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장기하의 '부럽지가 않어.’ 라는 노래를 들었다.
너한테 십만원이 있고
나한테 백만원이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
짜증 나겠지
근데 입장을 한번 바꿔서
우리가 생각을 해보자고
나는 과연 니 덕분에 행복할까
내가 더 많이 가져서 만족할까
아니지
세상에는 천만원을 가진 놈도 있지
난 그놈을 부러워하는 거야
부러움이란 상대적이고 나보다 더 가진 대상을 바꿔 계속된다는 것을 짧고도 쉬운 가사로 잘 표현해 낸 그의 재주에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어쩌면 부럽다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부러움을 넘어 시기, 질투, 미움이 되면 그럭저럭 행복했던 나의 삶이 순식간에 별 볼 일 없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보다 못한 사람을 찾아 자랑하고 위안받으며 멀쩡히 잘 살고 있는 다른 사람의 삶까지 자를 들이대고 깎아내린다.
나는 내 주변 사람들 중에 가장 활발하게 SNS 활동을 하고 있다. 너나 나나 카카오톡으로 소통하던 시기 맨 마지막까지 문자로만 소통하며 버텼고 싸이월드도 한참 후에 시작한 뒷북이었고 인스타그램은 관종들이나 하는 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어쩌다 보니 나와 비슷한 결을 가진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SNS의 선두주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 내게 친구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SNS를 하면 다른 사람들의 삶이 부러워지고 내 삶이 불행해질 것 같다고. 하지만 꼭 그렇진 않다. 적어도 나는 그 부러움 때문에 불행해진 적이 없다.
재미있는 건 외모도, 경제적 상황도, 잘 돌아가던 나의 머리도 전보다 나아지긴커녕 더 나빠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나의 관점이 바뀌니 부러움은 시기와 질투가 아닌 배우고 노력하고 싶은 의지로 바뀌었다. 예쁘고 날씬한 엄마는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열심히 운동을 했을 테고, 똑똑한 사람은 나보다 많은 책을 읽고 열심히 공부를 했을 테고, 돈을 많이 번 사람은 열심히 일하고 돈 공부를 하며 투자를 했을 것이다. 종종 성형이나 시술로 예뻐진 사람들 또는 투자를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을 비하하는 댓글들을 보곤 하는데, 나는 성형이나 시술을 알아보고 시도할 부지런함도 용기도 없고 돈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실천에 옮기지도 못했다. 따라서 그들 역시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향해 관심을 갖고 노력을 했다는 점을 높이 산다.
또 하나 달라진 건 '나도 노력하면 할 수 있다.'라는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나의 모습과 과정을 보여주기 싫어서 타고난 것들을 자랑했던 때가 얼마나 부끄러운 시절이었는지를 이젠 안다. 아무리 아름다은 꽃이라도 꾸준히 돌보지 않으면 이내 시들고 열매를 맺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도 떨어진 체력과 나빠진 기억력, 침침해진 눈을 붙잡고 글을 쓴다. 정성 들인 시간이 쌓이며 다시 더딘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길 기대하면서.
사람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쌓는 시간은 다를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속도 말고 나의 속도대로 나아가며 그 사람 말고 어제보다 좀 더 나아진 나를 바라보자. 질투와 시기의 에너지를 나를 향해 집중한다면 그 사람도, 나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