 오랜만에 음악을 틀고 가뿐한 마음으로 청소를 시작했다. 퇴근길에 저 멀리 집이 보이면 툭 하고 몸과 마음을 내어 쉴 수 있길 바라며 오늘도 나는 나와 가족의 일상을 가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